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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Jan 09. 2023

(D+90) 연하 테스트

콧줄, 이제 안녕!

드디어 주치의 선생님이 말씀하신 연하테스트가 있는 날이다. 재활병원에 온 이래로 나는 엄마가 어서 빨리 콧줄을 제거하길 바랐다. 걷기도 앉기도 중요하지만 그건 왠지 시일이 필요할 듯싶었다. 게다가 호시탐탐 콧줄을 빼낼 기회만 노리는 엄마였기에 콧줄만 제거해도 엄마와의 병원생활이 훨씬 윤택해질 것 같았다. 엄마의 약을 타거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등의 잠깐 사이에도 나는 엄마가 혹시나 콧줄을 뽑아버리지는 않을까 늘 불안했다. 그 불안감 때문에 나는 항상 긴장 상태을 유지했고 엄마는 그 때문에 콧줄과는 무관하게 머리를 긁적인다거나 콧물을 닦는다거나 하는 일련의 행위에도 나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만 했다.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만약 엄마가 음식을 씹고 맛을 볼 수 있다면 그러니까 입으로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면 훨씬 기력이 회복되는 데에도 속도가 붙을 것 같았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만 해도 턱을 움직이니 뇌에 자극이 될 것 같았다. 아기가 처음 태어나 젖을 빠는 것만으로도 뇌가 발달된다고 예전에 어느 육아서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엄마에게 다양한 음식의 질감과 맛을 느낄 기회가 매 끼니때마다 주워진다면 자연스럽게 뇌에 지금과는 다른 풍부한 자극을 주는 것이 될 터였다.

여하튼 나는 그런 몇 가지 이유로 재활 프로그램 중에서도 연하장애 치료만큼은 절대 늦거나 빠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나 저녁시간을 활용해 엄마의 입 안쪽을 최대한 자극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특히 치료사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해주시는 것을 유심히 봐두었는데 여유시간이 생기면 그대로 따라 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자주 따라 했던 것은 사탕으로 입안 자극하기였다. 그것은 유기농 어린이 사탕을 엄마의 입안에 넣어 드리곤 막대를 조심스레 요리조리 돌리며 입안 볼 쪽과 혓바닥 쪽을 자극해주는 것이다. 이 사탕 자극이 특히 엄마에게 좋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탕의 단맛이 엄마의 입안에 침을 많이 고이게 해 주면서 엄마가 덩달아 침을 꼴딱꼴딱 삼키는 연습까지 함께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하루에 한두 번은 거울을 보여주며 "아-, 에-, 이-, 오-, 우-" 같은 걸 따라 하는 것과 혓바닥을 입술 바깥쪽으로 내미는 "메롱"을 함께 연습하는 것, 아기구강티슈를 가지고 아침저녁으로 입안과 혓바닥을 닦아주는 것 등이 있었다.

한 주정도 열심히 연하 치료 관련 재활을 열심히 했고 폐렴 또한 거의 다 나았다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기침을 종종 했고 조금만 많이 움직여도 힘들어하면서 숨을 몰아서 쉬곤 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연하 테스트에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엄마의 삼킴 기능의 장애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번 테스트는 의미가 있노라 그리 생각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연하 테스트에 통과해 콧줄을 빼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엄마의 회복 속도보다 나의 욕심이 더 커져버린다면 서로가 힘들어질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점심시간 직후 엄마는 연하 테스트를 받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서둘러 점심식사를 마치고 검사장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가니 이미 선생님 한 분이 나와계셨고 어느 정도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이 오시자 바로 엄마의 연하 테스트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검사장에 들어갈 수가 없어 밖에서 대기해야 했는데 그 과정도 결과도 너무 궁금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사장의 닫힌 문에다 귀를 대고선 조그마한 소리라도 엿들으려 애를 썼다. 나의 자세는 남들이 보기에 조금 그랬겠지만 그런 건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웃음)

대부분의 소리는 문을 넘어오며 산란되어버렸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중 주치의가 "어머니! 잘하셨어요!"라는 말은 데시벨이 좀 높았던 모양인지 내 귀에도 또렷이 들렸다. '오잉?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궁금한 마음을 안고 초조하게 문 앞을 기웃기웃거렸는데, 곧 주치의가 나와선 엄마의 연하테스트는 성공이라며 이제 콧줄을 빼도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오오오오오오~!!!!" 나도 모르게 긴 감타사가 나왔다. 갑자기 주치의의 얼굴에 후광이 비추는 듯했다. 생각지도 않다가 너무 기쁜 마음에 나는 활짝 웃으며 주치의에게 감사 인사를 했고, 주치의는 엄마가 아직 입안의 압력도 부족하고 삼키는 능력도 미숙한 편이라 지속적으로 연하 재활을 받아야 하고 당분간은 죽으로 식사를 하셔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의 작은 노력도 엄마에게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죽 식사도 엄마에겐 너무 오랜만인 일이라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젠 엄마와 마주 앉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를 더 이상 감시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밤마다 엄마에게 벙어리장갑을 채우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콧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약 90일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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