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색(色)의 권력화
사람에게 있어 먹을거리의 빨간색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색이 있다. 바로 우리가 입는 옷의 색깔이다. 누군가의 옷차림을 보면, 그 사람의 색감 취향이나 패션 감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강렬한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은 열정적으로 보이고, 깊은 가을 하늘을 닮은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은 지적인 인상을 준다. 물론 옷의 색만으로 한 사람의 됨됨이를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어떤 이미지를 추구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색은 단순한 꾸밈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인간이 색을 자유롭게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전 원시 시절에는 옷다운 옷도 없었기에, 색깔 있는 옷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색을 만들 수조차 없던 시대였다. 나뭇잎을 얼기설기 엮어 옷을 대신하던 시절에야 색깔이 뭐가 중요했겠는가.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천을 짜고 염색하는 기술을 익혔고, 마침내 색을 지닌 옷을 입기 시작했다. 특히 여인들이 옷 색깔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본격적인 ‘색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단순한 꾸밈을 넘어, 색은 점차 사회적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마침내, 옷의 색깔과 옷감은 신분과 권력을 상징하는 도구가 되었다. ‘색(色)의 권력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염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원색의 강렬함을 지닌 빨간색은 특히 귀하고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질 좋은 붉은색 옷감으로 만든 의상은 늘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옷을 붉게 물들이고, 붉은 장신구로 몸을 꾸몄다. 특히 신분이 높을수록 빨간색은 권위와 위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이야 화학 염료의 발달로 옷감을 쉽게 붉게 물들일 수 있지만, 오래전에는 빨간색을 얻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그 강렬한 색을 손에 넣었을까? 그 비밀은 크기가 겨우 5밀리미터에 불과한 아주 작고 연약한 곤충, 연지벌레에게 있었다. 그 작은 몸에서 길어 올린 피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맑고도 뜨거운 색, 빨강이었다.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깨끗하고 선명한 빨강이, 그렇게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코치닐의 붉은 염료
한때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쓰이던 붉은색 염료, 카민(Carmine)은 멕시코와 중남미의 부채선인장(Opuntia)에서 자라는 연지벌레에서 비롯되었다. 이 벌레의 정확한 이름은 코치닐(Cochineal)이다. 이 작은 암컷 곤충은 선인장의 즙을 빨아들이며 살아가다가, 붉은 색소를 가득 품은 알을 낳고는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사람들은 죽은 연지벌레를 나무 주걱으로 조심스럽게 긁어내고, 햇볕에 말려 곱게 빻는다. 그렇게 얻은 고운 분말이 바로, 선명하고 귀한 붉은 염료였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피를 닮은 색, 생명을 닮은 색을 찾아, 몸에, 옷에, 그리고 예식에 새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연지벌레에서 붉은 색소를 얻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아름답고 선명한 붉은 염료 1kg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게는 약 7만 마리의 연지벌레가 필요했다. 이 작은 곤충들로 염료를 만드는 일은 고되고도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붉은색은, 금보다도 비싼 색이었다.
훗날 스페인이 중남미를 침략했을 때, 정복자들은 연지벌레에서 추출한 카민의 붉은색에 흠뻑 매료되었다. 그들은 이 염료를 유럽으로 가져가 비싼 값에 팔아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카민은 곧 스페인 제국의 새로운 ‘붉은 금’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고귀한 색은 스페인 왕실과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독점되었고,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군림했다.
수많은 연지벌레의 희생으로 얻어진 이 빨강은, 값으로 따져도 결코 가벼운 색이 아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붉은 염료는 햇빛에도 잘 바래지 않는, 희귀하면서도 영속적인 색이었다.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은 대대로 물려줄 고급 비단옷이나, 왕실의 제의 예복에 이 붉은색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심지어 로마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들 또한 연지벌레의 빨간 염료로 물든 옷을 입고 예배를 집전했다. 마침내, 연지벌레의 피로 물든 이 붉은빛은 권위와 영원의 상징이 되었다.
같은 이름의 서로 다른 곤충, 연지벌레
이미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는 떡갈나무에 기생하는 벌레 '커머스(Kermes)'에서 붉은 색소를 추출했고, 이 벌레 역시 당시 사람들에게는 ‘연지벌레’라 불렸다. 이 붉은 염료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다 훗날, 중남미에서 온 ‘코치닐(Cochineal)’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멕시코와 페루의 선인장에 기생하는 이 벌레 역시 ‘연지벌레’로 불렀다. 결국 서로 다른 대륙, 서로 다른 곤충이 만들어낸 붉은색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강렬한 색을 하나의 이름으로 기억했다 — 연지벌레.
그 시절, 빨간색은 너무나도 귀한 색이었다. 연지벌레에만 기대기에는, 붉은 염료는 너무도 부족하고 값비쌌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지벌레의 빨강 외에도, 또 다른 붉은색을 찾아 끊임없이 나섰다. 서양에서는 꼭두서니의 뿌리에서 붉은 염료를 추출했고, 남미의 원주민들은 브라질 나무의 진액에서 진한 빨강을 얻었다. 이러한 식물성 염료들은 각 대륙에서 옷감, 제사 의식용 의복, 귀족들의 장식물에 사용되며, 점차 귀함과 권위의 색으로 자리 잡아갔다.
자연에서 얻은 연지벌레의 빨간색과 꼭두서니의 붉은 염료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지만 구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 1856년, 영국의 화학자 윌리엄 헨리 퍼킨(William Henry Perkin)이 합성염료를 개발하면서, 천연염료의 사용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1970년대, 합성염료가 건강에 유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다시 천연염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식물에서 추출한 붉은 염료가 주목받으며, 다양한 식품과 직물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피를 닮은 색, 생명을 닮은 색을 찾아, 몸과 삶, 그리고 의식의 자리에 붉은빛을 새겨 넣었다. 축제의 화관에도, 신전의 제단에도, 신부의 뺨에도, 빨강은 언제나 가장 앞줄에 놓였다. 그것은 단지 아름다움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의 증거, 존재의 표식이었다. 수많은 연지벌레의 죽음을 통해 얻어낸 이 빛깔 좋은 빨강은, 오랫동안 생명과 권위의 색으로 세상을 물들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