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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Jan 18. 2023

(D+97) 갑작스러운  의식 처짐

처방받은 약을 먹고 잦은 기침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엄마의 컨디션이 여전히 예전만큼 회복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재활을 하지 않으면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이 더 떨어지는 느낌이라 주치의 선생님의 허락하에 엄마는 기존의 프로그램 데로 계속 재활을 받고 있었다.


엄마의 재활시간에 맞추어 병원으로 사촌동생이 찾아왔기에 잠깐 자리를 비웠다. 다음 재활까지 여유시간은 고작 20분 남짓이었지만 병원까지 찾아온 동생이니 얼굴만 잠깐 보고 올라와야지 싶었다.

병원 안 커피숍에서 커피 한두 모금을 들이킬 때쯤 병동 간호사실에서 전화가 왔다. 치료 중 엄마의 상태가 나빠져 병실로 옮겼으니 바로 올라오라는 전화였다. 급히 동생에게 인사를 하고 정신없이 병실로 올라오니 병동 간호사 선생님이 석션(가래 뽑기)을 하고 난 뒤였고 곧 주치의 선생님이 올라왔다. 엄마의 상태가 좋지 않은데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주치의는 엄마의 기저질환에 대해 물었다. 2020년 부정맥(심방세동)으로 인해 심장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는데 일단 심전도를 찍으니 정상이었다. 며칠 전 잦은 기침으로 인한 혈액검사와 엑스레이에서도 이상이 없었기에 엄마가 이렇게까지 컨디션이 나빠진 원인을 찾을 수가 없어 난감한 눈치였다. 곧 심전도, 맥박, 산소포화, 혈압을 상시로 측정하는 모니터가 엄마의 침상 옆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다시 중환자가 된 듯 보였다. 간호사 선생님이 옆에서 상시로 엄마를 체크하는 중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조금 뒤 엄마는 자꾸 졸려했는데 간호사 선생님 말로는 엄마의 의식이 쳐지는 것 같다고 했다. 요즘 밤에 통잠을 자지 않고 새벽에 자주 깨어있는 엄마 덕에 나 역시 잠이 늘 부족한 상황이라 그저 피곤해서 주무시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은 엄마의 혈압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졸리다기보다 의식이 쳐지는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응급실로 갈 간단한 준비를 해두라고 말을 하고는 주치의에게 호출을 넣었다.

응급실이라니. 정말 응급실에 실려가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대학병원 응급실은 지난 폐렴으로 실려간 경험이 있었다. 그때 엄마는 폐렴으로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가래와 기침이 심했는데 코로나 검사로 한참을 대기 후 온갖 검사를 하더니만 이 정도 증상으로는 입원이 어렵다고 해서 우리는 엄마를 받아줄 병원을 찾는데에 또 한참을 기다리기만 했다. 그날 엄마는 오전 10시 30분에 응급실에 도착해선 밤 10시 30분이나 되어서야 새로운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응급실에선 약간의 산소를 공급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조치도 없던 체로 온종일 대기만 해야 했다. 게다가 응급실에서는 커튼을 칠 수가 없었는데 그 바람에 엄마는 오전에 찬 기저귀를 하루종일 하고 있어 환자복이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다. 나는 서울에서 상황만 전해 들으며 발만 동동 굴렸지만 결코 다시 겪고 싶지는 않은 일이었다.

여하튼 잠시 뒤 주치의(재활의학과)를 비롯한 내과, 신경과 선생님들이 함께 나타났다. 내과 선생님은 엄마의 상태를 보시곤 바로 수분 공급을 위해 수액 처방을 내렸다. 수액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20분 정도 지났을까. 그때부터 엄마가 좀 또릿또릿 해진 느낌이 있었는데 혈압을 재어보니 정말 정상수치로 올라와있었다. 일단 한시름 놓았다 싶었다. 곧 의사 선생님들이 엄마의 상태를 체크하더니 이대로 응급실로 가면 왠지 다시 돌려보낼 것 같다며 상태가 위급해지면 언제든 응급실로 가면 되니 몇 가지 검사부터 진행해 보자고 했다. 며칠 전 폐 사진을 찍었을 때에도 깨끗하게 나왔던 터라 의사 선생님들은 이렇게 의식이 쳐질만한 원인이 무엇일지 정밀한 검사를 해가면서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으로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엄마의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은 무척 속상했지만 여러 과 선생님들이 오셔서 엄마의 상태를 체크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보니 일단 큰일이 벌어지거나 무작정 응급실로 보내지 지는 않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검사실로 내려가 조영제를 넣고 뇌와 폐의 CT촬영을 진행했고 잠시 후 검사 결과가 나온 모양인지 또다시 주치의를 비롯한 내과, 신경과 선생님들이 병실로 오셨다. 주치의와 내과 선생님은 혹시 엄마가 과거에 폐색전증(다리 쪽에 생긴 혈전이 폐까지 올라간 상태) 진단을 받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일단 뇌 쪽은 다행히도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으나 폐 쪽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뇌출혈로 개두술을 받고 한 달 뒤 수두증(션트) 수술을 받았는데 당시 폐색전증이 생겨 마취과에서 수술을 반대하는 바람에 패치를 하는 조건으로 수술을 진행했었다. 그런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니 내과 선생님과 주치의는 엄마가 폐렴이 약간 남아있지만 심각한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엄마의 갑작스러운 의식 처짐은 폐색전증으로 인해 패치를 한 부작용일 가능성이 가장 높겠다고 했다. 일단 콧줄은 뺐지만 여전히 연하장애를 가지고 있고 폐렴으로 인한 기침과 가래도 있으니 수액을 맞으면서 항생제 치료와 기침가래치료를 병행하자고 했다.

한시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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