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의 야상곡(夜想曲)

by Henry



금요일 밤. 한 주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명절은 늘 무겁다. 가슴을 아리게 하는 병든 여동생. 말이 통하지 않는 나보다 세 살 많은 매제. 시린 겨울밤 내내 뱉어내는 노모의 탄식과 한숨. 숙명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나도 참 고달프다.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애써 누르고 음악을 튼다.


불 꺼진 방 가득 퍼지는 쇼팽의 녹턴. 아픔, 슬픔, 외로움, 고독, 행복, 고요함. 어느 하나로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것들은 충돌하지 않고 서로를 어루만진다. 천천히 녹아 하나가 된다. 아련한 선율 위로, 아직 아무도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이 흐른다.


음악이란 원래 이런 것일까. 언어보다 먼저 가슴에 닿는 것. 개념과 논리보다 더 빨리 심연을 건드리는 것. 쇼팽의 녹턴이 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20번, C# 단조는 더 그렇다.


쇼팽의 녹턴을 들을 때면 어김없이 영화의 장면이 떠오른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연출한 숨 막히는 그 장면 말이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바르샤바의 어느 건물 꼭대기. 먹을 것도, 불빛도 없는 그곳에서 숨어 지내던 유대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슈필만. 그날 밤 창밖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그의 은신처를 발견한 독일군 장교가 그를 마주한다. 일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독일군 장교가 피아노 연주를 명령한다. 그건 단순한 연주가 아니다. 목숨을 건 최후의 진술이다.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선 남자의 손끝에서 나오는 녹턴. 그 절절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건반을 누르는 순간 그의 야윈 손위에 시간이 멈춘다. 불도 없는 어두운 방에서 녹턴이 흐른다. 겨울밤 폭설은 창문을 두드리고, 그의 손길은 건반을 두드린다. 전장의 아픔도 죽음의 고통도 사라지고, 녹턴의 선율만 흐른다.


녹턴(Nocturne). 야상곡(夜想曲). 제목처럼 밤에 어울린다. 단단히 빗장을 건 감정은 밤이 되면 슬며시 문밖으로 빠져나온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외로움과 고독. 경계를 잃고 서로 스며든다.


오늘 밤 나는 녹턴을 듣는다. 내 삶의 전장에 흐르는 음악.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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