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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Jan 07. 2023

빛의 화가 3, 살아 있는 빛을 화폭에 담은 모네

르아브르항의 해돋이

르아브르(프랑스어: Le Havre)는 파리에서 약 2시간 떨어진 프랑스 서북부, 대서양에 면한 항구 도시이다. 센 강 하구의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르아브르는 ‘인상파’라는 화풍을 탄생시킨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작품 <인상, 해돋이> 속에 그려진 항구다.      


<인상 해돋이(1872)>  모네, 48cm x 63cm, 유성페인트, 48cm x 63cm,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르아브르 항구는 바람이 많이 불어 구름의 모양이 시시때때로 바뀐다. 르아브르 항구의 멋진 풍경과 찰나의 풍경을 화폭에 담고자 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실험 정신이 만났다. 그 결과 ‘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걸작이 탄생했다. 처음 이 말은 모네의 그림을 냉소하고 비꼬기 위해 붙인 말이지만, 오히려 모네의 새로운 화풍을 기가 막히게 정의하는 말이 되었다.           


모네는 어린 시절 르아브르에 살았다. 그는 대서양과 센강이 만나서 만드는 독특한 물빛과 날씨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하늘과 구름의 풍경을 좋아했다. 하늘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이른 아침과 정오의 햇빛이 서로 달랐다. 해 뜰 무렵의 르아브르에는 모네의 그림 속 하늘과 바다, 그리고 해돋이는 모네를 이른 아침 항구로 불러냈다.      


클로드 모네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인 대상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그날그날 날씨와 시간에 따라 쏟아지는 빛의 강도와 풍경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빛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대상의 색과 형태를 포착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그림은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다. 가까이서 보면 그림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아 붓질이 엉성하게 보인다. 반면에 멀리서 보면 그림의 전체 이미지를 분명히 느끼게 된다.  

     

사실 1800년대 중반까지 서양 미술은 엄격한 형식과 균형, 구도 등을 중요하게 다루는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화풍이 대세를 이뤘다.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화풍은 사진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정밀하게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사진기만큼 실제 모습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특히 초상화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화가들의 생활이 궁핍해졌다.      


사진기의 등장은 화가들의 위기로 작용했다. 화가들은 새로운 화풍을 개발해야 했다. 모네를 중심으로 한 사실적인 묘사를 포함한 전통적인 회화 기법에서 벗어나 색채, 질감, 빛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장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미지를 표현하는 시도를 했다. 그들은 화실에 틀어박혀 그림 그리는 것을 거부하고, 야외에 나가서 빛과 대기가 일으키는 색채의 변화를 화폭에 담았다.     

 

인상은 인상에 불과하다.

1874년 봄 미술계에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에는 그 사건이 어떤 의미인 줄 아무도 몰랐다. 모네, 피사로, 시슬레, 드가, 르누아르 등의 화가들이 모여 전시회를 열었다. 그들은 사실적인 그림과는 거리가 먼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선보였다. 엉성하고 거친 붓질의 풍경을 작품으로 전시했다. 가까이서 보면 제대로 완성되지 않아 보이는 그런 그림들이 등장한 것이다. 관람객들은 일상의 변화를 담은 그림과 대담한 붓 터치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      


당시 꽤 이름을 날리는 비평가 루이 르로이(Louis Leroy)는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보고 제대로 완성하지 않는 그저 그림의 인상만 드러냈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는 <해돋이>가 말 그대로 ‘인상(印象)’에 불과하다며 비꼬았다. 그런데 이 말이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화풍을 똑 부러지게 정의하는 말이 되었다. 조롱하려고 내뱉은 말이 오히려 칭찬으로 변해 미술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늦여름의 건초더미, 아침 효과 (1891)>


<겨울 아침의 건초더미, 눈 효과(1891)>


모네를 중심으로 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의 변화에 주목했다. 같은 장소의 같은 풍경도 날씨와 시간에 따라 색채와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자연의 순간 변화를 포착하고자 노력했다.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에 매료되었던 모네는 '건초더미'(1888~1894), '포플러'(1892), '루앙 대성당'(1892~1894), '수련'(1912~1914)과 같은 연작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았다.      


빛에 따라 변하는 풍경

모네는 ‘빛’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순간적으로 포착했다. 그는 찰나의 인상을 화폭에 담기 위해 재빨리 붓을 놀렸다. 그는 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순간들을 캔버스에 기록했다. 모네는 같은 대상을 그려도 똑같은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새벽녘 동이 트기 시작할 때, 한낮에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 저녁 무렵 해가 어둑해질 무렵, 그림마다 느낌이 다 다르다.     

 

모네는 여름부터 겨울까지 같은 장소에서 건초더미를 반복적으로 그렸다. 그는 들판에 쌓인 <건초더미>를 빛의 양, 계절, 날씨를 달리하며 그렸다. 햇빛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색채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때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신선한 화풍에 사람들이 매료되었다. 다양한 시간대에서 건초더미를 관찰하면서 빛의 명암과 색채를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얼마나 깊이 몰입했던지 그는 1초 사이에 변하는 빛의 색을 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모네는 하나의 풍경을 각기 다른 시기에 가서 다양하게 변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그렸다. 빛의 밝음과 어둠을 새로운 질감의 형태로 표현해 서로 다른 작품으로 남겼다. 모네의 이 연작 시리즈는 서양 회화 역사상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말년의 모네는 연못 속의 수련에 심취했다. 그는 초대형 캔버스에 연못 속의 식물들과 물을 두꺼운 물감으로 그려 독특한 질감을 창조했다.      


모네는 반짝이는 햇살 아래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채의 향연을 그의 화폭에 담았다. 대담한 붓질과 거친 손놀림으로 재빠르게 변화를 포착했다. 그는 빛의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화폭에 담긴 화가이다. 빛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아무도 빛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더구나 알았다 해도 그것을 그리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오직 모네만 빛의 흐름을 화폭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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