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있지만 수익은 없다.
AI 산업을 둘러싼 거품 논쟁이 격렬다. AI 기업의 상당수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주장이 잇따른다. 최근 OpenAI의 샘 올트먼조차 "AI 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라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경고했다.
이 때문에 2000년 닷컴 버블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I 기업으로 수백억 달러가 쏟아지는데 정작 실적은 미미하다. 인공지능 학습에 결정적인 고품질 학습 데이터는 고갈되고 있다. 고가의 엔비디아 GPU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지지 제대로 된 결과물이 없다고 거품론자는 주장한다.
닷컴 버블의 광기로 넘쳤던 2000년으로 가보자. 펫츠닷컴(Pets.com)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온라인으로 강아지 사료를 팔겠다며 수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변변한 비즈니스 모델은 없었다. 10kg 사료 한 포대를 배송하는 데 드는 물류비용이 판매가격보다 비쌌다.
그래도 이 회사로 돈은 계속 들어왔다. 슈퍼볼 광고에만 수백만 달러를 쓰며 귀여운 양말 인형 마스코트를 만들어 유명해졌다. 결과는? 회사는 마스코트만 남기고 9개월 만에 파산했다. 많은 개인 투자자의 재산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또 다른 닷컴 기업인 웹벤(Webvan)의 사정도 비슷했다. 온라인 식료품 배송의 선구자를 자처하며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받았다. 전국에 거대한 자동화 창고를 짓고, 수천 명을 고용했다. 하지만 주문량은 예상의 10분의 1도 안 됐다.
당시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우유를 사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2년 만에 파산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마켓컬리와 쿠팡의 신선 제품 배송의 원조였지만 20년을 앞서갔다. 기술이 사람들의 습관보다 빨랐다.
더글로브닷컴(TheGlobe.com)은 소셜 네트워킹의 초기 시도였다. IPO 첫날 주가가 606% 폭등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실제 수익 모델은 전혀 없었다. "일단 사용자를 모으면 나중에 방법을 찾겠다"라는 논리였다. 그 '나중'은 오지 않았다. 2001년 주가는 97% 하락했고, 결국 파산했다.
이들이 망한 이유는 하나였다. 기술은 있었지만, 시장은 없었다. 혁신은 있었지만, 수익은 없었다.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투자금을 끌어모았지만, 그 돈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클릭 수만 늘리면 된다", "점유율이 곧 수익이다", "먼저 진입해 덩치를 키워야 한다." 이런 막연한 믿음이 투자자를 현혹했다. 거품이 꺼지면서 그들의 재산은 먼지처럼 날아갔다.
불길한 반복: AI 산업의 닷컴 데자뷔?
지금 그런 비슷한 말이 곳곳에서 들린다. "사용자만 늘리면 된다", "데이터가 곧 경쟁력이다", "시장을 선점하고 덩치를 키우면 산다." 2025년 AI의 이야기가 2000년 인터넷 광풍 때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것과 다를 바 없다.
"데이터만 많으면 된다", "모델 크기가 곧 성능이다", "범용인공지능(AGI, 인간 수준의 모든 지적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AI)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닷컴과 용어는 다르지만, 비슷한 논리가 반복되고 있다. 수익 창출보다 기술 지표에 집착하고, 비즈니스 모델보다 미래 비전을 강조한다. 당장의 경제성보다 미래의 혁명성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닷컴의 '순환 투자 구조'가 재현된다는 점이다. 닷컴 버블 때 많은 인터넷 기업들은 서로에게 광고를 팔며 매출을 부풀렸다. A 기업이 B 기업 웹사이트에 광고를 내고, B 기업은 그 돈으로 C 기업에 광고를 낸다. 외부에서 실제 돈이 들어오지 않는데도 장부상 매출은 늘어난다. 자기 돈으로 자기 빵을 사 먹는 착시였다.
지금 AI 산업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관찰된다. 2024년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AI 기업들의 총지출 중 많은 자금이 클라우드 인프라(주로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아마존 AWS, 구글 클라우드)에 사용된다. 이 클라우드 기업들은 다시 엔비디아에서 GPU를 구매하는 데 수백억 달러를 지출한다.
AI 기업들이 클라우드 서비스에 수십억 달러를 쓰고, 그 돈은 다시 AI 칩 제조사로 흘러간다. 칩 제조사는 다시 AI 연구에 투자한다. 돈은 산업 내부에서만 순환하고, 실제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자금은 제한적이다.
데이터 고갈 문제도 심각하다. 닷컴 버블 때 많은 기업이 "인터넷 시장은 무한하다"라고 믿었지만, 실제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장은 한정적이었다. 지금 AI 기업들은 "데이터는 넘쳐난다"라고 믿지만, 고품질 학습 데이터는 고갈되고 있다.
인터넷의 모든 텍스트, 이미지, 영상을 학습했지만, 성능 향상은 둔화하고 있다. 더 많은 데이터를 모으려면 합성 데이터(AI가 만든 데이터)나 독점 데이터에 의존해야 하는데,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하드웨어 의존도도 문제다. 닷컴 버블 때 시스코(Cisco)는 "인터넷 인프라의 필수품"으로 주목받으며 시가총액 5,550억 달러를 기록했다. 거품 붕괴 후 주가는 90% 폭락했다. 거대한 독점기업의 추락은 산업 전체를 흔들었다.
닷컴의 시스코는 지금의 엔비디아와 겹쳐 보인다. "AI 인프라의 필수품"으로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돌파했다. AI 기업들은 GPU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 만약 AI 수요가 꺾이거나, 대체 기술이 나타나면? 엔비디아는 시스코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은 그때와 다르다?
하지만 표면적 유사성만으로 AI를 닷컴 버블과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한 단순화다. 두 시대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닷컴 기업들은 망했을 때까지도 어떻게 돈을 벌지 몰랐다. 펫츠닷컴은 사료를 팔수록 손해였고, 웹밴은 배송할수록 적자였다. 더글로브닷컴은 아예 수익 모델 자체가 없었다.
반면 AI는 이미 명확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OpenAI는 2024년 연간 매출 50억 달러를 돌파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은 월 30달러 구독료로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깃허브 코파일럿은 개발자 한 명당 월 10~19달러를 받으며 흑자를 내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 고객들이 AI에 기꺼이 돈을 낸다는 점이다. 메킨지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도입한 기업의 65%가 비용 절감 효과를 실감했다고 답했다. 이는 닷컴 시대의 "언젠가 수익이 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닷컴 기업들의 서비스는 대부분 '있으면 좋은' 수준이었다. 펫츠닷컴이 없어도 사람들은 동네 마트에서 사료를 샀다. 더글로브닷컴이 없어도 친구들과 연락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AI는 이미 업무 현장에서 필수 도구가 되고 있다. 법률 회사 앨렌 앤 오버리(Allen & Overy)는 2023년 하비(Harvey) AI 시스템을 전 세계 사무소에 도입했다. 회사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변호사들이 계약서 한 건을 검토하는 시간이 평균 4시간에서 30분으로 87.5% 단축됐다.
마케팅 분야도 마찬가지다. 코카콜라는 2023년 OpenAI와 파트너십을 맺고 'Create Real Magic' 캠페인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했다. 회사의 CMO 마누엘 아로요(Manolo Arroyo)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AI 도입으로 크리에이티브 제작 시간이 평균 70% 단축됐다'라고 밝혔다.
코딩 분야의 변화는 더 혁명적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깃허브 코파일럿을 사용하는 개발자들은 코드 작성 속도가 55% 빨라졌다고 보고한다. 기본 코드 틀을 자동 생성하고, 버그를 찾아내며, 더 나은 알고리즘을 제안한다.
실리콘밸리의 복수의 기술 기업 리더들이 비슷한 증언을 내놓고 있다. 2024년 스택오버플로우(Stack Overflow) 개발자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6%가 'AI 코딩 도구가 생산성을 높였다'라고 답했으며, 44%는 '주니어 개발자 역할의 상당 부분을 AI가 대체할 수 있다'라고 응답했다.
살아남은 기업들
닷컴 버블에도 살아남은 기업들이 있었다. 아마존, 구글, 이베이가 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나? 명확한 수익 모델과 실질적 가치 창출이었다.
아마존은 책을 팔아 실제 돈을 벌었다. 구글은 검색 광고로 수익을 냈다. 이베이는 거래 수수료를 받았다. 펫츠닷컴처럼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아니었다. 웨반처럼 미래의 막연한 기대에 의존하지 않았다.
지금 AI 산업을 보면, 이미 '아마존과 구글'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Open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AI 서비스는 실제 매출을 올리고 있다. 기업들은 이 서비스에 기꺼이 구독료를 낸다. 이는 닷컴 버블이 터질 때 대부분의 기업이 수익 모델 자체가 없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엔비디아를 시스코에 비유하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시스코가 몰락한 이유는 단순했다. 닷컴 기업들이 무너지면서 인터넷 인프라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시스코는 네트워크 장비라는 단일 시장에 의존했고, 그 시장이 사라지자 함께 무너졌다.
엔비디아의 상황은 다르다. GPU는 AI뿐 아니라 게임, 데이터센터, 자율주행, 과학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게다가 엔비디아는 하드웨어만 파는 것이 아니라 CUDA라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는 마치 애플이 아이폰만 파는 게 아니라 앱스토어 생태계를 만든 것과 유사하다.
물론 AI 수요가 꺾이면 엔비디아 주가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코처럼 90% 폭락할 가능성은 낮다. 시장 다각화와 생태계 구축이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진짜 위험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AI에는 거품이 전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AI 전체가 거품이냐?"가 아니라 "어떤 AI 기업이 거품이냐?"다. Open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처럼 이미 수익을 내고 실질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들은 닷컴 시대의 아마존이다. 하지만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 없이 "우리도 AI 한다"며 투자금만 끌어모으는 기업들은 펫츠닷컴이 될 위험이 크다.
진짜 위험은 투자자들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AI"라는 단어만으로 모든 기업에 돈을 쏟아붓는 것. 2000년 "닷컴"이 그랬듯이 말이다. 닷컴 버블의 진짜 교훈은 "인터넷이 거품이었다"가 아니다. "가치 없는 인터넷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거품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마존과 구글은 그 시기를 견뎌내고 세계를 바꿨다.
AI는 닷컴이 아니다. 이미 수익을 내고 있고, 실질적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들이 존재한다. 닷컴 버블 때 대부분의 기업이 "어떻게 돈을 벌지 모르겠다"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AI 산업 내에도 펫츠닷컴과 웹밴 같은 기업들이 분명 존재한다. 막연한 미래 비전만 내세우며 투자금을 태우는 기업들 말이다. 문제는 AI 전체가 아니라, 가치 없는 AI 기업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2000년 인터넷은 거품이 아니었다. 다만 펫츠닷컴에 투자한 사람들이 손해를 본 것뿐이다. 2025년 AI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AI는 거품이 아니다. 다만 당신이 어떤 AI 기업을 선택하느냐가 문제다. 질문은 "AI가 거품인가?"가 아니다. "당신이 투자하려는 그 AI 기업은 아마존인가, 펫츠닷컴인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