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6년 1월 19일 자 대구신문의 기획특집 [AI야! 나랑 놀자!] 에 게재된 내용이다.
피지컬 AI 원주민(Native)
경이로움인가, 아니면 위협인가. 2026년 1월 5일, CES 2026 현장에서 공개된 보스톤 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 체조선수를 압도하는 유연한 공중제비, 360도 회전하는 관절, 무거운 부품을 거침없이 나르는 모습, 거기다가 사람과 꼭 닮은 그 걸음걸이를 지켜보노라면 경이로움을 넘어 섬뜻한 위협마저 느낀다.
아틀라스는 '피지컬 AI(Physical AI)'의 대표주자다. 피지컬 AI란, 화면 밖으로 나온 AI를 말한다. 챗GPT와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가 컴퓨터 속에서 생각하고 대답한다면, 피지컬 AI는 '고도화된 지능형 로봇'으로 현실 세계를 인지하고 예측하고 직접 행동한다.
피지컬 AI는 거대언어모델(LLM), 거대행동모델(LAM), 월드모델(WM)의 세 가지 핵심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에는 상식과 언어를 이해하고 전체 전략을 짜는 거대언어모델이 들어 있다. 피지컬 AI는 여기에 공간과 물리적 세계를 파악하여 실제 세계를 예측하는 월드모델, 그리고 실제 행동을 수행하며 현장에서 움직이는 거대행동모델을 더한 것이다. 이 세 요소가 결합될 때, 비로소 인공지능은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물리적 실체로 완성된다.
아틀라스는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무거운 엔진 부품을 들어 올리고, 정해진 위치에 배치하고, 조립 라인으로 옮기는 육체노동을 할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2028년쯤 부품 운반에 아틀라스를 활용하기 시작해, 2030년쯤에는 자동차의 최종 조립 과정까지 맡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5년과 2026년은 본격적으로 피지컬 AI가 모습을 드러낸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피지컬 AI 원주민(Native)' 세대다. 아틀라스와 함께 성장할 세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형 로봇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갈 세대이다.
생성형 AI가 이미 변호사와 공인회계사 같은 지적 노동의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기초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초보 변호사가 필요 없다는 말이 나오고, 신입 공인회계사는 실무 경험을 쌓을 자리조차 AI에게 빼앗겨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이제 피지컬 AI가 육체노동까지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피지컬 AI 원주민 세대는 이중의 도전에 직면한다.
3년 안에 로봇이 외과 의사를 대체한다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3년 안에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외과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파격적 전망을 내놓았다. "좋은 의사가 되기까지 정말 오래 걸린다. 그리고 의학 지식은 계속 바뀌니까 모든 걸 따라잡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머스크의 전망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실제 휴머노이드 로봇이 3년 내 외과의사를 대체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섬세한 손길과 고도의 판단이 요구되는 외과 수술은 인간의 행위 중 매우 복잡한 영역이다. 머스크는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의료 영역조차 AI의 위협에 직면했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로봇이 메스를 사용할 수 있어도, 수술대 위 환자의 두려운 눈빛을 읽어내며 그 생명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윤리적 고뇌와 따뜻한 공감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그날 밤, 나는 생후 5개월 된 손녀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앙증맞은 작은 손가락이 허공을 휘저으며 무언가를 잡으려 한다. 그 연약한 움직임을 보며 생각한다. "이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 아이가 배울 수학 공식, 외국어, 기술들이 저 완벽한 기계들보다 나은 점이 있을까. 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이 아이가 저 기계들 틈에서도 자신만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피지컬 AI 원주민을 키워야 하는 우리 세대가 마주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교육적 도전이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간 우리는 '더 많이 아는 것', '더 빨리 계산하는 것', '더 정확하게 작업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 2026년, 그 모든 능력에서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정답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기능과 효율', '정답 찾기'만으로는 부족한 시대다. 아이에게 '변호사가 되어라'가 아니라 '법을 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의사가 되어라'가 아니라 '훌륭한 의사는 어떤 사람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무엇이 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혹은 '어떤 창의적 사람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야 한다.
생성형 AI에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연도는?'이라고 물으면 0.03초 만에 '1789년'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피지컬 AI 아틀라스에게 '이 상자를 3층으로 옮겨줘'라고 하면 완벽한 효율로 임무를 수행한다. 지적 영역이든, 물리적 작업이든, 이제 기계가 인간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다.
인간이 우월할 수 있는 영역이 있긴 한 걸까? 물론 있다. 정답이 없는 영역,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영역이다. 이것을 위해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는 세상의 모든 정답을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신의 호기심으로 질문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묻지 않으면, AI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이 '스스로 질문하는 능력'이 아이의 상상력과 창의성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왜?, 왜? 왜?'
아이는 질문의 천재다. 생후 24개월만 지나면 끝없는 '왜?'의 연속. 부모를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질문 공세야말로, 아이의 지성을 키우는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기술이다.
"하늘은 왜 파래요?" "새는 왜 날 수 있어요?" "왜 밤에는 해가 없어요?"
이때가 정말 중요하다. 많은 부모는 여기서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한다. 첫 번째는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거나 유튜브에서 설명 영상을 찾아준다. 아니면 "빛의 산란 때문이야"라며 과학적 정답을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정말, 이 방법이 최선일까? 아니다. 아이의 눈을 마주보며 이렇게 되묻는 것이다. '음, 정말 좋은 질문이네. 너는 왜 파랗다고 생각해? 만약 네가 하늘을 만든다면, 무슨 색으로 만들고 싶어?"
이 순간, 아이의 뇌 속에서 신경세포들이 새롭게 연결된다. 아이는 자기만의 가설을 세우기 시작한다. "음… 바다가 하늘한테 색깔을 나눠줘서?" "하나님이 파란색을 제일 좋아해서?" "낮에는 해가 파란 빛을 뿌려서?"
아이의 이 가설들은 '틀렸다'. 하지만 바로 그 '틀린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는 평생 써먹을 사고의 근육을 키운다. AI는 정답을 순식간에 알려준다. 하지만 '바다가 하늘한테 색깔을 나눠줬을까?'라는 엉뚱하고 창조적인 질문은, 오직 아이만이 할 수 있다.
되묻기 기술
좋은 질문은 아이의 창의적 사고 근육을 단련하는 영혼의 피트니스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영혼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인가. 그것은 아이의 말을 되묻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아니야, 그게 아니고 이런 거야"라고 아이의 말을 부정하고 바로 정답을 말하지 말자. 대신 "재미있는 생각이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듣고 싶어"라고 되물어 보자.
아버지와 다섯 살 딸의 저녁 산책길. 어린 딸이 가로등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 달은 왜 우리를 따라와요?"
"음, 네 생각엔 왜 그럴 것 같아?"
"달이... 우리가 좋아서 따라오는 거 아닐까요?"
"그렇구나. 그럼 다른 사람들한테도 달이 따라갈까?"
아이가 잠깐 생각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그럼 달이 너무 바빠요!"
바로 되묻기의 정석이다. 그 순간 아이는 스스로 깨달았다. 달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닫힌 질문이 아니라 열린 질문을
질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단답으로 문을 닫는 '닫힌 질문'과 생각을 확장하는 '열린 질문'
"숙제 다 했어?" (닫힌 질문) → "응" 하나로 끝.
"오늘 학교에서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열린 질문) → 아이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색깔 예뻐?" (닫힌 질문) → "응" 하나로 끝.
"이 색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 (열린 질문) → 아이의 상상력이 펼쳐진다.
스탠퍼드 대학교 교육대학원의 폴 김(Paul Kim) 교수는 이미 2010년대부터 "질문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같은 대학 d.school의 티나 실리그(Tina Seelig) 교수 역시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아인슈타인은 생전 '질문하기가 문제 해결보다 더 본질적'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장이 바로 이것이다. "만약 내 목숨이 달린 문제를 한 시간 안에 풀어야 한다면, 나는 55분을 올바른 질문을 찾는 데 쓸 것이다."
미래에는 정답보다 좋은 질문이 더 중요하다. 현실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가득하다. 고정된 답을 따르기보다 상황마다 스스로 묻는 능력이 아이의 창의력을 키운다.
손녀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첫 질문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때 나는 바로 정답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질문하는 동반자가 되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피지컬 AI 시대,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