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과목 우등생, 범용 AI의 등장
알파고는 바둑만 두고, 자율주행차는 운전만 한다. 번역 AI는 번역만 하고, 생성형 AI는 대화와 글을 만든다. 각자 영역에서는 뛰어나지만, 한 발만 벗어나면 무력하다. 이런 인공지능을 우리는 ‘좁은 AI(Narrow AI)’라 부른다.
그렇다면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 인공지능)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의 AI가 '각 과목 특기생'이라면 AGI는 '전 과목 우등생이'이다. 현재 AI는 특정 작업에 특화되어 있지만, AGI는 인간처럼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학습할 수 있다. 처음 보는 게임 규칙을 이해하고 전략을 세운다. 낯선 환경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AGI이다.
AGI는 물리학 지식으로 요리의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고, 심리학적 이론으로 더 나은 대화를 이끈다. 예술적 감각을 발휘하여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팔방미인을 넘어, 못 하는 것이 없다. 이런 AGI가 실현되면, 처음에는 인간 수준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24시간 지치지 않고 학습하고, 방대한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하지만, AGI가 실현되려면 단순히 알고리즘만 발달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해결해야 할 첫 번째 난제는 컴퓨터 연산 능력의 한계다. 지금도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먹어 치운다. 그런 AGI가 모든 영역을 넘나 든다면? 바둑에서 운전, 언어에서 의학과 법률까지. 필요한 데이터양뿐만 아니라 이를 처리할 연산 능력, 저장 공간, 에너지 소비까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인간 뇌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작동한다. 이를 컴퓨터로 구현하려면 현재 슈퍼컴퓨터 수백 대가 필요하다. AGI가 여러 분야를 실시간으로 오가려면, 이보다 훨씬 강력한 성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거기에 사용할 에너지, 막대한 전력 소비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숙제다.
지금까지 우리가 관찰한 기술의 역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왔다. 인간 뇌를 본뜬 IBM의 뉴로모픽 칩은 기존 칩 대비 전력 소모를 1/1000로 줄였다. 구글의 양자 컴퓨터는 특정 계산에서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1억 배 빠른 성능을 보였다. 이런 혁신의 흐름을 보면, AGI를 향한 기술적 도전들도 언젠가는 돌파구를 찾을 것이다.
기술의 발달은 공상과학을 현실로 만들어왔다.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의 출현 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 ‘인간다움’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운명을 좌우할 미래를 방관하는 셈이다.
지구의 주인,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
지구에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난 뒤 30억이 흘러 영장류가 등장했다. 약 600만 년 전 인류와 침팬지의 공통 조상이 아프리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어느 날, 호기심 많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남방원숭이)가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 순간, 인류 탄생을 향한 위대한 여정이 시작됐다.
세월이 흘러 최초로 석기를 제작해 사용한 '도구의 인간', 즉 호모 하빌리우스가 등장했다. 뒤이어 등장한 호모 일렉투스는 불을 다루며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불은 밤을 밝히고, 추위를 이기게 했으며,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했다. 불의 발견은 인류를 자연에 적응하는 존재에서,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했다.
네안데르탈인은 혹독한 빙하기를 견디며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번성했다. 이들보다 조금 늦게 우리의 직접 조상인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했다.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두뇌가 급격히 좋아지는 '인지 혁명'이 일어났다. 이들은 상징적 사고와 상호소통하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위대한 문명을 발달시켰다.
약 1만 년 전 농업혁명과 함께 인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야생 밀을 재배용으로 개량하고, 늑대를 길들여 개로 만들었다. 오늘날 사람과 함께 살며 사랑받는 반려견은, 인간이 자연을 길들인 성공적인 사례다. 인간은 자연에 수동적으로 적응하지 않고, 자연을 변형하기 시작했다.
약 250년 전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자연 지배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증기기관으로 시작된 기계문명은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돌파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생물학적 변화를 기다리는 대신, 기술로 자연환경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추위를 견디도록 진화하는 대신 난방을 발명했고, 어둠에 적응하는 대신 조명을 만들었다. 이제 인류는 또 다른 혁명의 문턱에 서 있다.
호모 알고리투스(알고리즘 인간)의 등장
21세기, 유전공학·나노기술·뇌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하나씩 허물고 있다.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로 유전병을 교정하고, 인공장기로 수명을 연장한다. 이제 인간은 장기를 교체하며 불멸에 가까워지고 있다. 불멸의 인간 “호모 데우스(Homo Deus)”의 등장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닌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진짜 주목해야 할 순간은 AGI가 첨단 로봇공학과 합성 생물학과 융합하는 때다. 2023년, 스탠퍼드 대학은 인간 근육세포로 작동하는 바이오 로봇을 개발했다. 일본 도쿄대는 살아 있는 피부를 로봇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외형은 인간과 다르지 않지만, 사고체계는 순수 알고리즘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 새로운 존재를 ‘알고리즘 인간’ 또는 호모 알고리투스(Homo Algorithus)라 부를 수 있다.
알고리즘 인간은 인간의 감정 패턴을 데이터로 학습해 모방할 것이다. 슬픔의 표정, 기쁨의 행동, 공감의 반응을 완벽히 재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감정인지, 아니면 정교한 시뮬레이션인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학습 데이터에 오류나 편견이 없다면 그들의 감정 반응은 생물학적 인간보다 더 일관되고 합리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진화인가, 멸종인가?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인공 존재, 즉 '호모 알고리투스(Homo Algoritus)'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고도로 발달한 기계로 규정해야 할까? 이것은 단순한 학술적 논쟁이 아니라, 인류 진화의 완성인지 아니면 인류의 멸종인지를 가름할 중요한 문제다.
학계는 이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기능주의자들은 의식을 마치 소프트웨어처럼 생각한다. 컴퓨터 게임이 PC에서 실행되든 플레이스테이션에서 실행되든 본질적으로 같은 게임인 것처럼, 의식도 어떤 물질 위에서 돌아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고, 창작한다면 그것도 진짜 의식이라는 것이다.
반면 생물학적 자연주의자들은 의식을 몸과 분리할 수 없다고 본다. 인간의 뇌는 단순한 정보 처리 기계가 아니라, 수억 년 진화의 산물로 만들어진 특별한 화학 공장이라는 것이다. 뉴런들이 주고받는 전기 신호, 도파민·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 심지어 혈액 순환까지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의식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호모 알고리투스는 진짜 의식을 흉내 낼뿐 결코 진정한 의식을 가질 수는 없다고 본다.
호모 알고리투스의 등장은 더 이상 공상이 아니라 충분히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관건은 이 거대한 변화를 어떻게 관리하고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윤리적 기준을 만들고 법적 체계를 구축하는 일도 준비해야 한다. 호모 알고리투스가 실제로 등장한다면, 그것이 인류 진화의 완성일지 아니면 인류의 종말일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결과가 우리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