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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Feb 07. 2023

(D+112) 휴식이 필요해

이비인후과에서 처방해 준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며 거짓말처럼 엄마의 호흡은 다시 좋아졌다. 밤에 깨는 일도 더러 있었지만 그럴 때에도 엄마는 그다지 말을 하거나 소리를 내지 않았고 가끔 내가 다가가도 얼른 자라고만 하는 통에 불편하던 체로 지내던 병실도 서서히 평화가 내려앉고 있었다.


문제는 기저귀 발진과 긴 식사시간이었는데, 식사시간이야 삼킴 장애 덕에 시일이 걸리는 일이라 적응하며 차차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치더라도 2주간 달고 있던 항생제 덕분에 수시로 설사를 하는 엄마의 엉덩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엄마를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겨 기저귀를 치우고 엉덩이 소독을 하고 발진 부위에 연고를 바르고 통풍을 위해 부채질을 하는 것도 매우 고되었는데 이게 식사시간과 겹치면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을 만큼 바빴다. 그래서 식사시간과 맞닿아 있는 재활시간에는 계속 지각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지각도 지각이지만 잠시도 쉴틈이 없이 몸을 움직여도 재활 프로그램 시간을 맞출 수가 없으니 마음도 몸도 자꾸만 지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문득문득 무거운 마음과 알 수 없는 짜증이 툭툭 올라오기 시작할 때 즈음 나는 지금 내가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2주간은 초긴장 상태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상황이 좀 나아졌다곤 하지만 지금도 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 그럴 만도 하다 싶긴 했으나, 딸인 내가 이렇나 열심히 한다고 해도 이만큼이나 힘들고 엄마의 나빠짐을 간신히 막아두는 정도의 느낌인데   이 힘든 간병을 대체 누가 제대로 해줄 것인가 하는 마음이 들어 도무지 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저렇게 버티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엉덩이 발진과 50원짜리 동전만 한 욕창을 제외하고는 엄마의 컨디션은 차츰 좋아지고 있었다. 물론 대학병원에서 한 달간 처방해 준 약 덕분이니 한시적인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게다가 밤에도 조금 더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으니 차차 나 역시 기존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 가량 시간이 흘렀지만 나의 상태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나빠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지속적으로 부족했던 수면시간 때문일까 아니면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하루일과가 너무도 버거웠던 것일까. 평소만큼 잠을 자도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야만 오전 재활까지 시간을 맞출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눈이 잘 떠지질 않아 아침마다 내적갈등을 겪었다. 게다가 종종 턱 밑까지 차오른 그 짜증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내던질뻔한 몇몇 순간들을 깻잎 한 장 차이로 막아내는 일도 더러 벌어졌다. 그런 내 자신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몹시도 당황스러운 며칠을 보냈는데 그러고 나서야 나는 결국 한 주간의 휴식을 결심할 수 있었다.


간병인에게 엄마를 맡기는 것이 불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이틀로 끝이날 간병 생활이 아니니 나 역시 주기적으로 휴식 기간을 정해 두는 것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내가 먼저 지칠 수는 없으니까. 다음 날, 나는 간병인 여사님에게 주의하셔야 할 것들과 신경 써서 꼭 해주셨으면 하는 것, 조금 느슨히 해도 되는 것들에 대해 말씀드리고 잠시 집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엄마와 감사하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푸욱 쉬고 깊게 충전해서 와야지!!! 그 사이 엄마도 별일 없이 평안한 하루, 무사무탈한 한 주를 보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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