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아웃소싱
며칠 전 갑자기 인터넷이 끊겼다. 불과 반나절이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보고서도 쓸 수 없었다. 생성형 AI 도움이 없으니 나는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AI 도구 없이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만들어야 하니 불편함이 컸다. 인터넷이 복구되었을 때, 씁쓸한 깨달음이 밀려왔다. 나는 이미 AI에 깊이 중독되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답을 생각하기보다 '어디서 검색할지'를 먼저 떠올린다. 인지과학자들은 이를 '인지적 오프로딩(Cognitive Offloading)'이라 부른다. 뇌가 처리해야 할 정보를 외부 장치에 맡기는 현상이다. 생성형 AI 이전까지는 적어도 '무엇을 검색할지'는 스스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제 ChatGPT는 질문조차 대신 만들어준다. "이것에 대해 알고 싶으시군요. 그렇다면 이런 측면도 고려해 보세요." 이 편리함이 우리의 '생각하는 근육'을 위축시킨다.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AI에게 사고의 출발점까지 의존하면, 우리는 결국 AI가 만든 프레임 안에서만 생각하게 됩니다." 생각을 아웃소싱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AI만 바라보며 살게 된다.
선택한다는 착각
우리는 넷플릭스, 유튜브, 쿠팡에서 선택한다. 아니, 선택한다고 착각한다. 사실은 AI가 제공한 선택지 중에서 고를 뿐이다. 추천 알고리즘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은 '능동적 탐색 능력'을 잃어간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것만 보여주기 때문에 세계는 점점 좁아진다.
한 직장인은 고백한다. "최근 1년간 본 영화 50편이 전부 비슷한 장르더라고요. 예전엔 극장에서 우연히 만난 영화가 인생작이 되기도 했는데, AI가 내 취향을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새로운 경험이 차단됐어요." 우리는 선택하는 것 같지만 선택당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사실조차 우리는 모른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부모님 전화번호조차 기억나지 않아 당황한다. 이제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외부 기억 저장소'로 사용한다. 그 결과, 실제 기억력이 저하되고 있다. 컬럼비아대 심리학자 베치 스패로우(Betsy Sparrow) 교수 연구팀은 2011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람들이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정보를 기억하려는 노력을 덜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를 '구글 효과(Google Effect)'라 부른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 저장이 아니다. 기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지식을 축적하고 정체성을 형성한다. AI에게 기억을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은 자신을 만들어갈 기회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내 땅에 기초를 다지지 않고, 임대한 토지 위 임시 기초에 건물을 올리는 격이다.
문학상이나 미술대회에서 AI의 손길이 닿은 작품은 늘 논란거리다. 최종 후보작이 'AI의 도움을 받은 것 같다'는 의심을 받는다. 문장이 지나치게 매끄럽고, 색채가 인상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완벽해서'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다. 효율은 얻었지만 개성을 잃어가는 세상이다. AI는 우리를 더 빠르게 만들지만, 서로 비슷하게도 만든다.
사라진 실패의 기회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AI를 도구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AI에 의존하며 살 것인가. 전자를 선택하면 우리는 여전히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로 남을 수 있다. 후자를 선택하면 '호모 알고리투스(알고리즘 인간)'가 될 위험이 있다. 생각을 아웃소싱한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 성장한다. 하지만 AI는 우리에게서 '실패할 권리'를 빼앗고 있다. 우리는 점점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AI 도구에 익숙해지면서 '정답'만 있고 '과정'은 사라졌다. 그 결과는 우려스럽다. 2023년 Copilot 관련 연구에서는, 일부 개발자들이 도구가 제안한 코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하는 경향이 보고되었다.
페니실린은 인류를 질병 감염의 위험에서 구했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우연히 페니실린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포스트잇은 실패한 접착제에서 탄생했다. 이처럼 많은 위대한 발견들은 종종 실수, 우연, 불편함에서 나왔다. 하지만 AI는 최적화된 경로만 제시하며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회로에서 만나는 우연한 발견의 기쁨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는 여백
버스 기다리는 5분, 엘리베이터 타기 전 30초, 잠들기 전 10분. 모든 틈새가 스마트폰과 AI로 채워진다. 덕분에 우리는 심심하지 않고, 매 순간을 즐길 수 있다. 우리 뇌는 쉬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AI 알고리즘의 자극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신경과학은 흥미로운 사실을 밝혔다.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활발하게 작동한다. 이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 부른다. 뇌가 외부 과제에 집중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신경망으로, 자기 성찰, 기억 통합, 창의적 사고가 일어나는 영역이다.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만유인력을 떠올렸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서 얼떨결에 부력의 원리를 깨달았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생각지 못한 순간에 탄생한다. 하지만 AI는 우리 뇌에게 그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창의성이 자라날 여백을 빼앗고 있다.
AI가 사랑의 메시지를 만들고, 사과 편지를 작성해 준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관계의 본질은 완벽한 문장이 아니다. 서툰 표현이라도 내가 직접 고민한 말이 중요하다. AI가 완벽하게 쓴 문장이 과연 내 진심을 담을 수 있을까? 관계에서 중요한 건 완벽한 말이 아니라 '애쓰는 모습' 그 자체다.
사람들은 말한다.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보다 ChatGPT에게 얘기하는 게 더 편하다고. ChatGPT는 절대 판단하지 않고, 항상 내 편이어서 좋다고 한다. 하지만 무조건적 동조와 판단 없는 위로가 과연 진정한 위로일까? 그것은 기계적인 공감에 가까울 것이다. 진짜 관계는 때로 불편한 진실을 말해주고, 내가 틀렸을 때 지적해 주는 데서 성장한다.
주도권을 되찾자
과연 우리는 인터넷 없이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는가? AI 도구 없이 보고서를 완성할 수 있는가? 가족 전화번호를 몇 개나 외우고 있는가? '아니요'라는 대답이 많아질수록 당신의 AI 의존 상태가 깊어진다. 이제 생각의 주도권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
일부 스타트업은 매주 수요일을 'No AI Day'로 정했다. 그들은 말한다. "AI 없이 코드를 짜려니 답답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알고리즘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어요. 실력이 느는 건 스스로 고민할 때예요." 생각의 아웃소싱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더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나부터 시작해야겠다. 주 1회, 24시간 동안 스마트폰과 AI를 끈다. 첫 초안은 반드시 내 손으로 쓴다. 자투리 시간에는 스마트폰 대신 지루함을 선택한다. 작은 불편함이지만, 이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다. 이를 통해 되찾는 것들이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불편함을 견디는 인내, 스스로 질문을 만드는 능력.
그렇다고 AI를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다. 원칙을 세우고 사용하자는 것이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하고 AI로 확인만 하자. 그리고 스스로 창작하는 과정을 생략하지 마라. 고민과 시행착오 자체가 중요하다. 그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우리의 창조성은 발달한다.
새로운 관계 설정
AI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구다. 이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로 남을 수도, '호모 알고리투스'에 가까워질 수도 있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인터넷이 복구된 후, 나는 곧바로 AI를 켜지 않았다. 대신 노트에 손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툴고 느렸다. 하지만 그 불편한 시간 속에서 깨달았다. 이 고민하는 과정, 이 서투른 순간들이 바로 '나'라는 것을. 나는 원래 수첩에 손글씨를 쓰곤 했다. 이제 그 습관을 더 강하게 지켜야겠다.
AI는 나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여전히 이 불완전하고 비효율적인 아날로그 과정들이다. 편리함의 대가로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일은 불편하고 느릴 것이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여전히 '인간'으로 남으려면 AI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