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강물은 뚝을 따라 흐르고, 바람은 산 넘어 흐르고, 구름은 하늘길을 따라 흐른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본 적이 있는가?
시계의 초침이 돌 때 우리는 착각한다. 시간이 움직인다고. 아니다. 톱니바퀴가 돌 뿐이다. 시간은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움직일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는가? 변화. 오직 변화만 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을 '1년'이라 부르고, 세포가 분열하고 노화하는 것을 '나이'라 부르고, 우주의 무질서가 증가하는 것을 '시간의 화살'이라 부른다. 아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지고, 바위가 깎이고, 별이 타오른다.
이 모든 것에 우리는 하나의 이름을 붙였다. '시간'이라고.
현재는 어디에 있는가?
과거는 기억 속에만 있다. 머릿속, 사진, 일기장 속에. 미래는 상상 속에만 있다. 계획, 예측, 불안 속에. 그렇다면 현재는?
현재의 폭을 재어보라. 1초는 시작과 끝으로 나뉜다. 0.1초도, 0.01초도 마찬가지다. 무한히 쪼개면 폭이 사라진다. 두께가 없어진다.
현재는 폭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폭 없는 지금에 살고 있다.
지금은 이미 과거다.
'지금'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순간, 그 '지금'은 이미 과거가 된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것은 이미 '방금 전(前)'이 되어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간파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내게 묻지 않으면 나는 안다. 그러나 묻는 이에게 설명하려 하면 나는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살아간다. 폭 없는 현재에 발을 딛고,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기억하며,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꿈꾼다. 마치 실체 없는 다리 위를 걷듯, 마치 보이지 않는 줄 위에서 춤추듯.
시간은 실체가 아니다. 관계다.
A가 변할 때 B도 변하는, 그 사이의 비율. 존재가 아니라 과정. 명사가 아니라 동사. 시간은 '있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시간의 본질이라면,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지 않는다. 시간 '으로서' 산다. 물고기가 물과 함께 흐르듯, 나무가 숲과 함께 자라듯. 우리의 존재, 그 자체가 시간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이 모든 것이 시간이다.
시간은 변화다.
지구가 도는 것이 시간이고, 세포가 늙는 것이 시간이고, 우주가 팽창하는 것이 시간이고, 의식이 흐르는 것이 시간이다.
변화와 시간은 별개가 아니다. 같은 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뿐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변할 뿐이다.
시간이 빠른 것이 아니다. 많은 일이 일어날 뿐이다. 시간이 느린 것이 아니다. 고요할 뿐이다. 시간을 아끼는 것이 아니다. 의미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폭 없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과거. 오지 않은 미래.
이 역설 속에서도 우리는 웃고, 사랑하고, 꿈꾼다. 없는 것으로 있는 것을 짓는다. 환상 속에서 실재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인간이다. 시간이라는 허구를 믿으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흐른다.
시간은 환상이다. 그러나 환상이 우리를 살게 한다.
오늘도 나는 살아가고, 하루 나이를 먹는다. 그것이 시간이고, 그것이 세월이다. 그렇게 2025년은 2026년에 밀려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