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의 <헝가리안 무곡 5번>과 집시의 영혼
며칠 전 M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갑자기, 언제 다시 보자는 약속도 없이 떠났다. 예기치 못한 결별이 주는 황망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M에게 그와 함께했던 스무 살 언저리의 추억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M은 며칠 동안 그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세상은 여전했지만, 무엇인가 결정적으로 사라졌다. 그 공허의 틈으로 오래전 기억 하나가 스며들었다. 그해 가을, 모든 것이 시작된 그때의 풍경이.
그해 가을, 지금은 쇠락한 그 길에 있던 작은 카페. 좁은 2층 계단을 들어서면 언제나 들려오던 브람스의 <헝가리안 무곡 5번>, 주인장이 브람스를 너무 좋아해서였을까. 아니면 하필 그때 우연히 그 음악이 들렸을까. 그 가을 이후 그의 영혼도 집시처럼 방황했다.
그해 가을, M에게는 큰일이 있었다. M은 알지 못했다. 그 짧은 만남 그리고 긴 결별이 얼마나 큰 후유증을 남길지 몰랐다. 그로부터 이어진 감정들이 훗날 그를 얼마나 깊은 여정으로 이끌지.
그 사건 이후 그의 세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의식과 철학, 심지어 삶의 방식까지. 그 이전의 세계관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운 세계관이 들어섰다. 의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발전적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두 개의 가을과 시간 여행
M에게 2025년 가을은 그해 가을과 얽혀 있다. 동시에 그해 가을은 현재와 함께 존재한다. 말하자면 2025년 가을과 그해 가을은 중첩되어 있다. 시간은 흐르고, 도시는 변했지만, 그 겨울의 기억은 여전히 그의 내면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기억이 얽혀 있는 셈이다.
2025년의 어느 가을날, M은 결심한다. 그 오래된 기억을 따라 이제 자신의 근원을 찾아 나서기로. 그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여행이다.
M은 시간 여행자다. 오랜 옛 풍경 속으로 걸어갔다. 그 시절 기쁨과 슬픔의 현장을 찾으러 간다. 그 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던 그때의 환희와 고통, 그 근원으로 들어간다. M에게 이곳은 시간이 멈춘 곳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시간은 여전히 그해 가을이다.
시간의 모순인가, 시간의 중첩인가? M은 안다. 그해 가을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하나의 지점일 뿐이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더 깊이 들어간다. 그해 가을을 시작으로 과거로 돌아간다. 가까운 시점에서 아득한 그가 태어난 시절, 그 공간으로 가보려고 한다.
첫 번째 시간 여행지는 그해 가을이다. 거리는 변했다. 건물이 바뀌었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달라졌다. 하지만 어떤 모퉁이를 돌 때, 어떤 골목의 냄새를 맡을 때, M은 정확히 안다. 여기가 그곳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지만, 그의 발은 그해 가을의 낙엽을 밟고 있다. 그의 심장은 그때의 두근거림을 기억한다.
이상한 일이다. M은 분명 2025년을 살고 있다. 그사이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만남과 이별이 있었다. 기쁨과 슬픔이 씨줄과 날줄로 엇갈렸다. 또 넘어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왜 그의 영혼은 여전히 그 가을 가리키고 있는가? M은 앞으로 나아간 것인가, 아니면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인가?
시간의 층이 만든 업(業)
그해 가을 M의 경험은 의식 깊은 곳에 씨앗처럼 저장되어, 현재의 생각과 감정을 만들어낸다. 마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데이터가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듯이, M의 과거 경험들은 그의 의식 저장고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현재의 그를 만든 바로 업식(業識)이다.
그해 가을,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너무나 강렬했다. 만남과 이별. 환희와 슬픔은 뼛속까지 스며들었고, 고통은 영혼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相)이며, 하나의 뚜렷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M의 의식 심층에 새겨졌다.
M에게 진정한 시간은 달력 위의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의식이 집착하는 그 순간이다. 긴 시간이 흘렀어도, 기억의 저장고 가장 깊은 곳에는 그해 가을을 품고 있다. 그 기억의 씨앗은 죽지 않았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더 깊이 뿌리내렸다.
M은 안다. 이 집착도 윤회의 굴레라는 것을. 석가모니는 말했다. "과거에 머물지 말고, 미래를 꿈꾸지 말며, 현재에 집중하라"라고. 그렇다면 M의 추억 여행은 해탈로 가는 길인가, 아니면 더 깊은 속박으로 가는 길인가? 그는 그 가을로 돌아가며 해방되는가, 아니면 더 단단히 묶이는가?
답은 아직 모른다. 어쩌면 이 물음 자체가 여행의 목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M은 직감한다. 그해 가을은 더 깊은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업(業)의 씨앗은 더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그는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순수의 지속
M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베르그송의 시간을 떠올린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시간을 전혀 다르게 이해했다. 그에게 시간은 시계가 재는 기계적 시간이 아니었다. 시계는 시간을 1초, 2초, 3초, 이렇게 조각조각 잘라서 잰다. 마치 자로 길이를 재듯이.
하지만 그에게서 진정한 시간은 ‘순수의 지속’이다. 끊어지지 않고 흐르는 강물과 같다. 멈출 수도 없고, 조각낼 수도 없으며, 과거가 현재 속으로 녹아들어 계속 축적되는 살아있는 흐름이다.
한 곡의 음악을 들을 때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각각의 음표를 따로따로 듣는 것이 아니라, 이전 음들을 기억하면서 지금 들리는 음을 듣고, 다음에 올 음을 기대한다. 이렇게 과거-현재-미래가 하나로 녹아든 체험, 그것이 순수 지속이다.
M은 베르그송의 ‘기억 원추 이론’을 떠올린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과거는 현재 속에 응축되어 공존한다. 그해 가을의 M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M의 의식에는 그해 가을과 지금의 가을이 다층적으로 중첩되어 있다.
베르그송은 이렇게 말했다. "시간은 눈덩이처럼 굴러가며 자기 자신을 축적한다."
그렇다. M의 시간이 그해 가을 지워버린 것이 아니다. 그 위에 쌓인 것이다. 마치 나이테처럼, 각각의 시간이 이전의 시간을 감싸며 성장한다. 그해 가을은 한 층의 나이테다.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거기 있다.
M은 이제 깨닫는다. 그해 가을 이전에도 나이테가 있다는 것을. 시간이 층층이 쌓여 있다는 것을. 그 층위들을 하나씩 열어보지 않으면, M은 그해 가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M이 느끼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본래 모습이다.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다. 그것은 층위적이고, 입체적이며, 살아 있다. M이 그해 가을로 돌아갈 때, 그는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안에 이미 존재하는 그 층위를 '열어보는' 것이다.
시간, 그 실존적 의미
M은 글을 쓰다 말고, 브람스를 튼다. 그의 기억에 깊이 각인된 <헝가리안 무곡 5번>을 들으며 마르틴 하이데거의 시간을 되뇐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시간을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실존의 구조로 보았다. M이 그해 가을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 순간이 그의 ‘본래적 자기’가 가장 생생히 드러난 때이기 때문이다.
M은 비겁하고, 용기 없고, 겁 많은 자신을 그곳에서 찾아간다. 역설적이지만, 그곳에서 그는 가장 강렬하게 살아 있었다. 가장 날것의 감정을, 가장 순수한 욕망을, 가장 깊은 절망을 경험했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현존재는 자신의 과거로부터 자신에게로 다가온다. “
그 점에서 보면, M의 추억 여행은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온 자신을 찾는 자기 이해의 순환이다. 환희와 고통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을 직면하는 용기다.
우리는 태어날 때를 선택하지 못한다. 어느 나라, 어느 가정, 어느 시대에 태어날지 선택할 수 없다. 탄생도 그해 가을의 만남도 M이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특정한 상황 속에 '던져진' 조건이다.
여행의 시작
M은 이제 그 던져짐을 마주하려고 한다. 그는 왜 그토록 기뻤는가? 그는 왜 그토록 아팠는가?
이 물음들은 그해 가을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물음들은 더 깊은 물음들을 낳는다. 그해 가을 이전의 M은 어디서 왔는가? 그 환희와 고통의 패턴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M 존재의 가장 깊은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M은 알고 있다. 그는 더 이전으로, 더 근원적인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그 최초의 던져짐, 가장 오래된 나이테, 모든 업의 씨앗이 뿌려진 곳까지.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으로 유년 시절을 전부 되살렸다. 7권 3,000쪽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그는 말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예술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M은 시간 여행자이자, 동시에 시간의 연금술사다. 그는 기억을 언어로 담아내며, 사라진 것들을 추억으로 변형시키고, 그것을 영원히 보존하려 한다. 그것이 그의 예술이다.
이제 본격적인 그의 여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