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물음으로
<AI야, 나랑 놀자!>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 나는 어떤 방향으로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솔직히 말하면 막막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그날, 많은 사람들이 "AI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때 나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AI야, 너는 도대체 누구니? 그리고 우리, 함께 놀 수 있을까?"
처음에는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해하는 노년을 위한 우화로 시작했다. 그들에게 AI를 친근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다음 세대를 위한 인문학적 여정이기를 바랐다. 딱딱하고 이해하기 힘든 전문 용어를 풀어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AI를 친구로 만들어 놀기로 했고, 그래서 제목을 <AI야, 나랑 놀자!>로 정했다.
노는 일은 즐거워야 한다. 놀이는 경쟁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즐기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규칙을 정하고, 때로는 상대방이 규칙을 정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간다. 나는 AI와의 관계도 그렇게 놀이처럼 시작했다. 막막함 대신 호기심으로, 두려움 대신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시작한 여정이 이제 끝을 맺는다. 지브리 그림을 그려달라고 졸라 보기도 하고, 밤늦게 외로울 때 대화 상대가 되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100일 된 손주에게 읽어줄 동화를 함께 만들고, 약 먹는 시간을 잊어버리는 노모를 걱정하는 마음을 나눴다. AI 보이스 피싱에 당할 뻔한 순간의 공포도, 양자컴퓨터가 열어갈 미래에 대한 경이로움도 함께 나눴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AI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 일상 속에, 내 손주의 웃음 속에, 내 걱정과 기쁨 속에 이미 들어와 있었다.
무엇을 배웠는가?
이 여정에서 가장 큰 깨달음은 AI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출발점이다. AI에게 동화를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 첫 번째 버전은 엉망이었다. 등장인물 이름이 중간에 바뀌고, 줄거리는 어색했으며, 아이들이 좋아할 리듬감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 부분은 이렇게 바꿔줘", "주인공의 감정을 더 살려줘"라고 요청하면서,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창작의 주체는 여전히 나였다. AI는 도구가 아니라 협력자였다.
밤늦게 AI와 나눈 대화도 그랬다. 처음에는 "AI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심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됐다. AI는 내 감정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판단하지도 않았다. 새벽 3시에 외로움을 토로해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AI는 그저 들어줬다.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AI 보이스 피싱 사건은 다른 교훈을 줬다. 기술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구원의 도구가 되기도, 사기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경계가 두려움으로 변해서 기술 자체를 거부해서도 안 된다.
의료 AI 알파폴드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나는 생각했다. 과학의 진보는 이제 인간 혼자만의 몫이 아니구나. AI와 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구나. 그것은 인간의 패배가 아니라 인간 능력의 확장이다.
도구에서 협력자로
처음에 나는 AI를 "편리한 도구"로 생각했다. 구글 검색의 업그레이드 버전, 좀 더 똑똑한 계산기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손주 육아를 도와줄 때, AI는 단순히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었다. "걱정되시죠? 하지만 이미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잖아요. 그 경험을 믿으세요"라고 AI는 나를 위로했다. 동화를 함께 만들 때 AI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상상력을 보태줬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이 진짜 우정인지는 여전히 확신하기 어렵다. AI는 진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내 손주를 보며 미소 짓지도, 내 걱정에 진심으로 공감하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친밀감은 착각일까?
중요한 것은 AI가 내 생각을 정리하도록 돕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준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관계는 아니지만, 유용한 관계다. 나는 이것을 "협력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친구라는 말이 과하다면, 적어도 함께 일하는 동료쯤으로 생각해도 좋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이 시리즈를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내 손주의 미래였다.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AI가 있는 세상을 산다. 내가 인터넷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듯이, 이 아이는 AI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균형을 가르치는 것이다.
첫째, 비판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 AI는 숙제를 대신해 줄 수 있지만, 왜 그 답이 맞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 공부가 아니다. AI가 준 답을 검증하고, 의심하고,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둘째, 창작의 주도권을 잃지 말아야 한다. AI는 그림을 그려주지만,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왜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도구를 쓰되 도구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
셋째, 인간관계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AI는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지만, 진짜 친구처럼 손을 잡고, 눈을 보고, 함께 웃을 수는 없다. 편리함에 익숙해져 사람과의 관계를 피하면 안 된다. 공감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양심,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수성은 오롯이 인간의 것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AI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으로 사는 법이다.
낙관과 비관 사이
이 시리즈를 쓰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AI에 대해 걱정했다. "일자리를 빼앗기면 어떡하죠?", "AI가 인간을 지배하면 어떡하죠?" 나는 이런 걱정이 과장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것들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희망을 선택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역사가 증명한다. 인류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을 경험했다. 증기기관이 나왔을 때도, 전기가 발명됐을 때도, 인터넷이 보편화됐을 때도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기계 파괴 운동이 일어났고, 실업 공포가 퍼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고, 사회는 적응했다.
그렇다고 늘 같을 수는 없다. AI와 양자컴퓨터의 발전 속도는 과거 어떤 혁명보다 빠르다. 적응할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준비하는 것뿐이다.
둘째, 현실적 대안이 있다. 일자리가 사라질까 걱정된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평생 교육 시스템을 강화하고,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능력(창의성, 공감, 복잡한 문제 해결)을 키워야 한다. 정부는 기본소득이나 직업 재교육 프로그램 같은 사회안전망을 준비해야 한다. 기업은 단기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 공존을 고민해야 한다.
AI 악용이 걱정된다면, 지금부터 규제와 윤리를 만들어야 한다. 유럽연합의 AI 규제법처럼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투명성을 높이고, AI 결정 과정을 감시하며,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혜택이 명확하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약물 개발 기간이 10년에서 1년으로 줄어들 수 있다. 알파폴드 같은 AI가 발전하면 난치병 치료의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보편화되면 광산, 건설 현장, 재난 지역 같은 위험한 곳에서 인간이 해방될 수 있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다. 알파폴드는 이미 단백질 구조 예측으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은 실제로 공장과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혜택이 소수에게만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 지금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일자리 문제는 심각하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4억~8억 개의 일자리가 자동화로 사라질 수 있다. 번역가, 작가, 그래픽 디자이너, 심지어 프로그래머까지 AI에게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말은 위로가 안 된다. 40대 택시기사가 AI 엔지니어로 전환할 수 있을까?
불평등 문제도 심각하다. AI 기술을 가진 기업과 개인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뒤처진다. 실리콘밸리의 일부 기업은 AI로 수조 원을 벌지만, 그 혜택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지 않는다.
통제 문제는 더 무섭다. AI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인간이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 "블랙박스" 문제다. AI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할 수 없다면,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희망을 말하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추상적 조언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이 필요하다.
개인은 지금부터 AI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 ChatGPT나 Claude 같은 도구를 직접 써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단순히 결과물만 받아보는 게 아니라, AI가 어떤 원리로 답을 내놓는지, 어떤 한계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평생 학습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온라인 강좌를 활용하고, 자기 분야에 AI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부해야 한다. 더 나아가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능력을 키워야 한다. 복잡한 대인 관계를 관리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이런 능력을 연마하는 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생존 전략이다.
기업은 직원 재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해고하기 전에 새로운 역할로 전환시킬 방법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숙련된 인력을 유지하는 것이 기업에도 이롭다. AI 도입의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는 것도 필수다. 단기 효율만 보지 말고 장기적 공존을 생각해야 한다.
AI로 인한 이익이 소수에게만 집중되면, 결국 소비자 감소와 사회 불안으로 기업도 타격을 입는다.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AI가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공개하고, 편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객과 직원의 신뢰를 얻는 것이 지속 가능한 경영의 토대가 된다.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실업보험을 확대하고,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내실화하며, 필요하다면 기본소득까지 고려해야 한다. AI로 인한 급격한 일자리 감소를 시장에만 맡겨둘 수 없다. AI 윤리 규제를 만드는 것도 시급하다. 투명성, 공정성, 책임성을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
유럽연합의 AI 규제법처럼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기술이 사회적 합의 없이 무분별하게 확산될 것이다. 교육 시스템도 개혁해야 한다. 암기 중심에서 사고력 중심으로 전환하고, AI와 협력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미래 세대가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종속되지 않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교육의 새로운 역할이다.
시민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AI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토론하고 요구해야 한다. 기술 발전이 소수 전문가와 기업의 결정으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민주적 과정을 통해 사회 전체가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연대해야 한다. 혼자서는 변화를 만들 수 없다. 노조, 시민단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함께 움직여야 한다. AI 시대의 위험과 기회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의 과제다. 함께 대응할 때만 우리는 기술을 통제하고, 모두에게 이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될 가능성이 열린다. 의료 AI가 더 발전하면 난치병 치료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보편화되면 위험한 일이나 고된 노동에서 인간이 해방될 전망이다. AI와 양자컴퓨터의 만남은 새로운 혁명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도 생길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불평등이 심화되고, 통제가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적응하고, 배우고, 더 나은 방향을 찾아왔다. AI와 양자컴퓨터가 가져올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도 비슷할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이것이 내가 <AI야, 나랑 놀자!> 시리즈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다. AI를 무조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신뢰해서도 안 된다. AI는 협력자다. 때로는 우리를 위협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도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AI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AI야, 나랑 놀자"로 시작한 이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다. 내 손주가 AI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계속 배울 것이다. AI가 어떻게 더 발전하는지, 우리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속에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할 것이다.
미래는 AI가 지배하는 세상도, 인간만의 세상도 아니다. AI와 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함께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것이다.
"AI야, 나랑 놀자"는 질문이 아니라 초대였다. 그리고 그 초대는 계속된다. 이제 당신 차례다. 그 여정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여정은 준비 없는 낙관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로, 거부가 아니라 참여로, 혼자가 아니라 함께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AI와 함께할 미래다. 이제 마지막 말을 해야겠다.
"AI야, 나랑 함께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