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선을 건너지 마오

관계에는 언제나 적정 선이 필요하다

by 유메이

나는 초보운전이다. 그래서 운전 중에 옆에 차가 조금이라도 내 쪽으로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경적을 울리게 된다. 나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부딪치게 될까 봐 본능적으로 방어 기세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조금이라도 다른 차선으로 기우뚱하게 되면 영락없이 ‘빵’, ‘빠아앙-‘, ‘빵빵!’ 여기저기서 경적 세례를 받는다. 내 의도가 어떤지, 그 사람이 초보운전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실수였든, 의도적이었든지 간에 나는 허락 없이 다른 차선을 넘으려고 했던 눈치 없는 운전자가 되어 버린다.


차와 차 사이에는 누구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선명한 차선이 존재한다. 미리 깜빡이를 켜고 주변 차량에게 암묵적인 동의를 구해야만 차선을 넘어 내가 원하는 차선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은 비상등에 실어 뒷 차에게 전달도 가능하다. 도로 위에 보이지 않는 법칙과 규율이 존재하기에 오늘도 많은 차들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목적지를 향해 오가고 있다.




어째서 인간관계에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선’이 없는 것일까-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왜 몇몇 사람들은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상식이라는 ‘선’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걸까-

무엇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치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몸과 멘털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주는 걸까-



생전 처음 보는 타 부서 사람이 나에게 다소 무리한 부탁을 요구했다. 지인이라도 여러 번 고민했을 법한 일을 초면인 나에게 너무나도 당당히 말한다. 어찌나 당당한 지 순간 부탁이 아니라 명령을 받은 기분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무례한 부탁에 시간과 노력을 들일만큼의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조심스레 그래도 예의 바르게 거절 의사를 전했다. 그 순간 표정이 변한 그 사람은 나에게 너무 ‘경우’가 없고 ‘예의’가 없다며 되려 언성을 높인다.


‘님아, 그 선을 건너지 마오’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꾹 눌렀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사건이 머릿속을 미처 떠나기도 전에 또 다른 사람이 나를 과속으로 들이받는다. 엄연히 담당자라는 이름표가 걸려있는 업무를 상관도 없는 나보고 조사해서 다음 날 오전까지 알려달란다. 메일 수신 시간은 퇴근 직전인 5시 50분.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물어보러 자리로 찾아가 보니 덩그러니 놓여있는 ‘원격근무 중입니다’라는 팻말. 원투 펀치로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짐을 싸서 그냥 나와 버렸다. (물론 퇴근시간이 다 되기도 했다.) 예의 없고 상식 없는 존재들로 가득한 공간에 단 1초라도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임인년 호랑이 기운으로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날이 새 날인 2022년 1월의 어느 날. 나에게 왜 이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생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몇 가지 이유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많은 원인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무슨 부탁이든 들어줄 것만 같은 만만 오브 만만, 일명 호구였다. (원인 : 나 100%)

부탁한 사람이 그런 요구를 해도 될 만큼 나와 친하다고 착각한다. (원인 : 나 50%, 그 사람 50%)

자신이 그 어떤 무리한 부탁이라도 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원인 : 나 10%, 그 사람 90%)


모든 원인이 많든, 적든 나에게 있었다. 교통사고에서 한쪽 편만의 100% 과실이 거의 없는 것처럼, 누군가가 선을 넘을만한 틈을 제공한 나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앞으로는 물을 엎지르지도 않고 혹여 물이 엎질러졌다면 시시비비를 확실히 하려고 한다. 앞으로는 보이지 않는 선의 침범을 내 선에서 최대한 막아보겠다.


일단 한 번 부탁을 들어주면 두 번, 세 번 그 이상의 부탁은 더욱 쉽게 그리고 당연하게 요구한다. 그 한 번이 문제였다. 앞으로 그 한 번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 전달되는 부탁에 대한 대답의 디폴트 값은 ‘No’, ‘안 됩니다’로 정했다. 업무에 대한 모든 내용(심지어 대화 내용도)을 기록하고 관련된 사람 모두에게 실시간으로 공유할 예정이다. 훗날 헛소리를 지껄이면 이메일과 회의록이 소중한 증빙자료가 될 것이니-


나이, 직급 다 떠나서 당신과 내가 그다지 친하지 않음을 표정과 말로 직접 표현하겠다. 심각한 표정으로 “이런 무리한 부탁을 저에게 하는 저의가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되묻겠다.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내 대답은 ‘No’로 정해져 있으니까.


올 한 해 호랑이 기운으로 ‘선을 넘는 사람들’이 선을 넘지 못하도록 업무의 적정 선, 관계의 적정 선을 내가 직접 긋고 지키려고 한다. 그 선 안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나의 시간, 나의 노력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넓디넓은 회사라는 정글 안에서 나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오직 나 한 명뿐이다.


작가의 이전글21년의 52번째 주를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