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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Jan 22. 2023

(D+100) 눈치코치 눈물콧물 병원생활

엄마의 잦은 기침이 시작되고 갑작스러운 의식 처짐까지 있었던 이번주는 정말 힘들게 보냈다. 새벽에도 엄마가 깨면 나도 일어나 엄마를 돌보아야 하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이 그 힘듦의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같은 병실(현재 2인실 사용 중)을 쓰는 환자분과 보호자분이 신경이 쓰여서였다.

엄마는 밤에 꼭 두 번은 깨어 있다 다시 잠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하곤 했다. 예를 들어 불이 났다거나 누가 쫓아온다라거나 빨리 집에 가야 한다거나 하는 말이었다. 인지 기능이 저하되어 있으니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귓속말로 여기는 병원이고 엄마는 환자고 나는 보호자이며 코로나 때문에 그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는 등의 설명을 간단히 해드리고 지금은 밤이라 다들 주무시기 때문에 조용히 해야 한다고 한 뒤 조심조심 기저귀를 갈아주곤 했었다. 엄마는 인터넷에서 보았던 어떤 섬망 환자들처럼 욕을 한다거나 소리를 지른다거나 때린다거나 하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지 않았다. 폐렴과 기관삽관을 오래 한 여파로 목소리도 무척 작았기 때문에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엄마의 호흡곤란으로 인한 거친 숨소리와 기침소리였다. 분명 10-20분 뒤 잦아든다고 하더라도 모두 잠든 캄캄하고 고요한 밤과 새벽, 예민하신 분들은 당연히 깰 수 있는 소리였고 그건 분명 깊은 잠을 자는 데에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엄마와 나는 2인실을 쓰고 있었는데 엄마의 컨디션 난조가 일주일 이상 길어지면서 새벽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들어와 엄마의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재고 가시곤 했는데 그것 역시 그분들께는 죄송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같은 방 환자분과 보호자분의 눈치를 엄청 보게 되었다. 아침마다 엄마 때문에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셨을 것 같아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언젠가부터는 낮에도 병실 안에 있을 때면 늘 조심조심 움직이며 그분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한 주가 지나가고 또 한주를 막막하게 보내던 어느 날 일어났다. 엄마의 석션(가래 뽑기)을 부탁드리려고 간호사실로 가던 중이었다. 간호사실에는 누군가가 화가 나 호통치는 소리가 가득했는데 생각 없이 쫓아가보니 예상밖에도 나와 같은 병실 보호자셨다. 순간 머리가 띵 해져왔다. 우리 엄마 때문에 불편해서 그러시는구나 싶은 생각, 부적절한 타이밍에 내가 등장했구나 싶은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사실 같은 방 환자와 보호자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사람이 우리 엄마이니 죄송하단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본인이나 본인의 가족이 그 상황이라고 딱 한 번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들과 나의 입장이 애초에 다른 것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몹시도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것보다 열심히 엄마를 돌봐주시는 간호사 분들이 난데없이 봉변을 당하신 것 같아 너무 죄송했다.

같은 병실의 보호자 분은 병실로 돌아와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말라며 우리에게 화가 난 게 아니라 병원 측에 화가 나 그런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위중한 사람(우리 엄마)을 두고 응급실로 보내지 않은 것도, 자신들의 불편에 대해 사과의 말 한 번 없이 아는 체도 하지 않은 것도, 남은 병실(vip실)이 있는데 잠깐이라도 우리를 거기로 옮겨 자신들을 배려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도 화가 났고 괘씸했다고 이야기하셨다.

계속해서 사과를 했지만 그 얘기를 다 듣고 나니 더는 두 분들과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말씀을 들어보니 간호사실과 의사 선생님들께 어찌 되었건 불편하니 우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계속 요청하신 모양이었다.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응급실로 가면 괜히 비용만 치르고 곧 다시 돌아와야 할 테고 다른 병원으로 가자니 재활을 아예 받지 못하니 또 호전되어가고 있던 인지장애, 연하장애, 사지마비가 현상유지조차 되지 못하고 퇴화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상태의 엄마를 다른 재활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1인실로 옮겨가고 싶지만 1인실부터는 비급여라 비용이 만만치가 않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원무과에다 현재까지 청구된 비용을 문의하고 한 두 주 정도만 1인실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현재 비어있는 1인실은 없다고 했다.

엄마의 컨디션에 차도가 없이 계속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너무도 속상해 밤마다 보호자 침상에 누워 매일 눈물을 훔쳤는데 같은 병실 사람들의 눈치를 하루종일 봐야 하는 피로감에 나도 점차 지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마다 더 조심히 한다고 했지만 엄마가 깨는 것도 여전했고 아주 조금씩 좋아진다고는 하지만 위중한 것도 여전했다. 터지고야 만 봇물이라 그런지 이젠 아주 작은 소리에도 한숨을 쉬셨고 내가 있든 없든 역정을 내시며 병실 옮기는 얘기를 하셨다. 자꾸만 마음이 상하고 행동이 위축되었다. 나도 더는 버티는 것이 어려울 같아 결국엔 아빠에게 전화로 상의를 드렸다.  우선은 엄마의 회복과 내 몸이 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 1인실로 어서 옮기자고 말씀해 주셔서 바로 대기를 걸어두었다. 같은 병실 보호자와 환자분에게 1인실로 옮길 예정이지만 지금은 자리가 없으니 조금만 더 참아주시라고 죄송하다고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드렸다.

세상사 알 수 없는 일인데, 조금만 부드럽게 말씀해주시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가뜩이나 엄마도 안 좋으시고 잠도 못 자고 온종일 눈치를 보며 지내서였을까. 같은 층 교통사고로 뇌출혈이 온 아이를 돌보시는 보호자(엄마)분이 지나가던 날 붙잡고 엄마 상태를 물어보고는 차차 좋아지실 거라고 조금만 힘 내고 나부터 좀 잘 챙겨 먹으라며 따스히 말씀해 주셨다.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눈물이 갑작스레 터져 나올 것 같아 감사하단 말만 드리고 급히 자리를 비웠다. 화장실에 들어가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 내고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혼이 났다.

오래 머물 수는 없겠지만 어서 빨리 병실을 옮길 수 있으면 좋겠다. 어쨌든 그분도 재활을 받으러 온 뇌출혈 환자셨다. 낮동안 빡빡한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밤동안엔 푹 쉬셔야 했는데 밤잠을 오랜 시간 제대로 주무시질 못하니 피로가 쌓이셨을 테다. 게다가 현재 인지가 정상적으로 보이시긴 하지만 뇌를 다치신 분이니 배려나 이해 같은 것들이 부족하다거나 성격이 변한 것일 수도 있는 일이다. 시간이 흘러 상황이 나아질때까진 버티는 수 밖엔 답이 없다.

여담이지만 유명한 대부분의 재활병원은 소변줄, 목관, 균 등을 가지고 있으면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가 그 상황이 아니라서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며 확실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런 것이 없어도 엄마가 현재 비교적 위중한 상태가 되어버리면서 병원 측은 엄마와 함께 병실을 쓰는 사람으로부터 불편하다는 컴플레인을 받게 된 것이다. 이곳은 새로 생긴 병원이라서인지 의사 선생님들의 철학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변줄, 목관을 하고 계신 분들이 종종 보인다.


나는 그분들을 보는 게 좋다. 그분들 옆에서 성심껏 간병하시는 보호자분들의 간절한 바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재활을 받는 환자분들의 의의지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더뎌서 그렇지 근 한 달, 오며가며 본 내가 보아도 그 분들 역시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환자의 상태가 위중해도 실력 있는 의료진과 좋은 환경에서 열심히 재활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점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런 희망을 본 것 같았기 때문에 자꾸 눈이 가고 마음이 쓰였다. 나는 앞으로도 이 병원이 환자들에게 그런 좋은 환경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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