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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Jan 11. 2023

(D+94) 뇌출혈 후유증(1), 인지 기능 저하

엄마는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는 걸까

엄마의 뇌출혈이 있은지 약 3달가량 되었다. 그리고 엄마의 인지 기능은 여전히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콧줄을 제거하고 본격적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니 엄마의 인지 기능이 너무도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마치 하루종일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막내이모가 결혼할 시점에 다녀온 듯, 이모부가 될 사람을 만나 국밥을 먹었다고 했고 곧 있을 잔치에 가야 하는데 준비는 다 되었냐고 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내가 아주 아기였던 시절 사촌언니와 함께 살 때로 돌아간 것 같았는데 내가 사촌언니인 줄 착각하고는 "이건 너네 엄마가 한 반찬이야?"와 같은 질문을 내게 했다. 그리고 현재가 과거의 기억과 뒤섞여 있는 듯, 앞에서 치료를 받고 계신 분의 보호자(아주머니)와 신발이 바뀌었다며 얼른 신발을 바꿔오라고도 하셨다.

엄마는 종종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가만 들어보면 어느 날은 나를 사촌언니 A라 생각하는 듯했고 어느 날은 이모 B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실 나는 엄마의 인지기능이 저하되어 있단 사실을 대학병원에 있을 때부터 알고는 있었다. 엄마가 사위인 나의 남편을 알아보지 못해도,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해도 뇌를 다친 것이니 시간이 지나면 차차 좋아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시간은 석 달이나 흘러가버렸고 엄마와 하루종일 병원생활을 하며 붙어 있어 보니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많이 이상했다. 일단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했고 엄마의 말 대부분은 상황에 맞지 않았다. 아주 가끔 인지가 좀 돌아온 듯싶다가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금세 엉뚱한 말 대잔치로 돌아가 버리니 나는 엄마가 지금 어디 즈음에 와있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엄마의 인지기능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며 심지어 엄마가 나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몹시도 충격적이었다. 엄마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닌지, 이대로 인지 기능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고 표현하는 게 어쩌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렵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내 마음만 어지럽고 불편했기에 나는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해봐야겠다 싶었다. 가장 먼저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내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인지 기능에 도움을 주는 약물을 처방해 주겠다고 했고, 비급여 항목인 주사치료(비급여)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는데 그것도 함께 병행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주치의 선생님은 뇌출혈의 경우 인지가 깨어나기 시작하면 가파르게 좋아지는 경우가 있으니 약물과 주사치료를 하면서 지켜보자고 하셨다. 나는 조금 아쉬운 듯도 하여 선생님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알려달라고 청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엄마 옆에 놓인 인지재활 책을 보시곤 미소를 지어 보이시더니 가족, 친지들과 영상통화를 자주 시켜드리면서 엄마를 일상적인 환경에 노출해 줄 수 있도록 애써달라고 했다. 그래도 방법을 찾았으니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되겠다 싶었다.

오후에 엄마는 내가 사촌언니 A로 보였는지 자꾸 나를 A로 불렀다. 정말 철석같이 내가 A로 보이는 듯했다. 이때다 싶어 나는 사촌언니 A에게 곧장 영상통화를 걸어 엄마가 언니와 통화할 수 있도록 해드렸다. 언니와 엄마의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는 엄마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엄마, 내가 A야?"하고 말이다. 엄마는 그러자 멋쩍은 듯 웃으며 "아니, 너는 리라. 박리라지."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엄마 덕에 빵 터져선 깔깔깔깔 웃고야 말았다.

이제 본격적인 약물치료도 시작할 테고 나도 엄마 옆에서 꾸준한 자극을 줄 터이니 엄마의 인지도 서서히 돌아올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엄마의 속도에 맞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고 마음을 잡아본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었지.

리라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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