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stable 하나?
며칠 전, 미국에 사는 친척에게 1,000달러를 송금할 일이 있었다. 익숙한 ㅇㅇ은행의 모바일 앱을 열고 해외송금 절차를 밟았다. 송금액과 수취인 정보를 입력하자 곧바로 수수료가 떴다.
‘환전 수수료 1.75%, 송금 수수료 1만 원, 전신료 8,000원….’
이내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1,000달러(약 135만 원)를 보내는 데 총비용이 약 139만 원, 그런데 수취인은 약 975달러만 받는다. 내가 약 4만 원, 수취인이 1만 원 이상을 부담하는 셈이 니, 총송금 비용은 5만 원을 넘는다. 시간은 또 어떤가.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을 빼고 순수 영업일로만 계산해도 1~3일이 걸린다. 긴급한 결제나 송금 상황에서는, 느린 속도에 속이 터질 지경이다.
이런 불편한 경험은,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원화 스테이블 코인 도입 논쟁’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국가가 아닌 민간 기업이 통화를 다룬다’는 사실 자체를 낯설고 불안하게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전통 은행보다 빠르고 훨씬 저렴한 송금을 가능하게 하는 스테이블 코인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스테이블 코인’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Stable(안정된)’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은 가치가 안정된 디지털 화폐를 뜻한다. 미국 달러(USD), 유로, 금 등 실물 자산에 1:1로 연동되기 때문에, 비트코인처럼 시세가 급격하게 출렁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스테이블 코인으로는 테더(USDT), USD코인(USDC), 다이(DAI)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안정성’의 핵심은 이들 코인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점에 있다. 스테이블 코인은 중앙은행이나 은행 없이도 전 세계 어디든 빠르게 송금이 가능하고, 송금 수수료도 0.1~1% 수준으로 매우 저렴하다. 이처럼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화폐라는 개념은 비트코인이 최초로 세상에 알려지며 시작되었다.
블록체인, 믿을 수 있나?
이쯤 되면 “도대체 블록체인이 뭔데 그렇게 믿을 수 있다는 거야?”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쉽게 말해, 블록체인은 ‘모두가 함께 쓰고 검증하는 디지털 장부’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친구 10명이 캠핑을 갔다고 해보자. 각자의 텐트 앞에 큰 장부를 하나씩 놓고, ‘누가 무엇을 가져왔는지’, ‘누가 물을 퍼왔는지’, ‘어떤 과일을 몇 개 가져왔는지’ 등을 그때그때 적는다. 이 장부는 모두가 함께 보고, 누구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 몰래 내용을 지우거나 바꾸려 하면, 나머지 9명이 곧바로 “그건 아니야!” 라고 지적할 수 있다.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내용을 기록한 장부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그 안의 거래 내용은 모두에게 공유된다. 이 구조에서는 아무도 혼자서 내용을 조작할 수 없다. 만일 누군가 장부를 바꾸려 한다면, 자신의 장부만 아니라 다른 9명의 장부까지 동시에 바꿔야 한다. 참여자가 1,000명, 10,000명으로 늘어난다면? 장부를 조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결국 거래의 신뢰를 보장하는 것은 정부나 금융기관이 아니라, 그 네트워크에 참여한 수많은 개인이라는 뜻이다.
이 원리를 디지털 환경에 구현한 것이 바로 블록체인 기술이다. 블록체인에서는 일정 시간 동안 발생한 여러 거래 정보가 모이면, 하나의 ‘블록’에 기록된다. 이후 또 다른 시간의 거래 내용은 다음 블록에 저장되고, 이 블록들은 시간 순서대로 연속적으로 연결된다. 마치 디지털 장부의 페이지들이 사슬처럼 이어지듯, 먼저 생성된 블록과 그다음 블록은 암호화된 기술로 단단히 연결된다. 그래서 이를 ‘블록체인’(block + chain)이라 부른다.
모두가 본다, 그러나 누구인지는 모른다.
캠핑장의 장부와는 달리, 블록체인 기술로 구현된 디지털 장부는 거래 내용이 모두에게 공유되지만, 누가 누구에게 보냈는지에 대한 신원 정보는 암호화되어 있다. 이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람이 백만 명, 천만 명으로 늘어나면, 더더욱 전체 거래 기록을 조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처럼 블록체인은 투명한 거래 구조와 개인 정보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는 기술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중앙은행이나 특정 기관 없이도 ‘신뢰’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구조다. 즉, 수많이 연결된 컴퓨터들이 서로의 거래를 검증하며, 신뢰를 분산된 방식으로 만들어낸다. 이 신뢰 메커니즘을 실생활에 가장 먼저 적용한 것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발행량이 제한되어 있어 희소성을 지니며, 이 점에서 ‘디지털 금’처럼 투자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실제 통화로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부담이 크다. 오늘 1비트코인이 1억5천만 원이더라도, 내일은 1억4천만 원 혹은 그 이하로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비트코인은 기존 금융 시스템과는 다른 ‘디지털 안전 자산’으로 점차 인식한다. 탈중앙화, 검열 저항성, 투명한 기록이라는 특성 덕분에, 일부 투자자들은 이를 불안정한 세계 경제 속에서 새로운 가치 저장 수단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국 내 일부 주 정부는 비트코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하고 실제 매입을 추진 중이다. 나아가 연방 정부 차원에서 도 비트코인의 제도권 편입을 둘러싼 논의와 실험이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높은 가격 변동성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 디지털 화폐는 ‘1코인 = 1달러’처럼, 가치가 실물 자산에 연동되어 고정된 환율을 유지한다. 스테이블 코인은 1코인이 발행될 때마다 동일한 가치의 달러, 채권, 예금 등이 담보로 예치되기 때문에, 시세가 급변하지 않는다. 덕분에 해외 송금이나 일상 결제 등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 훨씬 더 안정적이다. 이 같은 구조를 원화에 적용해 ‘1코인 = 1원’으로 연동하면, 바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된다.
은행과 블록체인, 누가 이길까?
1,000달러를 송금할 때, 은행과 코인의 비용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실제로 위의 사례처럼 1,000달러를 미국으로 송금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래 표는 은행과 스테이블 코인의 송금 방식을 단순화해 비교한 것이다.
은행을 이용하는 것보다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하면, 나와 미국에 있는 친척을 합쳐 약 5만 원이상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게다가 송금 시간도 실시간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급하게 돈을 보내야 할 상황에는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하다. 송금자는 저렴한 비용으로, 수신자는 중간 수수료 없이 전액을 온전히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이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이다. 더구나 은행 계좌 없이도 송금이 가능하다는 점은 매우 혁신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테이블 코인이 단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스테이블 코인을 통한 송금을 제도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른 세금 처리, 자금세탁 방지 등 주요 이슈도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은행 계좌 없이 송금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제도적 미비로 인해 자칫 자금 은닉 혐의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또 하나의 현실적인 문제는 기술 장벽이다. 필자가 나름 쉽게 설명했지만, 실제로 코인을 이용해 본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코인 거래소 가입, 지털 지갑 설치, 출금 경로 설정 등은 일반 사용자에게는 상당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하만 명확한 제도적 지침이 마련되고,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구축된다면, 스테이블 코인의 접근성은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신속성과 비용 효율성이라는 장점만 보더라도, 이제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시점이다.
문제는, 기존 금융권의 반발이다. 송금 속도와 수수료 측면에서 스테이블 코인이나 비트코인과 경쟁이 어려운 시중은행들로서는, 이 변화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금융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문턱 앞에서, 전통 금융기관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지금, ‘신뢰의 패러다임’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스테이블 코인을 사용할지 말지를 고민하거나, 비트코인을 인정해야 할지 여부를 두고 논쟁할 때가 아니다. 전통적인 금융 거래의 신뢰 방식이 탈중앙화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은행 없이도 돈을 보내고, 종이 없이도 계약을 맺으며, 중앙기관 없이도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세상. 그 중심에 블록체인이 있고, 그 위에 비트코인과 스테이블 코인이 존재한다.
미래 금융, 선택은 우리 몫
미국 정부가 왜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화하려 하고,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자산으로까지 인정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트럼프 대통령이 단지 코인으로 한몫 잡으려는 걸까? 아니면 그의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가상자산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움직이는 걸까? 그렇게 보기엔 뭔가 부족하다. 어쩌면 그들이 알고 있는 '무언가'가 따로 있는 건 아닐까?
미국은 수십 년간 막강한 달러 패권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를 좌우해 왔다. 그런 미국이 디지털 통화 시대에도 그 힘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 번 달콤한 권력을 맛본 이는 좀처럼 그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국가라고 해서 예외일 리 없다. 미국이 스테이블 코인과 비트코인을 그토록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전략적으로 끌어안으려는 이율배반적 태도, 어쩌면 그 속엔 세계 통화의 패권 유지라는 동기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은행도 이미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실험에 착수했다. 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 내부에서도 디지털 통화를 수용할 준비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테이블 코인은 빠르고 비용이 저렴하다. 그러나 아직 관련 규제가 미비하고, 자금세탁 등의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반면, 전통적인 은행 송금은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제도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즉, 중앙집중식 전통 금융은 느린 처리 속도와 높은 비용을 감수하는 대신, 법적 보호라는 안전장치를 확보해 왔다. 반면,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은 빠른 송금 속도와 낮은 비용이라는 강점을 갖는다. 게다가 블록체인 기술은 이미 안정성과 익명성 측면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장점을 적극 수용하되, 금융이 지녀야 할 공공성과 신뢰라는 핵심 가치를 결코 놓치지 않는 ‘균형 감각’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이제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디지털 원화 시대가 올 것인가?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단순히 “사기”라고 몰아붙이기엔, 암호화폐가 제공하는 편의성과 기술적 안정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제대로 들여다보고,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더는 낯선 용어와 복잡한 기술 때문에 고개를 돌릴 때가 아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면, 우리도 그 언어와 기술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스테이블 코인이든, 디지털 원화든 중요한 것은 너무 늦지 않게, 제대로 된 길을 찾는 일이다. 비판하려면, 먼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기술을 수용하는 사회의 첫걸음이자,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