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 걸어 나온 AI
2024년 1월, 테슬라의 옵티머스(Optimus) 로봇이 셔츠를 개는 영상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말문이 막혔다. 서툴지만 집요하게 천을 펼치고 접는 금속 손가락들. 마치 인간의 손을 흉내 내려 애쓰는 아이 같았다.
20년 전 닷컴 기업들은 온라인 공간에만 머물렀다. 웹사이트와 이메일, 그 너머로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AI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알고리즘이 센서와 모터를 만나 살과 뼈를 얻었다. 이제 AI는 화면 밖으로 걸어 나와 우리 곁에서 물건을 집고, 계단을 오르고, 작업장에서 땀 흘린다.
현대자동차가 2021년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Atlas)는 이 변화를 상징한다. 2024년 전기 버전으로 재탄생한 아틀라스는 무거운 물체를 들고 언덕을 가로지른다. 사람의 지시 없이도 작업 현장을 스캔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예상치 못한 장애물 앞에서 경로를 재계산한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런 장면은 블레이드 러너나 AI 같은 영화에서나 가능했다.
AI 피규어(Figure)는 2024년부터 BMW 공장에서 인간 노동자와 나란히 일한다. 자동차 부품을 픽업하고, 정확한 위치에 조립하며, 품질 검사까지 수행한다. 과거 산업용 로봇은 정해진 동작만 반복했다. 마치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와 같았다. 하지만 피규어 AI는 다르다. 부품이 예상 위치에서 단 몇 센티만 벗어나도 시각 인식으로 찾아낸다. 컨베이어 벨트가 갑자기 멈춰도 당황하지 않고 대안을 찾는다. AI가 '적응'과 '문제 해결'이라는 인간의 본질을 배운 것이다.
중국의 유니트리(Unitree)는 2천만 원대 휴머노이드 로봇 G1으로 시장에 충격을 줬다. 테슬라나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정교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물건 나르기, 청소, 간단한 조립 작업은 해낸다. 이는 휴머노이드가 더 이상 실리콘밸리 연구실의 전시품이 아니라, 공장 바닥에도 설 수 있는 현실적 도구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격 장벽이 무너지면 기술은 대중화된다. 자동차와 스마트폰이 그랬다.
의료계와 협업하는 AI
AI는 의료계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는 단백질 구조 예측으로 2024년 노벨화학상의 문을 열었다. 과거 하나의 단백질 구조를 밝히려면 X선 결정학이나 극저온 전자현미경 같은 수억 원짜리 장비와 수십 명의 박사급 연구진,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알파폴드는 그 과정을 몇 분으로 압축했다.
영국 바이오테크 엑스사이엔티아(Exscientia)는 알파폴드를 활용해 강박장애 치료제 후보 물질을 발견했다. 전통 방식이라면 4-5년 걸릴 작업을 12개월로 단축했다. 화이자와 노바티스 같은 제약 거인들도 AI 기반 신약 개발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이들은 더 이상 AI를 '실험'하지 않는다. AI는 이미 생산 시스템의 핵심이 되고 있다.
구글 헬스의 AI는 당뇨병성 망막증을 90% 이상의 정확도로 진단한다. 인도와 태국 같은 국가에서는 안과 전문의 한 명이 수십만 명의 환자를 책임진다. 그 결과, 실명 위험을 조기에 발견할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제 작은 마을 보건소에서도 안저 사진 한 장으로 AI가 즉시 위험도를 판별한다. 의료는 더 이상 도시에 머물지 않고 소외 지역으로 향한다.
이 사례들은 닷컴 버블 때의 펫츠닷컴(Pets.com)이나 웹반(Webvan)과 본질이 다르다. 당시 기업들은 "언젠가 작동할 것"이라는 약속만 팔았다. 하지만 알파폴드는 노벨상을 받았고, AI 영상 진단은 오늘도 수만 명의 환자를 살핀다. 그리고 신약 개발 시간은 놀랄 만큼 단축되고 있다. 이것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제대로 수익을 올리는가?
2000년, 인터넷 기업들은 비전만 있고 돈 벌 방법은 없었다. "언젠가는 벌 것"이라는 신념으로 투자를 받았지만, 실제 제품도, 고객도, 수익 구조도 흐릿했다. 그러나 2025년의 AI 기업들은 다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I로 연 175% 성장해 130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엔비디아는 AI 칩 수요로 2024년 매출이 126% 급증했다. 이것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숫자다.
투자 과열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기술의 과잉이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1990년대 후반 광섬유 케이블에 천문학적 투자가 쏟아졌고, 대부분의 통신 기업들은 파산했다. 하지만 그 케이블은 남았다. 그 위에서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그리고 줌이 탄생했다. 버블은 터졌지만 인프라는 살아남았다. AI도 마찬가지다. 일부 기업은 사라지겠지만, 기술 자체는 증기기관, 전기, 인터넷처럼 산업 구조를 혁명적으로 재편할 것이다.
닷컴 버블과의 결정적 차이는 '수익 모델의 명확성'이다. 2000년 펫츠닷컴은 마스코트 양말 인형만 유명했지, 실제 비즈니스는 작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5년 오픈 AI의 ChatGPT는 하루 2억 명이 사용하고, 깃허브 코파일럿(GitHub Copilot)은 130만 유료 구독자를 확보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I로 연간 수십억 달러를 벌고, BMW는 피규어 로봇으로 생산 효율을 높인다.
그렇다고 주의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일부 스타트업은 과대평가됐고, 무분별한 투자도 있다. 하지만 "AI 스타트업 95%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통계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새로운 기술 물결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 1990년대 수천 개 인터넷 기업 중 살아남은 건 소수였지만, 아마존과 구글은 그 소수에 속했다. 테슬라, 엔비디아, 오픈 AI, 구글, 이들이 창출하는 가치는 실패한 수백 개 스타트업의 손실을 압도한다.
거품보다 성장통
그렇다면 AI는 거품인가, 아닌가? 정답은 "거품"보다는 "성장통"에 가깝다. 사무실의 코파일럿부터 공장 바닥의 휴머노이드, 병원의 진단 AI, 실험실의 알파폴드까지, 이것들은 허상이 아니다. 만질 수 있고, 측정할 수 있으며, 매일 사용되는 실체다.
무엇보다 우리가 매일 AI를 사용하고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Claude나 ChatGPT를 열고, AI가 생성한 코드를 리뷰하며, 로봇이 조립한 제품을 사용하는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이것은 펫츠닷컴의 양말 인형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의존하는, 이미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현실이다.
만에 하나 AI가 거품이고 터질 수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해도, 거품이 터진 자리에는 인프라가 남는다. 그리고 그 위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닷컴 버블이 터진 뒤 남은 광케이블 위에서 유튜브가 탄생했듯이, AI 알고리즘은 진화를 거듭하며 로봇의 두뇌가 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닷컴 붕괴로 수많은 사람이 재산을 날렸지만, 눈 밝은 이들은 그 속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그들은 아마존과 구글의 가능성을 보았고, 그들에게 배팅했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AI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과잉 속에서 진짜 가치를 구별하는 안목, 그것이 필요한 시대다. 제2의 아마존과 구글은 이미 우리 곁에 있을지 모른다. 중요한 건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