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끼고 아파하고 공감하고…‘인간다움’이 곧 경쟁력

똑똑한 기계의 시대, ‘평범한 인간’이 살아남는 법

by Henry

2026년 3월 30일자 대구신문 기획특집 [AI야! 나랑 놀자!]에 게재된 칼럼 내용입니다.


인간다움.jpg 똑똑한 기계의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는 역설적이게도 ‘부대끼고, 아파하고, 공감하는’ 그 뜨거운 비효율성이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빗나간 예언과 불안한 전문직


내일은 나아지겠지? 우리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꾼다. 그래서 사주를 보거나 점집을 찾곤 한다. 하지만 예언은 잘 맞지 않고, 끊임없이 빗나간다. 세상은 예상과 달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그 빗나감 속에 오히려 희망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가 발표한 ≪고용의 미래≫도 그렇다. 이 보고서는 10년 혹은 20년 이내에 미국 전체 일자리의 47%가 자동화의 물결에 쓸려 사라질 것이라 경고했다. 당시 그들이 지목한 ‘위험 직종’은 주로 텔레마케터, 데이터 입력원, 단순 노무직이었다. 이때만 해도, 지식 노동의 세계는 여전히 안전한 성역처럼 보였다.


예언의 절반은 맞았고, 절반은 빗나갔다. 정형화된 육체노동과 반복적 사무 업무의 쇠락은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자동화의 마지막 보루’로 꼽았던 영역, 즉 높은 창의성과 복잡한 사회적 지능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 세계가 이토록 빠르게 위협받을 줄은 몰랐다.


화난 사람의 마음을 달래거나

팀원 간 갈등을 중재하는 일

AI가 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


당시 보고서는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고학력 전문직을 자동화의 파도가 닿지 않을 ‘성역’으로 분류했다. 고도의 창의적 판단과 지적 능력은 기계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토라 믿었다. 한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등장한 생성형 AI는 이 견고한 믿음을 비웃듯 화이트칼라의 지식 독점권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직업 소멸의 물결이 낮은 곳에서부터 차오르지 않고, 피라미드의 꼭대기, 즉 ‘지식 노동’의 심장부를 정조준했다.


◇무너지는 성벽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는 국가가 공인한 ‘전문 자격증’이라는 해자를 두른 채 성벽 안에서 군림해 왔다. 판사와 검사는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한 현대판 영주(領主)들이었다. 그들의 권력은 방대한 법전과 복잡한 세법, 난해한 회계 장부, 수만 건의 판례에서 나왔다. 일반인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지식의 독점’과 ‘정보의 비대칭성’이 곧 권력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AI라는 파도는 그 성벽의 밑바닥부터 조용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AI는 단 몇 초 만에 수십만 건의 판례 중 최적의 선례를 찾아내고, 정교한 절세 시나리오를 설계하며, 계약서 속 독소 조항을 정확히 짚어낸다. 일반인들도 AI를 활용해 지식 창고의 빗장을 풀어버렸다. 지식 독점의 장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공부하고 혹독한 시험을 통과해 얻어낸 자격증이, AI 앞에서는 무력해지기 시작했다. AI가 불러온 실업은 해고가 아니라 채용 감소의 형태로 진행된다. 기업은 기존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신입 직원을 뽑지 않는다.


AI는 거장의 결과물을 흉내 내지만, 거장이 되기 위해 견뎌야 할 ‘지루한 축적의 시간’을 통째로 소거해 버린다. 이제 신입 사원은 선배의 어깨너머로 배우는 대신, AI가 뱉어낸 완벽한 요약본을 먼저 마주한다. 성장의 사다리가 잘려나간 자리에는 숙련되지 못한 청년들의 불안만 고인다. 이것이 2026년 청년들이 마주한 차가운 벽이다.


◇판사와 검사를 위협하는 AI


지성의 최정점이라 불리는 판사, 검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의 업무가 왜 AI에게는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들의 업무가 바로 AI가 가장 잘하는 두 가지 능력, 즉 ‘규칙(Rule)의 적용’과 ‘데이터의 패턴 인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논리와 정확성이 생명인 법률, 세무, 회계의 세계는 AI가 진가를 발휘하기 좋은 토양이다. 인간 판사의 판결이 허기와 피로에 휘둘린다는 ‘배고픈 판사 효과’는 오랫동안 인간 지성의 취약성을 상징하는 사례로 인용되었다. 식사 직전 가석방 승인율이 0%로 추락한다는 통계는, 아무리 훈련된 법관이라도 생리적 한계라는 ‘인지적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현상은 ‘기각될 사건이 식사 직전에 몰린’ 통계적 착시임이 밝혀졌다. 역설적으로 이 논란은 AI 판사의 무오류성에 대한 기대를 더 증폭시켰다. AI는 배고픔이나 피로를 느끼지 않으며, 오전 9시나 오후 5시나 동일한 알고리즘과 데이터 일관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AI는 복잡한 법률 계약서를 수 초 만에 검토하고, 재무제표의 이상 징후를 빠르고 정확하게 탐지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대형 로펌 베이커 맥킨지(Baker McKenzie)를 비롯한 일부 로펌이 신입 변호사 대신 AI 법률 검토 도구를 도입했다. 우리가 ‘고결한 지적 노동’이라 믿어온 것들이 사실은 AI가 가장 잘하는 ‘패턴 인식과 논리 연산의 정교한 집합체’였다. 이제 문제는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회사의 사활이 달린 중요한 일을 상담하기 위해 대형 AI 로펌을 찾았다. 담당 변호사는 승률 100%의 휴머노이드 AI다. 완벽한 AI의 해석 앞에 딱한 회사 사정을 이야기해도 돌아오는 것은 법조문 해석뿐이다. 몇 마디 어설픈 위로에도 내 표정은 풀리지 않는다. 패턴을 벗어난 인간의 감정 앞에서 AI는 벽에 부딪혔다.


알고리즘이 AI시대 열었지만

생존의 힘은 인문학에서 나와

답은 결국 ‘사람’에게 있어


이럴 때, 사람 냄새가 풍기는 인간 변호사가 더 나은 것 아닐까. 단, 전제가 있다. AI에게서 최선의 답을 끌어내는 질문 능력을 갖춰야 한다. 법률 지식이 아니라 언어 능력과 사유 능력, 즉 인문학의 힘이다. 거기에 상처받은 의뢰인의 마음을 말없이 다독이는 감성까지.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남는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그리고 판검사의 무기다.


◇샐러리맨의 생존: ‘부딪침’의 미학


한편, 한때 소모품 취급을 받던 평범한 샐러리맨의 업무 속에는 AI가 결코 쉽게 넘볼 수 없는 ‘인간만의 감성’이 존재한다. 인공지능 연구자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이 말한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다. 기계는 체스를 두거나 복잡한 방정식을 쉽게 풀지만, 직장 상사의 기분이 저기압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서로의 눈을 맞추고, 농담 한마디로 긴장을 풀며, 대화의 이면에 담긴 불안과 욕망을 읽어내는 일. 이유 없이 화난 거래처 담당자의 마음을 돌려놓거나, 팀원 간의 미묘한 감정적 갈등을 중재하는 일. AI에게는 고차원의 수학 문제보다 훨씬 풀기 어렵다.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은 패턴 인식의 공학적 영역이 아니라 인문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다운 인간’이 생존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법전과 숫자는 기계에 맡기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갈등의 틈새에서 타협점을 찾아내며, 무의미해 보이는 농담 한마디 속에서 유대감을 형성하는 ‘비효율적인 인간성’에 집중해야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완벽한 답이 아니라 따뜻한 공감이기 때문이다.


◇AI가 불러온 ‘완전실업’의 유령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하나씩 잠식해 간다면,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AI가 활약하는 미래 사회는 ‘완전고용’이 아니라 ‘완전실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것은 노동의 본질과 경제 구조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이다.


19세기 초 산업혁명 시기에도 기계 파괴 운동,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일었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창출되었다. 그때의 기계가 근육을 대신했다면, 지금 AI는 두뇌를 대신한다. 분석, 기획, 코딩, 글쓰기, 심지어 창작까지. 인간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머리로 해온 모든 일’도 AI가 파고들었다.


법전과 숫자는 기계에 맡기고

농담 속 유대감을 형성하는

비효율적 인간성에 집중해야


AI는 지치지 않고, 한 번 개발된 알고리즘은 전 세계로 순식간에 복제된다. 인간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능력과 속도가 AI의 능력과 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깊은 회의가 밀려온다.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 ‘앱 개발자’나 ‘유튜버’라는 직업을 상상하지 못했듯, AI 생태계에서도 전혀 새로운 직업군이 탄생할 것이라는 밝은 기대도 있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어 소득이 사라진 대중이 AI가 생산한 물건을 소비할 수 없는 계층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생산성은 극도로 높아지는데, 소비할 사람이 없어지는 자본주의 구조의 근본적 모순이다.


◇답은 어디에?


사라지는 일자리를 둘러싸고 다양한 사회적 해법이 논의되고 있다.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기본소득’, AI 도입으로 이익을 얻는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로봇세’, 지식 암기 중심에서 AI 활용과 문제 해결 역량 중심으로의 교육 시스템 개편, 그리고 노동 시간 단축 모델의 확산이 그것이다.


AI와 완전실업의 관계는 결국 ‘기술 운명론’이 아니라 ‘사회적 선택’에 달렸다.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을 지배하는 도구가 될까? 아니면 강제 노동으로부터 해방해 자아실현의 기회를 줄까? 미래의 ‘실업’은 비극이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간 꿈꿔온 ‘강제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될까?


답은 ‘사람’에게 있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공학과 알고리즘이 AI 시대를 열었지만, 그 시대를 살아갈 힘은 인문학에서 나온다. 똑똑한 기계의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는 역설적이게도 ‘부대끼고, 아파하고, 공감하는’ 그 뜨거운 비효율성이다. AI에게서 최선의 답을 끌어내는 질문 능력 또한 인문학의 힘에서 나온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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