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이 기억하는 길

by Henry


지하도를 건너 골목으로 접어들자, 몸이 기억하는 길이 시작되었다.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첫 번째 모퉁이를 돌고, 두 번째 골목을 지나고, 세 번째 네거리에서 왼쪽으로. 마치 그 시절이 녹화 영상이 재생되는 것처럼, 발길이 길을 찾아간다.

M은 그 사람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눈동자의 색깔이 어땠는지, 웃을 때 입꼬리가 어떻게 올라갔는지, 그런 세세한 것들은 시간 속에서 흐려졌다. 하지만 이 길은 또렷하다. 첫 번째 모퉁이의 각도, 두 번째 골목의 경사, 세 번째 네거리의 넓이. 그걸 몸이 기억한다.


사람의 몸은 단순한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경험하는 주체다. 공간에 머무르고, 그 공간을 내면화한다. M이 그해 가을 그 길을 걸었을 때, 그의 발길은 그 길의 리듬을 익혔다. 어릴 적 배운 피아노 연주가 오래가듯, 몸으로 익힌 기억은 의식적 기억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 뜨거운 감정이 함께한 장소는 더욱 깊이 새겨진다.


M이 그해 가을 <약속> 카페로 향하던 그 길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었다. 설렘과 기대, 불안과 떨림이 함께한 감정의 통로였다. 골목을 도는 바람의 촉감, 멀리 들리는 도시의 소음. M의 감각들이 그해 가을을 불러냈다. 공간이 시간을 깨워, 그날의 날카롭고 예리한 설렘을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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