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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호 Sep 05. 2022

일상의 논어 <술이述而15>-부운浮雲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자왈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공자가 말했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신 뒤 팔베개를 하고 누우면 즐거움이 그 가운데 다 있다. 의롭지 않게 부하고 귀한 것은 내게는 뜬구름 같은 것이다." 



별도의 해설을 더할 필요가 없는 깔끔한 내용입니다. 공자는 불의하게 얻는 부귀란 부질없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그것은 결국 인간을 망칠 따름이니 오직 정당한 방법으로 획득하는 부귀만이 의미 있다는 인식입니다. 다만 공자는 이미 지적한 바 있지요. 부라는 것이 좇는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여불가구 종오소호 如不可求 從吾所好, <술이>편 11장)'고 선언했지요.      


세상에는 불의한 방식으로는 절대로 부와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이 사람들 덕에 세상은 아직 지옥이 되지 않은 것이지요. 지옥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강자들이 약자들을 마음대로 유린하는 사회가 약자들에게는 곧 지옥입니다.    


누군가는 위조, 조작, 사기, 협박, 납치, 세뇌, 폭행, 살인을 해서라도 타인들의 것을 강탈하여 자신의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합니다. 돈이 곧 힘이라고 믿는 자들에게 양심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법이라는 것이 강자들이 휘두르는 칼로 기능하는 한 유전무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방법은 단 하나, 그런 믿음을 깨부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사회에서 약육강식의 논리가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평원의 사자와 늑대들 조차도 물소들이 떼로 모여 있는 한 함부로 어쩌지 못합니다. 약한 고리를 찾아내고 빈틈을 노릴 수밖에 없지요. 빈틈을 허용하는 한 집단에 균열이 가고 물소들은 공포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의 단합된 힘을 망각하고 도망가기 바빠집니다.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동물적 본능은 생존이 위협 받는 공포의 순간에 극대화됩니다. 이성은 무너지고 감정에 휘둘리게 되지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면 감정마저 무뎌지고 맙니다. 나치는 그 점을 간파했지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수송 기차 안에서 다닥다닥 붙은 채 옷 안에 배설하고 뭉개며 뒤섞인 배설물의 악취를 맡는 동안 유대인들의 인간성은 말살되고 희망은 소멸되었습니다. 


현대의 직장은 하나의 우리와 같습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의 룰이 작동하고 그것은 대부분 강자들에 의해 정해진 것이지요. 가축들이 축사에서 길들여져 살아가듯 직장인들은 조직의 생리에 순응하며 지내야 합니다. 조직 내의 강자들은 약자들을 칭찬하고 용기를 북돋기 보다 질책하고 나무라는 방식을 구사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들도 그렇게 지내 왔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우리 안의 자유도는 직위와 능력에 비례합니다. 직장인들이 승진에 목을 매는 까닭입니다. 우리를 벗어나 우리의 룰이 작동하지 않는 정글에서 맹수들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압도되는 한, 직장인들이 직장을 박차고 나가는 일은 스스로에 의해 자주 통제됩니다.       


우리와 우리로 구성된 사회에서 강자들의 자유에 의해 자신들의 부자유를 뼈저리게 체험하는 동안 약자들은 복종에 익숙해지고 자유도를 키우기 위해 안달하게 됩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노동 시간은 증가하는 역행의 시대에 그것의 핵심은 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테크에 열을 올립니다. 부동산, 주식, 코인 투자 등으로 한 몫 단단히 챙겨 자유인으로 살아가기를 꿈꿉니다. 하지만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열정 만으로 부를 일구는 일은 일어나지 않지요. 공부하여 실력을 키우기 전의 투자는 로또를 사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투자에 성공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이지요. 자유인의 꿈은 도달할 수 없는 이데아의 세계에나 있는 듯 갈수록 멀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국가라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온갖 이름의 조직 내에서 자유가 강자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법을 적용합니다. 결국 조직이란 함께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기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요. 약자들이 뭉쳐 강자들의 불합리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조직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기본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는 헌법에 보장된 약자들의 권리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강자들이 소송을 통해 약자들을 가혹하게 억압하는 길을 열어 주고 있습니다. 사자와 늑대들에게는 약탈하여 포식할 자유를 허용하고 물소들에게는 맞서 싸울 자유를 금지한 셈이지요. 단합 만이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일 때 그것을 박탈하는 인간 사회의 법칙이란 정글의 그것보다 더 비극적입니다. 인간은 새로운 평원을 찾아 풀을 뜯어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인간답게 살아 본 이들은 자유의 향기를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포로 수용소에서도 끝내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은 사람들 덕에 유대인들은 자유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지요. 민주화 된 사회에서 자유의 공기를 마셔 본 이 땅의 국민들은 불의하게 돈과 권력을 갈취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들에게 빼앗긴 자유를 탈환하고야 말 것입니다. 


공자의 말에서 우리는 자유인의 요건을 읽어야 합니다. 부귀에 대한 집착을 떨쳐 내지 못하는 한 그것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노예에게 진정한 자유란 허용되지 않지요. 불의하게 부귀를 소유한 자들이 누리는 것은 진정한 영혼의 자유가 아니라 기한이 정해진 돈과 권력의 소비의 자유에 불과합니다. 소비 기한이 지나면 더 이상은 향유할 수 없는 허상과 같은 자유이지요. 거짓 자유에 중독된 천박한 영혼들은 마침내 금단 현상에 시달리며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힌 수인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과학 방역과 과학 경호에 이어 머지 않아 이 시대의 자유는 '과학 자유'로 업그레이드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 외교, 과학 행정, 과학 치안, 과학 민생, 과학 통일 등 아무리 과학을 붙이고 지지고 볶아 봤자 그런 식으로 우리의 사회는 건강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을 가진 정부이기 때문이지요. 이 시대의 구호들이 모두 뜬구름처럼 덧없게 느껴지는 이유가 다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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