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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Oct 27. 2022

(D+20) 주치의로부터의 전화

오전에 주치의 한테서 전화가 왔다.


주치의는 아침 7시쯤 엄마의 머리에 꽂힌 관에 가해지는 압력을 멈추도록 했는데 엄마의 의식 상태가 쳐져서 CT촬영을 진행했고 그 결과 뇌실 쪽에 물이 차는 게 확인되었다고 했다. 엄마의 상태가 호전된 지난주, 주치의가 미리 이야기 한 머리에 꽂힌 관을 제거하기 위한 연습이었다.


엄마의 머리에서 발생하는 물을 지금은 관에 연결된 기계의 압력을 통해 밖으로 빼내고 있지만 언제까지고 엄마의 머리에 관과 기계를 연결해 둘 수는 없었다. 연습에 실패했으니 머리에 생긴 물을 복부 쪽으로 돌려 배출되도록 한다는 션트 수술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주치의는 션트 수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른 변수가 생긴 모양이었다.


뜻밖에도 주치의는 내게 엄마의 나트륨 수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틀 전 나트륨 수치가 낮다고 간호사에게 소금을 좀 가져다 달라는 연락을 받았던 터였다. 아빠가 소금을 간호사에게 건넸고 간호사는 죽에다 소금을 조금 타서 엄마의 콧줄 식사를 도왔던 모양인데 이번엔 나트륨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서 이 부분이 좀 걱정스럽다고 했다. 신장 쪽 문제일지 호르몬 쪽 문제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며 일단 신장 쪽과 협진을 할 계획이고 재출혈이나 혈관 연축 같이 심각하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니 너무 걱정 말라며 자기들이 최선을 다해보겠다 했다. 아무래도 엄마의 몸 어딘가가 이상이 있는 듯했다.


주치의와의 통화 이후 마음이 한도 끝도 없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계속 이렇게 지낼 순 없으니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일이라도 하는 게 좋겠다 싶어 항상 바빠 보이는 옆 자리 선배님의 일을 내가 해보겠다고 했다. 개발된 프로그램의 일부 기능을 개선하는 일이었다. 시간도 촉박한 편에다 적당히 낯선 업무라 집중해서 처리하기엔 딱 좋았다. 퇴근시간 넘어까지 바쁘게 요리조리 프로그램 코드를 수정하다 보니 캄캄한 밤이 되어 있었다. 오늘은 회사 일 덕분에 많이 힘들 뻔했던 하루를 그럭저럭 잘 버텼다.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엄마 걱정도 빈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을 아빠 걱정도 조금 덜했다.  

 

저녁 즈음 간호실에서 또 전화가 왔다. 담당 간호사가 바뀌는 바람에 이것저것 행정적인 걸 확인차 묻는 전화였다. 엄마의 상태를 물으니 여전히 의식이 좋아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뇌에 꽂아둔 관으로 액이 잘 빠지고 있다고 했다. 나트륨 수치는 수분 공급을 충분히 해주면서 많이 좋아졌으나 아직 정상 수치는 아니라고 했다. 3시간마다 피검사를 하면서 수치를 확인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간호사가 덧붙였다.


지난 토요일에도 엄마는 깨우면 잠깐 눈을 뜨고 "응" 정도의 간단한 대답만 할 뿐 잠만 주무셨는데 거기에서 의식 수준이 더 안 좋다는 말은 엄마를 깨워도 어떤 대답이나 반응이 없는 상태라는 소리였다. 퇴근하고 집으로 오니 마음이 한도 끝도 없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아빠에게 전화해 엄마의 상태를 알리고 너무 걱정 말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잠이 잘 올 것 같지가 않았. 우리 아빠도 그렇겠지.


이번 주 잘 넘기고 일반실로 옮겨서 재활치료받는 그림을 그리며 나의 앞으로의 거취를 고민했었던 지난 이틀이 나름 행복한 순간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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