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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잉고잉 박리라 Apr 20. 2023

(D+172) 엄마, 이젠 나의 삶도 돌보려 해

일반 병실로 내려온 지도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그 사이 엄마의 상태는 아주 조금 호전되고 있었다. 왼쪽 손가락만 하나 둘 움직이는 정도에서 이제는 조금씩 손 자체를 아주 살짝 들기도 하는 정도가 되었고 눈을 뜨고 있는 시간도 하루 5-10분 정도였다면 1-2시간가량으로 늘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 무너졌다. 일반병실로 내려온 뒤 하루종일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도 엄마와 손을 잡고 있을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았지만 지난번 "연명치료 중단 사태" 때 받은 충격 때문인지 나는 이따금 불안에 휩싸여 우울감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엄마가 이렇게 눈만 잠깐씩 뜨는 상태로 계속 여러 해를 보내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내게 담당 교수님의 의견은 치명상이 되어 돌아왔다. 담당 교수님은 엄마의 의식 회복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계시는 듯했다. 어쩌면 이 상태에서 별 다른 차도 없이 3주가 흐를 수도 있다고. 분명 아주 조금씩 좋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아진다 하더라도 예전의 상태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의사들은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호자에게 이야기를 전한 다는 것은 이미 숱하게 겪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끝도 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마음이 올라올 줄을 몰랐다.

그래서였을까. 엄마가 쓰러졌던 초반, 내게 찾아왔던 호흡곤란과 불면증, 두통이 다시 찾아왔다. 엄마와 재활병원에서 함께 생활하며 모두 사라졌던 증상이었는데 지난 뇌경련 및 연명치료 중단 사태 이후 약하게 다시 생겨난 그 증상이 엄마와 함께 병원생활을 하며 심해진 것이었다. 밤에 보호자침대에 몸을 누이면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가 않아 앉아서 눈을 붙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자 간병인을 구해놓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고되고 잠을 푹 자지 못하는 것이야 재활병원에서도 늘 그래왔던 일이다. 약해질 데로 약해진 마음이 조그마한 부정적 의견에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서는 올라올 기미가 없으니 버티다 못한 몸이 신호를 주는 것이리라. 간병인을 구해 엄마와 거리를 조금 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병실은  간호사 선생님이 늘 상주해 계시며 석션에 체위변경까지 꼼꼼히 챙겨주시기에 꼭 내가 아니더라도  좋은 품질의 돌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는 점이었다.

면회가 되지 않으니 간병인을 쓰는 동안에는 엄마를 볼 수 없다. 그 점 때문에 몹시 망설여졌지만 일단 나부터 챙겨보기로 한다.

엄마, 복직 전까지 최선을 다해서 내가 직접 엄마 돌봐주려고 했는데 이젠 간병인을 써야 할까 봐. 어머님이 사춘기 딸이 대하기가 많이 어려우시데. 막내도 밤마다 나를 찾아서 힘들다고 하시니 마음도 쓰이고... 무엇보다 몸이 조금 이상해.

그렇지만 엄마가 하늘나라 간다고 하기 전까지 나 엄마 포기 안 할 거야. 엄마가 살아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엄마 편히 지낼 수 있게 좋은 환경에서 있을 수 있게 내가 든든히 받쳐줄게. 간병인 쓰는 비용이 정말 상상을 초월해. 엄마가 알면 정말 기겁할 걸? 그래도 엄마가 알뜰하게 모아둔 덕분에 우리 집이 가난하지 않아서 나도 직장 생활하며 경제활동 했었기에 모아둔 돈이 좀 있어서 참 다행인 것 같아. 아니, 무척 감사한 일이지.

그리고 싫은 소리 잘 못하는 내 성격도 이참에 고쳐보려 해. 엄마 상태는 내가 꼼꼼히 챙기면서 간병인한테 필요한 건 똑 부러지게 요구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하고 그렇게 할게.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 아빠도 이젠 너무 약해져 버린 걸.

엄마 옆에서 자꾸 조급해하고 불안해해서 미안해. 답답하고 캄캄한 이 터널이 끝나지가 않을 것만 같은 좋지 않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봐. 발자국만 떨어져 엄마 속도에 맞게 엄마 지켜봐 줄게. 내가 조금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아. 그래서 이제부터는 나도 나의 삶도 돌보려고 해. 면회가 되든 안되든 이틀에 한 번씩은 병원에 올 거야. 그래서 간병인한테 물품은 다 내가 가져다준다고 얘기해 뒀어.

어차피 퇴원날짜가 정해져 있으니까 그때 맞춰서 갈 수 있는 큰 병원도 찾아야 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시 대리진료도 예약해 보려고. 우리 서울에 엄마 받아준다는 큰 병원 없으면 다시 친정집 근처로 가자. 내가 큰 병원들 차례로 대리진료 보구 엄마 입원시켜 준다는 곳 찾아낼게. 꼭 그렇게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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