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닥이 놓친 혁신, MS는 붙잡을 수 있을까

by Henry


오늘 대구신문 기획특집에 실린 글이다.


코닥이 놓친 혁신 제목.jpg


흔들리는 MS 제국

생성형 AI 혁명 선봉에 선 MS

거꾸로 그 혁명이 MS 집어삼켜

도구를 사서 쓰는 시대 끝나고

결과를 사는 새 시대가 열려

필름이 그랬듯 SW도 종말 위기


코닥 필릅ㅁ.jpg 필름 카메라 시절 제국을 건설했던 코닥 필름은 디지털 카메라를 외면하면서 사라졌다.



◇전문 자격증 시험


며칠 전 대구. 수성구청을 왼쪽으로 돌아 방향을 잡았다. 익숙한 골목이다. 하지만 눈에 띈 낯선 풍경 하나. 높은 아파트가 보인다. 대구에서 가장 비싸다고 한다. 오래 떠나 있었던 내게 느껴지는 도시의 변화는 새로 들어선 아파트뿐이다.


골목 귀퉁이 식당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생성형 AI로 대화가 흘러갔다. 중견 기업의 CEO, 변호사, 현역인 친구들이다. AI가 불러온 새로운 충격이 탁자를 무겁게 짓눌렀다.


친구 아들이 전문 자격시험을 준비 중이란다. 친구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AI가 판을 치는 시대에, 전문 자격이 과연 무슨 소용일까? 어렵게 자격증을 딴들 쓰임새가 있을까?” 법률 현장에서 오래 몸담은 그의 물음이 묵직하게 들렸다.


AI는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협하고 일자리를 빼앗는다. 답 없는 걱정을 안주 삼아 말없이 소주잔을 비웠다.


◇소프트웨어의 종말


그날 밤 우리가 느꼈던 막연한 불안감은 곧 실체를 드러냈다. 미국 대형 소프트웨어 회사의 주가가 줄줄이 폭락했다. 법률, 금융, 회계, 결제 분야가 한꺼번에 흔들렸다.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세계 1위에서 4위로. 2주 만에 1조 달러가 증발했다. 월스트리트는 ‘소프트웨어의 종말’이라고 비관했다. 그 바람에 첨단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이 하루걸러 폭락과 상승을 반복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전쟁도, 금리 인상도, 경제 위기도 아니었다. 앤트로픽의 클로드 코워크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챗봇이 아니다. 사용자의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 파일을 읽고, 편집하고, 자율적으로 정리한다. 사람의 지시 없이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흩어진 자료를 보고서로 만든다.


11가지 전문 기능이 추가되었다. 법률, 영업, 재무, 고객 관리. 변호사, 영업팀, 회계사가 필요했던 일을 AI가 한다. 전통적 회계 법인 비용의 10분의 1로. 다수의 직원과 여러 개의 소프트웨어, 월 수백만 원이 필요했던 일을 클로드 코워크는 월 14만 원에 해낸다. 파격적인 가격에 투자자들은 직감했다. 소프트웨어를 사서 쓰는 시대가 끝나간다는 것을.


AI가 혼자 다 한다. 회계사도, 소프트웨어도 필요 없다. 클로드 코워크에게 “이 자료 정리해”라고 말하면 끝이다. 도구를 사는 시대는 끝났고, 결과를 사는 시대가 왔다. 마치 필름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로 바뀌었듯, 소프트웨어도 AI로 바뀌고 있다.


변해야 산다

필름카메라에 집착한 코닥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무너져

살아남은 캐논·니콘과 대비

과거에 집착하는 자는 죽고

변화한 자는 결국 살아남아


◇최초로 디지털 사진 기술을 발명하고서도 외면한 코닥


혹시 기억할까? 동네 어귀마다 사진관이 있었던 시절을.


“사진 뽑아주세요.”


코닥 필름 한 통을 건네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떨리는 손으로 누른 셔터, 필름 한 장 한 장이 아까워 구도를 잡고 또 잡았다. 며칠 후 사진관에서 봉투를 받았다. 뜯는 순간, 기다림이 끝났다.


노란 상자에 새겨진 ‘Kodak’, 시간을 붙잡는 마법이었다. 부모님의 결혼사진, 백일 한복, 운동회 운동장. 그 순간이 노란 필름 안에서 영원이 되었다. 그런 코닥은 사라졌다. 2012년 1월, 그 거대한 제국은 파산 신청서 한 장으로 무너졌다. 디지털카메라 때문에.


정작 디지털 사진 기술을 처음 발명한 건 코닥 자신이었다. 1975년, 흑백사진 한 장을 화면에 띄우는 데 23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파격적이고 놀라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그것을 책장 구석에 밀쳐 놓았다.


필름 한 통당 70센트의 순이익. 매년 쌓이는 수십억 달러의 필름 수익. 임원진은 말했다. “디지털카메라? 수십, 수백 장을 마음대로 찍어대면, 그게 어디 돈이 됩니까?” 코닥은 디지털카메라를 제일 먼저 발명했다. 하지만 그 발명 때문에 파산했다.


◇흔들리는 마이크로소프트(MS) 제국


처음 윈도우를 만났던 날. 시작 버튼을 누르고, 아이콘을 클릭하니 창이 열렸다. 마법 같았다. 워드로 리포트를 쓰고, 엑셀로 데이터를 정리하고, 파워포인트로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MS 오피스. 그것은 업무 그 자체였다.


2026년 2월, 숫자가 위기를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코파일럿, 100명 중 3명만 돈을 냈다. 기업들은 더 저렴하고 똑똑한 AI로 떠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I 혁명의 선봉에 섰다. 거꾸로 그 혁명이 자신을 집어삼키고 있다. AI가 보고서를 쓴다면? 데이터를 분석한다면? 발표 자료를 만든다면? 워드와 엑셀과 파워포인트는 무엇을 하는가?


마이크로소프트조차 흔들리고 있다. 프로그램을 켜고, 메뉴를 찾고, 명령을 입력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그냥 AI에 말만 하면 된다.


“이 자료로 보고서 써줘. 그리고 내가 지정한 폴더에 저장해”


클로드 코워크는 작업을 완료하고 지정한 폴더에 결과를 저장한다. 끝이다. 필름이 사라진 것처럼, 오피스도 사라질 것이다.


AI가 소프트웨어를 돕는 게 아니다. 필요 없게 만들고 있었다. 디지털카메라가 필름을 서랍에 밀어 넣은 것처럼, AI는 소프트웨어를 서랍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AI에 막대하게 투자하고 있잖아?” 반론도 있다. 코닥도 그랬다. 1990년대에 10억 달러를 디지털에 쏟아부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보는 눈이었다. 코닥은 디지털을 필름의 보조 수단으로 봤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I를 소프트웨어의 도구로 본다. 혁신과 개선을 착각했다. 같은 눈, 같은 실수라면 같은 운명.


◇살아남은 자들의 지혜


코닥이 무너질 때, 캐논과 니콘은 살아남았다. 렌즈 만드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어도, 렌즈는 여전히 필요했다. 그들은 기술의 본질을 이해했다.


후지필름은 더 과감했다. 필름을 버리고, 필름 만들던 기술로 화장품을 만들었다. 콜라겐 합성, 산화 방지. 필름 제조 기술이 피부 관리 기술이 되었다.


코닥은? “우리는 필름이다.”라고 외치며 제품을 자신과 동일시했다. 그 결과, 필름이 사라지자 코닥도 사라졌다.


코닥은 필름을 지키려 했다. 후지필름은 기술을 지켰다. 캐논과 니콘은 본질을 지켰다. 과거에 매인 자는 죽고, 변신한 자는 살아남았다. 디지털카메라의 본질은 ‘단순히 필름 없는 카메라’가 아니다. 사진과 맺는 관계다. 저장하고, 편집하고, 공유하는 모든 방식. 사진이 앨범에서 손바닥 안 화면으로, 기억은 서랍에서 클라우드로 옮겨갔다.


내 스마트폰에는 수백 장의 사진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필름 140통, 인화비 수백만 원이다. 이제는? 그냥 찍고, 지우고, 공유한다. 필름도, 사진관도, 인화비도 없다. 사진은 여전히 찍지만, 코닥은 없다. AI의 본질은 ‘똑똑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우리가 컴퓨터와 말하는 방식을 바꿨다. 클릭에서 대화로. 명령에서 요청으로. 지식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이걸 아는 사람”에서 “이걸 제대로 물을 줄 아는 사람”으로.


코닥은 사람들이 “사진”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사람들이 원한 건 “순간을 붙잡고 공유하는 추억”이었다. 필름은 수단이었을 뿐이다.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추억을 저장하는 디지털카메라. 이제는 스마트폰까지. 필름은 사라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결과다. 보고서든, 분석이든, 발표든. 소프트웨어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해주는 AI. 10시간 걸리던 작업을 10초 만에 끝낸다. 소프트웨어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끔 낡은 앨범을 꺼내 본다. 노랗게 색이 바랜 사진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언젠가 우리는 오래된 파일을 열어볼 것이다. “그때는 윈도우를 썼지.” 아련한 추억이 될 것이다. 그립지만 돌아갈 수 없는 시절.


마이크로소프트도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애저(Azure), 전 세계 AI를 돌리는 클라우드 인프라. 오픈AI조차 이것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AI 인프라 회사로 변신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오피스는 여전히 매년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코닥도 필름 한 통당 70센트의 순이익을 놓지 못했다. 똑같은 달콤함. 똑같은 덫. 역사는 반복되고, 영원한 것은 없다. 코닥의 필름처럼.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처럼. 어쩌면 애저마저도.


그날 밤 대구의 골목에서, 친구들과 나눴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전문 자격증이 무슨 소용일까?‘


이제 보인다. 자격증이 대변하던 ‘능력’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법률 지식을 암기하는 능력이 아니라, AI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능력. 회계 공식을 외우는 게 아니라, AI의 분석이 타당한지 판단하는 눈. 프로그램 코드를 줄줄 외우는 게 아니라, AI가 만든 결과물의 논리를 꿰뚫는 통찰. 우리는 이미 흘러간 물결을 거슬러 가려고 하는 건 아닐까? 끝까지 필름을 움켜쥔 코닥처럼, 아직 소프트웨어를 놓지 못하는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우리도 지금 낡은 과거를 움켜쥐고 있는 건 아닐까.


수성구의 높은 아파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새것과 낡은 것이 뒤섞인 골목. 변화는 늘 그렇게 온다. 화려한 선언 없이, 익숙한 풍경 사이로 스며든다. 문제는 우리가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느냐다. 그날 밤 비운 소주잔처럼, 우리도 비워야 할 것이 있다. 익숙함에 대한 집착. 변화에 대한 두려움. 그래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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