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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Apr 26. 2023

(D+182)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다

지난 2주간 이틀에 한 번씩 병원에 들렀지만 엄마를 본 건 딱 2번, 합쳐서 약 5분가량이었다. 첫 번째 엄마를 본 날은 간병인 여사님이 30분도 넘게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물건을 전해줘야 한다는 핑계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살며시 올라갔다가 병실에 앉아있는 간호사 선생님이랑 딱 마주치는 바람에 아주 짧게 끝이 났다. 간호사 선생님이 엄청나게 뭐라고 하시는 바람에 1분도 채 보지 못하고 나는 병실에서 곧장 퇴출당하고야 말았다.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의 경우 병실마다 간호사 선생님 한 분이 상주해 계시고 엄마의 대소변 양 체크부터 체위변경, 석션까지 꼼꼼히 챙기신 단 걸 알고 있으니 돌봄적인 부분이 걱정스럽진 않았으나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 시간, 간병사 여사님은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엄마를 닦이시느라 30분도 넘게 바쁘게 왔다 갔다 하시고 계셨고 자연히 내 전화는 받지 못한 것이었는데 나를 보시고는 깜짝 놀라셔 선 전화가 온 줄도 몰랐다며 미안하다 하셨다. 의도치 않게 불시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엄마를 씻겨드리고 정성껏 닦여드리는 모습을 보니 참 많이도 안심이 되었다.


두 번째 엄마를 본 날은 교수님 면담을 신청해서였다. 교수님 회진 시간에 맞춰 기다리다 엄마의 상태를 여쭤보겠다는 것은 사실 핑계였다. 간병인 여사님이 하루를 마감할 때쯤 엄마의 사진과 하루일과를 긴 장문의 문자로 보내주시고 계셨기에 나는 대략적인 엄마의 상태는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교수님 면담을 핑계 삼아 엄마를 한 번 보았으면 했던 것이었다. 휴게실에서 기다리다 교수님이 오셨다는 여사님의 전화에 지나가는 교수님을 붙잡고 복도에서  이것저것 여쭤보았다. 다 알고 있던 이야기지만 호흡재활을 통해 5리터까지 들어가던 산소를 이젠 아예 쓰고 있지 않는다는 것과 엄마와의 눈 맞춤이 조금씩 되고 있다는 것, 차츰 의료진을 알아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교수님의 입으로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병원에 온 김에 엄마를 잠깐이라도 보게 해 주시면 안 되겠느냐는 나의 요청에 교수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고 뒤편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은 못마땅해하셨으나 결국 허락은 떨어졌다. 단, 침대에서 멀찍이 떨어진 뒤편에서 잠깐만 엄마를 본다는 조건이 붙었다. 멀찍이 떨어져 엄마를 보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소리도 못 내고 눈물만 펑펑 쏟다 그냥 나왔었다.

그렇게 두 차례 엄마를 잠깐 보긴 했지만 오늘은 내 생일이었기에 엄마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간병인 여사님과 며칠 전부터 머리를 맞대고 다시 면담을 요청하는 법, 검사를 하러 갈 때 보는 법 등을 고민하던 차에, 간병인 여사님을 통해 요청드린 휠체어를 태우기가 이젠 매일 가능하다는 주치의의 허락이 떨어졌다고 했다. 바로 오늘, 내 생일날부터. 나는 어쩌면 이번 생일이 엄마와 함께 하게 될 마지막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 생일만큼은 엄마와 보내고 싶었는데 내 생일을 기점으로 이젠 매일 엄마를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간병인 여사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같은 시간에 휠체어를 태울 테니 사람들이 거의 없는 2층 연결통로에서 매일 보자고 하셨다. 이송원이 있다지만 매일 휠체어를 태운다는 것이 어쩌면 번거롭다 여길 수도 있는 일인데 기꺼이 같은 시간 오라고 하시는 간병인 여사님이 참 감사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정말 많이 좋아져 있었다. 목관 때문에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눈빛만큼은 또렷했다. 움직여지는 엄마의 왼쪽 손을 잡으니 엄마가 내 손을 미약하게나마 쥐는 느낌도 났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오늘은 울기보다는 많이 웃기로 했으니까 꼭 참았다. 휠체어를 밀며 같이 피아노 연주음악을 듣고 한적한 복도를 산책했다. 그리고 햇볕이 아주 잘 드는 창가에 멈춰 선 다음 엄마와 눈높이를 맞추고 엄마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엄마, 나를 낳아주어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나는 엄마가 이렇게라도 살아있어 주어서 너무 좋아. 고마워. 조금만 더 힘내자"라고.

처음 엄마가 쓰러지고 큰 수술을 거쳐 중환자실에 있다 일반병실로 내려왔던 딱 그 시기, 그러니까 작년 가을즈음이 떠올랐다. 엄마는 또 한 번 찾아온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아주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중인 것 같았다. 때보다 회복되는 속도와 정도가 더 느려진 것 같다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하루 1mm라도 어제 보다 건강해진다는 것.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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