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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Oct 30. 2022

(D+23)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주치의와 면담이 있는 주말 아침이 밝았다. 간밤에 늦게 친정집에 도착해 잘 시간을 놓쳐 버린 데다 엄마 걱정에 잠을 설쳤지만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준비한 덕분에 적당한 시간에 병원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집중치료실 간호사를 통해 주치의 면담을 요청하고 기다리니 금방 주치의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치의는 엄마의 전해질 수치가 좋아졌고 뇌에 꽂아둔 관에서 물도 잘 빠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덤덤히 전해주며 지난번 관을 빼기 위한 뇌압 조절 연습에서 엄마의 의식 수준이 나빠졌던 부분이 뇌의 문제인지 전해질 문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월요일에 한번 더 뇌압 조절 연습을 해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마음이 좀 놓였다.


이제 엄마를 볼 차례다. 엄마의 침상 쪽을 바라보니 오늘은 엄마가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엄마의 상태부터 살펴보니 엄마의 팔과 다리가 퉁퉁 부어있는 데다 온통 멍자국이 가득했다. 아마도 전해질 수치 때문에 3시간마다 피검사를 했기 때문에 생긴 주사 바늘 자국인 것 같았다. 게다가 염분 수치를 낮추기 위해 수분 공급이 과도하게 된 탓에 몸이 땡땡 부어 있었다.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엄마가 나와 남편,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바로 엄마에게 말을 거니 엄마도 바로 답변을 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속삭이는 듯 잘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말이었다. 나와 아빠 얼굴을 보자 눈물도 살짝 고였다.


고생했다고 많이 아팠겠다고 그래도 조금 더 힘내서 회복하자고 이야기하면서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빠도 좋은 생각만 하고 회복하는데만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빠는 푹 쉬게끔 빨리 나오자고 했지만 나는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엄마가 또 무슨 말을 했는데 잘 들리지 않아 엄마의 입에다 귀를 대고 엄마의 말을 들으려 안간힘을 썼다.  


한참을 그렇게 엄마에게 말을 걸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려 애를 쓰다가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아 다음 주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니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다시 속삭였다.


"밥은.. 과일은..."


밥은 먹었는지 집에 과일은 있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리고야 말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지금도 너무 아픈 상태로 누워 있으면서도 엄마는 딸이 밥은 먹었는지, 집에 과일은 떨어지지 않았는지부터 먼저 물어본다. 속이 상하면서도 내가 알던 우리 엄마가  맞다는, 엄마의 의식이 정말 돌아온 게 맞다는 안도감에 그간 마음을 졸이며 시간을 보냈던 설움이 복받쳐 올라왔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엄마의 인지기능과 언어기능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직 그 무엇도 안심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일단은 마음이 놓였다. 엄마가 쓰러져 큰 수술을 받고 집중치료실에서 보낸지도 어느덧 3주. 뇌질환 카페에서 보니 엄마와 비슷한 시기에 쓰러지신 분들 중에는 이미 많이 회복되셔서 일반실로 옮기신 분도 죽음의 문턱에서 여전히 사투를 벌이고 계신 분도 계셨다. 모두 다 한 마음으로 환자의 회복을 빌고 있었지만 환자마다 예후는 모두 달랐다.


우리 엄마는 회복이 느린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크게 나빠지는 것 없이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중이었다. 더욱이 오늘은 엄마의 상태가 가장 좋은 날이다. 덩달아 나도 마음이 좀 편해졌다.


월요일, 관을 빼기 위한 뇌압 조절 연습도 잘 되어 다음주엔 일반병실로 옮겨갈 수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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