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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Jan 17. 2023

(D+95) 잦은 기침과 컨디션 난조

콧줄은 뺐지만 갈길은 멀기만 해

이틀 전 저녁부터 시작된 엄마의 기침이 멈출줄을 모르고 계속되기 시작했다. 기침이 계속되니 호흡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가 오늘치 재활 스케줄을 어떻게든 소화하길,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해보길 바랬다. 그래서 침상에 누워 안정을 취하는 대신 꼬박꼬박 재활 프로그램 시간에 맞추어 엄마를 치료실로 데려갔다.

쉬는 시간에 내과 선생님의 진료도 요청해 둔 상태였다. 곧 엑스레이 검사와 혈액 검사부터 진행했는데 결과는 예상 밖에 이상 없음이었다. 폐 사진도 깨끗하고 염증도 없고 다른 수치도 정상이었다. 문제는 계속되는 잔기침이었는데 처음엔 그냥 자연스럽게 시작된 기침이 시간이 흐를수록 용을 쓰는 기침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목에 무언가가 걸려 일부러 기침을 하는 마냥 엄마는 힘겹게 그리고 억지로 기침을 해댔다.

억지 기침이 반복되니 늦은 오후가 되어서는 급기야 산소포화도도 떨어져 버렸다. 치료사 선생님은 오늘 그냥 올라가서 쉬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나는 엄마를 침상에 눕혀 산소줄을 단 뒤 쉬시게 해 드릴 수밖에 없었다. 가슴속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얹힌 듯 답답해져 왔다.

대학병원에 있을 때부터 엄마의 목은 좀 이상해 보였는데 살이 엄청 빠진 엄마가 턱은 2개가 된 듯 보였다. 살짝 딱딱하게 굳은 듯도 했는데 연하 치료 선생님도 침샘이 굳은 것 치고는 부위가 넓은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기에 지난주 조영제를 넣고 목부위의 CT촬영을 진행했었다. 혹시 모를 갑상선 문제나 기타 다른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검사결과는 다행히도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현재 기도가 매우 좁아져 있는 상태라고 주치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마도 과거에 그런 적이 없었다면 기관삽관의 후유증일 수 있겠다고 했다. 엄마는 뇌출혈이 있던 당일 개두술을 받았을 때 기관삽관을 했고 약 2주가량 유지했었다. 주치의의 설명을 들으니 그래서 엄마의 호흡이 조금만 움직여도 거칠어지고 숨소리는 늘 위태로웠구나 싶었다.

어쨌든 현재 엄마의 잔기침은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기에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수액을 한 팩 달고 산소를 공급하면서 기침약과 항생제를 먹으며 향후 증상을 지켜보는 것으로 처방이 떨어졌다.

엄마의 손목과 팔목은 아직도 피멍이 많이 남아있었다. 오랜 병원생활로 수액을 달기 위해 혈관을 잡을 일도 채혈을 해야 할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저녁에 수액을 놓기 위해 간호사 선생님이 오셨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엄마의 혈관이 너무도 약해져 있는 통에 혈관을 찾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힘들게 찾아 꼽아둔 주삿바늘이었지만 인지 기능이 엉망인 엄마가 나는 왠지 그 주사 바늘을 뽑을 것만 같아 불안했다. 계속해서 엄마 옆을 지키며 엄마를 주시했는데 저녁 약을 물에 개고 있는 사이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엄마가 그 잠깐 사이 주사 바늘을 뽑은 것이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꾹 눌러 참았다. 간호사 선생님과 얘기 끝에 수액은 포기하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좀 전에 개 놓은 자기 전 약을 드렸는데 오늘따라 엄마가 약을 삼키질 않고 한참을 물고만 있는 게 아닌가. 아직 콧줄을 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삼키는 일은 엄마에겐 아직 어려운 일인가 보다 싶어 한참을 기다렸다. 그래서 엄마가 각티슈에서 휴지를 뽑을 때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휴지에다 입에 물고 있던 약을 고스란히 뱉어내는 것이 아닌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왜 약을 뱉어버렸냐는 말에 안 먹어도 된단 엄마는 그렇게 심하게 기침을 계속 해대면서도 본인은 전혀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엄마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에서는 열불이 났다. 그래, 그래도 곧 잘 시간이니까. 힘들기만 했던 오늘 하루는 이제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 다가오니까. 조금만 참자며 곧 터져 나올 것만 같은 화를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런데 밤이라고 오늘의 힘듦이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일은 밤에도 계속해서 일어났다. 잦은 기침 소리가 들려 일어나 보면 여지없이 엄마는 산소줄을 뽑아 손에 쥐고 있었다. 모두 주무시는데 자꾸만 엄마의 억지 기침소리가 들리니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분과 보호자분에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러면 안 된다며 다시 산소줄을 끼우는 나를 뚱하게 바라보는 엄마가 오늘은 야속하기만 했다.


나는 결국 새벽녘에 엄마에게 다시 치매장갑을 채워드렸다. 아침이 오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날들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버텨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다.

많이 힘들 것이란 모두의 우려와는 다르게 그간 엄마와 병원생활을 하며 나는 어느 정도의 만족과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엄마의 기저귀를 갈고 식사를 돕고 휠체어를 태우고 씻기고 하루치 재활 중 엄마 컨디션에 맞추어 복습을 해 드리는 것이 체력적으로 많이 고되긴 했지만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단 것 자체가 좋았다. 그리고 엄마는 힘들어하면서도 나의 노력과 의지를 잘 따라와 주었다. 그 결과로 콧줄도 떼어내게 되었고 아예 힘이 없던 복부와 다리 쪽도 미세하게 힘을 길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일반인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나조차 내심 놀라울 만큼 엄마는 몸의 움직임만큼은 마비환자들 중에서도 빠르게 회복 중인 편이었다. 게다가 재활 치료는 주로 20-30분 단위로 시간표가 짜여 있었는데 엄마가 재활 치료를 받는 대기 시간에 엄마의 옆이나 뒤에서 틈틈이 스마트폰 노트에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책 혹은 만화책을 보는 것도 좋았다. 내가 언제 이렇게 원 없이 적어보고 읽어보았던가. 브런치에 발행 중인 대부분의 글은 틈틈이 스마트 폰에 노트에 기록한 내용이었다. 또한 읽고 싶던 책을, 자연스레 눈이 가는 글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다.


늘 시간에 쫓기는 삶이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큰 병원생활이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그런 제약에도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 제약 덕분에 여러 가지 내가 챙겨야 한다고 여겼던 일들이 가지치기가 되어 한결 여유도 생겼으니 오히려 이참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그런데 위기다. 본격적으로 재활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제대로 위기가 찾아온 것이었다. "자꾸 이러면 더는 못 해"란 말이 목구녕을 간질였다. 인지기능의 비정상 동작과 기침 등의 내과적 콜라보를 마주하자 나는 기권을 선언하지 못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보내야 한다면 얼마만큼 내가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싶은 마음이 일었다.

날이 밝자 나는 참지 못하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때문에 지금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기침 때문에 꿀을 가져다 달란 건 핑계였고 힘든 내 마음을 누구 하나 알아주었으면 했던 것 같다. 아빠는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와주었고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아빠의 눈빛에서 나는 엄마의 증세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오롯이 엄마의 간병을 나 혼자서 감당하게 한 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또 그거대로 마음이 아렸다. 아빠는 고생한다며 내 어깨를 두드리곤 엄마에게 휘말리지 않도록 애써보고 너무 조급한 마음을 먹지 말라고 다독이고는 집으로 되돌아가셨다.

가만히 앉아 엄마가 치료를 받는 것을 보면서 내가 왜 그렇게 어제 마음이 지옥이었을까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아빠 말이 맞았다. 나는 엄마의 속도에 맞추겠다고 해놓고선 엄마가 잘 해내었는 것을 보고는 그만 욕심을 내버리고야 만 것이었다. 엄마가 기도가 좁아진 것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숨을 헐떡이는 것도 마음이 아픈데 기침에다 그로 인해 재활까지 자꾸 중단되어 다시 병실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니 그게 못 견디게 속상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꿍쳐둔 새우깡과 콘초코만 작살이 났다.

나의 욕심이 스스로를 지옥에 빠뜨린 대참사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내 마음부터 다잡아 했는데 말이다. 앞으로 그럴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나의 욕심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좀 더 담대하게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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