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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Apr 15. 2024

비의 색깔




봄은 일찍이 2월

겨우내 노지에서 자란 초록 봄동을 수확하는

멀리 남녘 하늘과 산, 그리고 바다가 푸른

청산도(靑山島) 사람들의 바쁜 손길에서 시작했다.

비탈진 산골짜기의 계단식을 건넌 봄은

바쁜 걸음으로 뭍에 올랐다.

산수유 노란 꽃이 지천으로 핀

남도를 뒤로하고,

봄은 분홍빛 꽃길로 북녘으로 진격했다.   


그렇게 인천의 봄은 시작되었고

여물지 않은 어린 고양이의 발톱을 닮은

3월의 바람이 얼굴을 할퀸 지도

벌써 몇 날이나 지나고

어느새 4월 중순이 되었다.

뭉그적거리며 어깃장 놓던 겨울을 멀리 보낸

봄은 막상 제가 떠날 차례가 되자

서러움에 잠을 설키며 뒤척인다.


간밤 누군가 톡톡하고

나지막하니 창을 두드린다.

선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어보니

성긴 어둠은 얼굴에 빗방울을 튀긴다.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 아래로

하얀 물방울이 흩어지며

여남은 어둠을 밀어낸다.

아침은 물기 젖은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비와 함께 시작한 아침은 봄날의 이별을 준비한다.


속으로 울음 참던 봄은

새벽 댓바람부터 눈물깨나 뿌리더니

저 혼자 가기 서러운 마음에

기어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여린 꽃잎을 떨구면

거리에는 낙하한 꽃잎이 눈처럼 쌓인다.  


몇 해인지 모를 나의 봄도

비에 젖은 채 나뒹군다.

언젠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까.

이 봄이 가고 나면 다음 봄까지

몇 날이고 잠 못 이루며 기다릴 것이다.


비의 소리와 비의 내음에 낭만에 빠진다.

일조량이 줄어들고, 햇빛이 사라진 만큼

세로토닌도 감소하고

자칫하면 우울해지고, 쳐지기 좋은 시간이다.

무채색의 비가 떨어지면

앙증맞은 색색의 우산이 넘실거리고

오만 가지 조명에 반사된 비는

거리를 울긋불긋 색칠한다.   


대기 중의 빗방울이 소리를 머금는 탓에

소음이 한결 잦아들어 좋다.

높은 습도는 커피 향을 더 짙게 하고,

더 오래 머무르게 한다.

이런 날은

열대의 뜨거운 태양을 먹고 자란

커피를 마시며

빗소리에 마음을 맡기면

비 오는 날의 풍경으로 들어간다.  


평소 분주하던 사람의 발길은 뜸하고

간간이 창밖으로 들려오는

자동차 바퀴의 물보라 소리만 빼고 나면

사방이 고요한 이때는

옛일을 생각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우산을 받쳐 들고

도화동 성당의 비에 젖은 라일락을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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