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턱에서
M은 역 광장 끝의 지하도 계단 앞에 섰다. 도대체 몇 년 만인가. 10년이면 변한다는 강산이 몇 번이나 변했나. 서울에서 내려오는 날, 이 계단을 올라 M은 <약속> 카페로 향했다. 청년의 발이 밟았던 계단을 중년이 되어 다시 밟았다. 어제와 오늘이 교차하는 시간의 문턱에서 M은 한참을 망설였다.
첫 계단에 발을 올리자, 발끝이 먼저 반응했다.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몇 개의 계단이었던가? 열두 개였던가, 열세 개였던가. 기억은 가물거렸지만 발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계단의 폭, 높이, 그리고 마지막 계단이 약간 삐걱거리던 감촉까지. 발끝이 먼저 그해 가을로 돌아갔다.
지하도를 건넜다. 풍경은 변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워진 것도, 그대로 남은 것도 아니었다. 낡은 건물에 새 간판이 붙었고, 사라진 가게 자리에 낯선 가게가 들어섰다. 차라리 모든 것이 새로웠다면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익숙함과 낯섦이 뒤섞인 이 거리는, 한 발 내디 때마다 M을 그해 가을로 끌어당겼다.
계절은 완연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왔다. 거리를 스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무거워졌다. 베이지색에서 검은색으로, 외투 깃을 세운 여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하지만 M의 발걸음은 여전히 그해 가을 속을 걷고 있었다. 그때도 이맘때쯤이었다. 가을이 겨울로 넘어가던, 계절의 경계였다.
M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울트라마린 블루, 코발트블루, 피콕블루가 층을 이루며 겹친 하늘. 그해 가을도 이런 하늘이었다. 투명하고 깊고 차가운 파란빛. 그 파란빛 아래서 M은 처음 그녀를 만났다. 하늘이 기억을 불러내고, 기억이 하늘을 물들인다. 파란빛의 깊이 속으로, M은 다시 그 시간 속에 잠겨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