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마음의 연금술사

by Henry



어느 독자님께


따뜻한 격려와 염려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 글이 점점 슬프게 읽힌다니, 순간 멈칫했습니다. 그렇게 느껴졌구나 싶었어요. 죽음을 향해 태어났다는 표현, 시간이 아득하다는 말, 폭 없는 현재라는 글들이 독자님께는 쓸쓸함으로 다가갔나 봅니다.


하지만 제가 전하고 싶었던 건 슬픔만이 아닙니다.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는 것이 오히려 제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슬픔이 주는 행복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역설이겠죠.


슬픔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 같아요. 삶이 유한하다는 자각, 그것이 슬픔의 원천이지만 바로 그 유한함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빛나는 거니까요. 영원히 산다면 오늘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일주일 남짓 피었다가 한꺼번에 우수수 지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더 못 잊잖아요.


독자님이 보낸 염려와 격려. 서툰 글에도 아끼지 않는 응원. 그런 순간들이 제 마음속 행복의 씨앗입니다. 글을 쓰고 공유하는 그 시간 속에서 저는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니까요.


제가 시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유는 허무를 증명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겠죠. 시간이 환상이라는 것, 현재가 폭이 없다는 것을 깊이 느낄수록 저는 더 절실하게 현재를 긍정하게 됩니다. 폭이 없기에 더 소중하고, 환상이기에 더 아름답고, 흐르지 않기에 더 붙잡고 싶은 거예요.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슬픔은 삶을 깊게 만드는 마음의 연금술사라고 할까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는 슬픔을 느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슬퍼하지 않고 마냥 기뻐하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각자 삶을 대하는 방식은 다르니까요.


독자님이 제 글을 읽고 염려해 주시는 마음, 그 자체가 이미 행복의 씨앗입니다. 서로 주고받는 이런 염려와 위로, 이해와 공감이 우리 삶을 따뜻하게 만드니까요.

격려와 염려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도 아련한 슬픔이 밀려와도 힘을 낼 수 있는 이유가 독자님의 공감과 응원에 있습니다.


새해에도 글을 쓰겠지요. 명문은 아니래도 부지런함으로 글을 쓸 겁니다. 늘 함께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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