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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Apr 28. 2023

전원, 다시 처음으로

입원 때 약속한 전원 날이다.

2주 전, 나는 엄마를 수술해 준 집도의 교수님께 대리진료를 보았었다. 친정까지 내려가서. 3차 병원은 힘들 거라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했고 직접 대리진료를 다녀보니 정말 그랬다. 3차 병원뿐만 아니라 2차 병원도 대부분의 신경과/신경외과에서는 지금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받아줄 수 없다고 했고 재활의학과는 VRE균이 해제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마음이 참 쓰라렸다.

어느 정도는 포기를 한 상태였지만 혹시 모르니 엄마를 수술해 준 선생님께 한 번 찾아나 가보자 싶었다. 새벽기차를 타고 딱 맞춰 도착한 예약한 시간에 나는 진료실에 들어갔고 교수님께 엄마의 상태가 적혀있는 요양회송의뢰서를 보여드리며 엄마의 상태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렸다. 교수님은 급격히 어두워진 표정에 한동안 아무런 말씀이 없는 것으로 본인의 안타까운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나는 한참을 침묵 속에 계신 교수님께 "혹시 엄마를 입원시켜 주실 수는 없을까요? 받아준다는 병원이 없는데 아무래도 지금 요양병원으로 바로 모시고 싶진 않아서요."라고 말했다. 교수님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하죠. 그분 제가 수술한 제 환자입니다. 지금 좋은 병원에 계시니까 거기 최대한 있을 수 있을 만큼 있으시고 퇴원 날짜 정해지면 간호사실로 전화 주세요. 제가 그날 입원시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너무 감사했는데 그동안의 수많은 대리진료와 거절의 답변이 떠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바람에 흐르는 눈물 때문에 제대로 감사하다는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몇 차례 숙여 인사를 드리고 빠르게 진료실을 빠져나왔었다.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을 나와 재활의학과로 오고부터 무언가 조금씩 일이 풀리기 시작할 모양이었는지 엄마도 두 번째로 찾아온 급성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드는 추세인 듯싶었고 간병인 여사님도 여적 보아오던 분들과는 다르게 엄마를 잘 챙겨주시게 막상 전원을 하려니 아쉬운 마음이 컸다.

병실 복도에서 마주한 교수님은 VRE 때문에 다양한 재활을 받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무척이나 미안해하셨지만 나는 엄마를 받아준 것만 해도 너무나 감사했다. 여기서 호흡재활을 하며 엄마는  맞춤이 가능해지고 5리터나 사용하던 산소도 제거했다.


나의 너무 감사하다 말에 교수님은 도리어 내게 너무 죄송하다 말씀하셨고, VRE해제되면 다시 오고 싶다는 나의 말에 그러라고 답변하셨다.

모든 퇴원 수속이 마무리되자 나는 엄마와 함께 사설 구급차에 올랐다. 그래도 119 탈 때보단 사설구급차 탈 때가 마음이 덜 아리구나.  

3시간 조금 넘게 걸려 도착한 경대병원. 엄마가 쓰러지고 바로 실려와 어마어마하게 큰 수술을 받았던 병원. 만 6개월도 더 지났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 같아 조금 서글퍼졌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한다. 조금 돌아 다시 왔을 뿐. 처음 쓰러지셨던 그때처럼 점차 엄마는 회복되실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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