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의 거짓말과 별난 침팬지의 거짓말

by Henry

번쩍하고 머릿속이 폭발했다.

별난 침팬지는 진화의 마지막 종착지를 향해 달려왔다. 20만 년 전 등장한 사피엔스는 별난 침팬지 진화의 최종 버전이다. 그동안 호모 하빌리스, 호모 일렉투스 등의 조상들이 지구에 왔다가 우월한 유전자를 남겼다. 수백만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유전자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사피엔스에게로 이어졌다. 두뇌의 크기나 얼굴 모양으로 보면 사피엔스는 지금의 우리와 큰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아직은 2% 부족하다. 두개골 안 신경세포의 밀집도가 완전하지 않다. 뇌는 얼추 성장이 끝났지만, 그 속을 채울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사물을 보고,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언어도 발명되지 않았고, 문자는 더더욱 생기지도 않았다. 여전히 소통은 힘들고 상호협조하는 능력도 모자란다. 소통과 협조가 가능하려면 서로의 마음을 전달하는 인지적 언어(Cognitive Language)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별난 침팬지가 아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불을 이용한 요리를 먹고 두뇌를 살찌웠다. 도구를 만드는 작업은 머릿속 신경회로를 정밀하게 다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집단생활을 통한 공감대 형성도 상호협조하는 마음을 불러왔다. 사피엔스가 등장한 후 약 10만 년의 긴 시간 동안 별난 침팬지의 머릿속에는 변화와 혁신의 에너지가 축적되었다.


신경세포의 수는 크게 증가하고, 더욱 조밀하게 자리 잡았다. 회로망은 촘촘해지고 시냅스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마치 대포에 화약을 차곡차곡 쟁이듯이 머릿속에 진화의 화약을 최대한 축적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머릿속 진화의 화약이 거대한 폭발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7만 년 전에서 4만 년 사이에 별난 침팬지의 머리는 엄청난 질적 도약을 경험한다.


발전은 늘 불연속적이고 폭발적이고 비약적이다. 인류의 역사도 그렇고 개인의 역량도 그렇다. 별난 침팬지의 두뇌도 일정한 축적과 숙성의 시간이 지나 엄청나게 좋아졌다. 이것을 학자들은 인지 혁명(Cognitive Revolution)이라 부른다. 사물을 보고, 생각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제 별난 침팬지는 과거의 그 침팬지가 아니다. 똑똑하고 스마트하고 지적인 인간으로 탈바꿈했다.


드디어 인류는 본격적인 문명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먹고, 도구를 만들고, 인지적 언어를 구사했다. 별난 침팬지의 지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 많은 일들이 겹치면서 사피엔스의 두뇌 회로는 놀랄 만큼 빨라졌다. 사피엔스의 머리에 유전적 돌연변이가 그렇게 일어난 것이다. 왜 사피엔스에게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답이 없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별난 침팬지는 소통하고 대화하는 인지적 언어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다른 동물과 인간, 심지어 네안데르탈인과도 차이를 보이는 사피엔스만의 뛰어난 능력이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뜻을 전달하고, 서로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크고 사나운 짐승을 사냥할 때 작전을 짜기도 하고, 업무를 분담함으로써 사냥의 성공 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말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 아니다. 침팬지들도 인간과 같이 목소리를 이용해 대화한다. 심지어 고래와 코끼리도 서로가 소통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말은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동물은 그들이 직접 경험한 상황만 짧게 전달할 뿐이다. 그들에게는 보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상상하고 지어낼 능력이 없다.


거짓말하는 원숭이

피노키오.jpg 피노키오, 월트 디즈니


유발 하라리 교수의 『사피엔스』(김영사, 2015)에서 이 부분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하라리 교수는 인간 말고도 많은 동물들이 언어를 사용하고 거짓말까지 한다고 말한다.


"사자가 나타났다."


갑자기 원숭이 한 마리가 큰소리로 외친다. 원숭이들은 혼비백산해서 이리저리로 도망가기 바쁘다. 그제야 소리친 원숭이는 잽싸게 앞으로 달려가 나무에 달린 바나나를 낚아챈다. 제일 뒤에 있던 원숭이가 바나나를 독차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깜짝 놀랄 일 아닌가? 이 정도면 사람 뺨을 왕복으로 세게 후려칠 정도의 수준이다.


"귀신이 나타났다."


갑자기 한 아이가 큰소리를 친다. 깜깜한 밤에 시골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은 혼비백산해 어쩔 줄 모른다. 개중에는 겁에 질려 울먹이는 아이도 있다. 그럴 때 큰소리를 친 아이가 씩 웃으면서 앞으로 나선다. 이 아이가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원숭이도 아이도 거짓말을 했다.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유발 하라리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침팬지와 원숭이는 자기들이 보고 만지고 경험한 사실만 가지고 거짓말한다. 원숭이는 사자를 봤지만, 귀신이나 유령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의 머리는 없는 것을 상상해 낼 수 있는 뉴런과 시냅스의 회로망이 없다. 두뇌 대뇌피질의 면적이 인간만큼 넓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인간만이 신화를 만들고 가치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국가와 법을 만든 것도 사유와 추론할 수 있는 인지능력 덕분이다.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시를 짓고 소설을 쓰는 것도, 추상 미술을 즐기는 것도 인간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인지 혁명이다.


아날로그 소통의 추억을 되살리며

진화의 긴 과정은 인간의 두뇌와 인지능력을 갖춘 사피엔스가 출현하기까지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사피엔스가 등장하면서 별난 침팬지의 진화는 사실상 끝났다. 이후 우리의 신체적인 특징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우리 몸의 기본적인 형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인지 혁명 이후 인류는 자연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자연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산과 들을 우리에게 맞게끔 개조함으로써 자연이 인간에게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현대인은 빠르고 가벼운 소통에 익숙하지만, 진지한 소통을 어색해한다.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면서 전화 통화를 하기가 어렵고 두렵다는 사람이 늘었다. 스마트 폰의 벨이 울리기만 해도 심장이 뛰거나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과 메신저 사용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이런 증상이 심하다고 한다. 편리하려고 사용하는 첨단 기기가 인간의 직접 소통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테넷(IOT)의 결합으로 세상은 초연결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소통의 시간은 더욱 짧아지고 속도는 무한대로 빨라진다. 더구나 현재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슈퍼컴퓨터보다 수억 배 속도가 빠른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가 개발 중이다. 이 컴퓨터가 상용화되면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대로 가다간 인공지능(AI)만이 초연결사회에 적응하고, 인공지능이 사피엔스 이후의 인류 진화의 새로운 버전이 될까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는 진화가 완성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변화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일까. 사람 사이의 대화와 소통은 급격히 줄었다. SNS의 발달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멀리하고, 디지털 소통에만 빠지게 만든다. 상대의 얼굴을 보고, 눈동자를 보며 대화하는 감성의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 별난 침팬지를 인간으로 만든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만큼은 인공지능(AI)이 따라오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이제라도 빠른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더디고 느린 것도 아름답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강원도 양양 바닷가 작은 승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