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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Feb 08. 2023

(D+118) 뇌출혈 후유증(2), 삼킴 장애

영양부족과 잦은 구토증상

병원에서 집으로 온 뒤 처음 3일은 내리 잠만 잤다. 저녁 9시에 누워 다음날 아침 9시가 되어도 몸이 무거워 일어나기가 힘들기에 낮에도 침대 혹은 소파와 한 몸 생활을 했더니 3일 정도가 지나자 무언가 해 보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영화 슬램덩크도 보고 평소 가보고 싶던 브런치 카페에도 가 보았다. 내친김에 미용실에 들러 머리도 노랗게 탈색을 하고 사랑스러운 회사 동기들을 만나 짧지만 임팩트 있게 점심도 한 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 주가 쏜살같이 지나가버렸지만 나름 알차게 놀고 푹 쉬었다. 꿀 같은 휴식이었다.

오랜만의 휴식과 아이들과의 시간이 너무도 행복해 이틀 정도 더 집에 머물다 오고 싶었지만 간병인 여사님이 자꾸만 돈을 올려 달라고 전화를 하시는 통에 더 지체하기는 어려웠다. 엄마가 돌보기에 편한 사람이 아님을 나 역시 잘 알고 있기에 이미 여기 병원의 기존 시세보다 일당 1만 원에 식사까지 추가해 챙겨드리고 있는 터였다. 병실도 2인실이라 다른 곳과 비교해 지내기에 불편하진 않은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간병인 여사님의 힘들다는 투정과 돈을 올려달라는 요구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 힘든 간병이라는 업을 택하신 것이고 엄마는 자신의 가족도 친구도 아닌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여사님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한 번 올라간 단가는 되돌리기 어려울 테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엄마를 신경 써서 살뜰히 챙겨주시지는 않았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 내 거절의 가장 큰 이유였다. 나는 그녀와의 통화에서 어리고 세상물정 모르는 그러니까 벗겨먹기 손쉬운 보호자의 돈을 조금이라도 더 뜯어보겠다는 고약한 심보 같은 걸 느꼈다. 나의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만약 병원으로 돌아와 엄마의 상태를 보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면 그때 웃돈을 드리며 마음을 표현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돈을 자꾸 올려달라고 하신다면 업체 측에 다른 분으로 변경요청을 하겠다고 강수를 놓자 간병인 여사님은 그럼 현금으로 간병비를 달라는 말과 함께 꼬리를 내렸다.

일주일 만에 만난 엄마는 여전했다. 언듯 보기엔 살짝 더 좋아 보이기도 했는데 간병인 여사님이 나가신 뒤 나는 바로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침에 한 피검사 결과에서 영양부족이라는 판정이 났기 때문이다. 결국 영양보충을 위한 비급여 수액 처방이 떨어졌고 엄마는 다시 멍투성이 팔을 간호사 선생님께 내 드려야 했다.

영양부족까지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엄마의 상태가 조금은 나빠질 수 있다는 각오는 이미 하고 있던 터였다. 나도 힘들었던 엄마의 식사수발을 나만큼 해주리라고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간병인 여사님은 엄마가 식사 때마다 종종 토를 했다고 (이제야) 말했는데 속에선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잘 알겠다고 말한 뒤 감사인사를 하고 요구하신 데로 간병비를 현금으로 드렸다. 속상했지만 이미 지난 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싶었다.

재활병원에서 생활하다 보니 정말 환자들을 살뜰히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환자와의 애착관계까지 잘 형성한 간병인도 가끔 보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별로인 경우도 왕왕 보았는데 엄마의 경우는 단기간 간병을 하시는 분들을 고용한 것이라 더욱 좋은 분을 만날 확률이 낮은 것 같았다. 특히나 간병인 여사님이 다녀가실 때마다 엄마의 상태는 조금씩 나빠지곤 했기에 나는 간병인에 대한 큰 믿음이 없는 상태였다. 다만 다른 대안도 없으니 간병인 여사님의 단기 고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저 이번에 오신 분만큼은 무엇하나 내가 배워갈 것이 있는 분이시길 막연히 바랬다. 물론 이번에도 아니었지만.


그렇지만 나는 웬만큼 속상하거나 불만스러운 점들이 있어도 그러한 이야기를 간병인에게 토로하지도 에둘러 표현하지도 않기로 했다. 그 이유는 결코 내가 선량해서는 아니며 나의 금쪽같은 세 아이를 키울 때부터 직장생활을 병행했기에 자연스럽게 생긴 몇 가지 원칙을 엄마를 돌봐주시는 간병인에게 그대로 투영해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워킹맘인 나는 아이들이 어린 시절 타인의 손을 빌려 육아를 병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돌봄에 있어서만큼은 몇 가지 원칙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 첫 번째 원칙은 내가 보지 못한 사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탓하지 않기와 두 번째 원칙은 돌봄 전 꼭 필요한 부분은 명확하고 상세하게 지시하되 그렇게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을 따지지 않기였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아이를 아무리 잘 보려고 해도 사고라는 것은 별안간 일어날 수 있다는 것과 잘 돌봄의 기준과 방법이란 것이 저마다 다를 수 있으며 그런 만큼 나름의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함을 세 아이를 키우며 직접 겪기도 하고 사람들을 써보기도 하 알게 되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것다. 물론 이런 나의 원칙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이 기본적으로 양질의 돌봄을 해주려고 노력할 것이란 가정하에 유효한 원칙이긴 하지만 말이다.

보지 않았지만 엄마가 토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머릿속에 상황을 바로 그릴 수 있었다. 이미 지난날 엄마의 식사를 도우면서 내가 여러 번 겪었던 일이었다. 일단 한 번에 드린 음식물의 양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어른 수저가 아닌 기다란 티 스푼 사용을 부탁드렸는데 그냥 식판에 나오는 어른 수저를 사용한 모양이었다. 보지 않아도 결과를 통해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적게 뜬다고 해도 어른 수저를 사용할 경우 티스푼보다는 양이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양이 많아지니 더욱 삼키는 게 어려워졌을 테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여사님께 물을 달라고 했을 텐데 그때마다 또 여사님은 물을 주셨겠지. 탈수 걱정에 수분 보충을 충분히 해드려 달라는 나의 부탁까지 있었으니 더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나도 겪어보고야 알게 된 것이지만 한 수저를 뜰 때마다 물을 넘기며 음식물을 삼키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차라리 삼키는 것을 어려워하면 뱉어내도록 하는 게 옳았다. 일주일간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엄마는 번번이 구토를 했던 것 같았다.

엄마를 봐주신 간병인이 속한 업체에 전화를 해 항의를 할까 하다가 다시 마음을 잡고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바뀔 것 없는 결과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고 그분이 엄마를 진심으로 돌보았는지 아닌지는 그 분만이 아는 사실이니까.


일단 다시 엄마의 병간호를 다시 시작하면서 나는 식사시간 때마다 엄마의 잘못된 식사습관부터 바로잡기로 했다. 우선 사용하는 수저부터 원래의 것(티 스푼)으로 바꿨다. 또한 밥과 반찬을 먹은 다음 꼭 목젖이 움직이며 음식물이 꼴딱하고 식도로 넘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다음 숟갈을 엄마의 입에 넣어 드렸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엄마가 숟갈을 입에 넣어 달라고 해도 꼭 입을 벌려 이전에 드린 음식물이 잘 삼켜졌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식사 시간에는 되도록 물은 삼가였다. 식후 약을 드실 때에만 한두 모금 물을 마시도록 해야 하고 부족한 수분은 하루종일 틈틈이, 재활시간과 휴식 사이사이를 이용해 보충했다.

엄마는 우리가 먹는 일반 밥 같이 뻑뻑한 음식은 삼키기 특히 어려워했기에 간호사실에 요청하여 죽에 수분을 많이 머금게 해달라고 말씀도 한 번 더 드렸다. 국은 반쯤 버리고 연하제 하나를 태워 잘 섞은 다음 촉촉한 형태로 만들어 죽 한 숟갈 다음 반찬 한 숟갈, 국 한 숟갈 이런 순서로 떠 먹여 드렸는데 다행히도 일주일만 간병인 여사님과 생활해서인지 엄마는 금세 내가 유도하는 데로 기존의 식사습관 데로 돌아와 주었다. 나와 다시 식사를 시작할 때는 토할 것 같이 구역질을 하기도 했지만 물을 드리지 않고 작은 숟갈을 사용하면서 기를 쓰고 먹이기 시작하자 금세 양도 늘었다. 보통 1/2 그릇 이상, 잘 드시면 2/3, 3/4 정도까지 양이 늘었는데 적게 드셨다 싶은 날엔 뉴케어 150ml에 연하제를 태워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했다. 물도 계량컵을 이용해 하루 500ml 드시던 것을 최대 800ml까지 양을 늘렸다.

계속 3일에 한 번씩 피검사를 할 테지만 잘 따라와 준 엄마 덕분에 다음 피검사 결과는 크게 걱정스럽지 않았다. 다만 먹는 게 힘이 드니 엄마는 종종 "이래가 어떻게 사노~?"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난 엄마에게 "원래 태초부터 먹고사는 일은 힘든 일이야"라거나 "이미 많이 좋아졌으니 조금만 더 힘내자"라는 답을 들려주었지만, 엄마가 어서 빨리 좋아져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은 걷어지지 않았.


그래도 중환자실에 있던 때, 콧줄을 자꾸 빼는 바람에 속상했던 때를 돌이켜 보면 엄마는 확실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언젠가 엄마와 함께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예쁜 풍경도 감상할 수 있겠지. 그러니 조급해지지 말고 지금 이 시간에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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