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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은 해야 욕을 안 먹는다.

by Henry

반듯한 선과 반듯한 스윙을 위해서 힘을 빼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붓을 처음 잡아본 재주 없는 남자의 그림 도전기다. 그림에 소질 있는 사람이나 실력을 갖춘 사람이 보기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을 것이다. 갓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의 넋두리에 가까운 신세타령이다. 한글을 깨치기 위해 이제 막 자음과 모음을 배우는 사람과 닮았다고 보면 된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그림 그리는 일도 노력이 필요하다. 조기 축구회 선수만 해도 수만 번 공을 차고, 거리의 농구 선수도 그만큼의 공을 던진다. 그런 눈물겨운 노력이 바탕이 돼야 제법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도 프로 선수나 전문 선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로 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그렇듯이 그림을 제대로 그리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전업 화가가 아니라도 자기 작품을 다른 사람이 보기에 민망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기본기를 갖춰야 한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연습은 대충 하고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고 실망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아마추어의 취미 생활이라 변명해도 기본은 해야 욕을 덜 먹는다.


처음에는 석 달 이상을 드로링 연습만 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손재주가 없어 그리해야 할 거라고 짐작했다. 기초를 제대로 배우고, 선 긋는 동작에 충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기본에 충실하면 더디게 느껴져도 더 빨리 발전할 것이다. 느림이 빠름보다 낫고 부드러움이 강함보다 더 나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석 달을 드로잉 연습을 했다고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다.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하루에 몇 시간씩 꼬박 몇 달을 연습해도 충분하지 않다. 그때는 그런 사실을 짐작하지 못했다. 처음 미술용 연필을 잡고 선 긋기와 명암 넣기를 시작한 초보자가 이러쿵저러쿵 입을 댄 것 같아 민망하기 짝이 없다. 쥐뿔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미술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 그림을 연마한 화가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간다. 도대체 그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습하고 또 얼마나 많이 그림을 그렸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치더라도 입시를 위해 숱한 날들을 연필과 도화지와 함께했을 것이다. 그 뒤로도 대학을 마치는 동안 또 수백 혹은 수천 장의 드로링을 했을 것이다. 화가들은 누구나 그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을 따랐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나름으로 열심히 선을 긋기를 한다고 했다. 손에 힘을 빼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선을 긋는 게 좋다. 손에 최대한 힘을 뺀 상태로 선을 한 번에 주욱 긋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손목이 흔들리지 않고 선도 자연스레 일자로 잘 그어진다. 정교함은 부드러움에서 나오지, 힘이 잔뜩 들어가니 선 긋기가 매끄럽지 않다. 몇 번 덧붙여 선을 긋다 보면 지저분해진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 빈약한 재주는 늘 아프게 한다.


대개 운동의 기본 원리는 힘을 뺀 부드러운 동작을 요구한다. 선을 그을 때 손목 힘을 빼는 것이나 골프 칠 때 팔의 힘을 빼는 것도 같은 원리다. 힘이 들어가면 뻣뻣해지고 회전 동작이나 제대로 되지 않듯이, 그림에서도 선 긋는 동작이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이게 얼마나 힘든지는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힘을 주면 자기 딴에는 최대한 정교하게 동작을 만든다 해도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 반듯한 선과 반듯한 스윙을 원한다면 힘을 뺄수록 좋다.


손가락에 힘을 빼고

드로잉도 마찬가지다. 먼저 손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손은 글 쓰는 데 익숙해져 있다. 작은 글씨를 쓰거나 깨알 같은 글씨를 쓰는 데는 손이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오랫동안 손은 미세한 근육으로 작은 글씨를 쓰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손가락에 힘들 주고 연필을 잡아야 제대로 된 글씨가 나온다.


글씨 쓰는 것과 달리 선을 그을 때는 손가락과 손목에 힘을 빼야 한다. 그림의 선은 글씨보다 훨씬 크고 한 번에 길게 이어진다. 짧은 선을 그을 때는 힘을 줘도 큰 문제가 없지만, 긴 선이나 원을 그릴 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 매끄럽게 긋지 못한다. 선이 끊어지거나 삐뚤삐뚤해져 지우고 긋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선이나 원의 테두리가 깨끗하지 않고 지저분해진다.


선이 매끄럽지 못한 원


원을 보면 외곽선이 매끄럽지 않고 지저분하다. 우리 손은 글씨에 익숙해져 있다. 이것을 고치기 위해 먼저 부드럼게 선 긋는 연습을 해야 한다. 손가락이나 손목을 고정하고 팔꿈치와 어깨 관절만을 움직일 때 반듯하게 선을 그을 수 있다. 평소 잘 사용하지 않은 근육을 사용하는 것은 누구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이다.


먼저 A4B4 크기의 흰 도화지를 책상 위에 펼친다. 적당한 간격을 위에서 아래로 반듯하게 선을 내려긋는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시작점과 끝점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선의 굵기와 간격도 일정하게 해야 한다. 손가락을 움직이면 선의 굵기가 달라지고, 손목을 움직이면 선이 삐뚤삐뚤해진다. 종이는 항상 몸과 수직이 되게 고정시켜고 선 긋는 중간에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요령으로 바둑판 긋기와 대각선 긋기를 연습한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과 선의 굵기가 일정해야 한다. 다음 단계로 물결 모양의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연습을 해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선과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선 긋기를 번갈아 하면 좋다. 이때도 시작점과 끝점의 간격이 같아야 하고, 선 긋는 중간에 연필 선이 갑자기 진해지거나 가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도형 그리기


선 긋기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도형을 매끄럽게 그린다 작은 동그라미를 중심으로 점점 큰 동심원을 그려 본다. 선과 선 사이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형태가 일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요령이다. 같은 방법으로 사각형과 삼각형을 연습하면 도형 그리기에 자신감이 붙는다.


1만 시간을 못 채우더라도

그렇게 선 긋기와 도형 그리기 연습을 시작했다. 평소에도 늘 연습하겠노라고 선생님과 철썩 약속했다. 그러나 웬걸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처음에는 시간 날 때마다 선 긋기를 해봤다. 그러다가 이내 연필을 집어던진다. 뭐 이만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이 앞선다. 뭐가 그리 급한지 빨리 색칠할 궁리만 했다. 더디지만 그게 빠른 길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어느새 조급함의 샛길로 빠진다.


다시 그 시절을 돌아보며 생각한다. 좋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면, 빨리 그리기보다 늦더라도 한 발씩 천천히 앞으로 내딛는 게 중요하다. 기본선에 충실하고 사물을 찬찬히 관찰해야 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그림의 대상이다. 어떻게 그리면 될까? 어떤 모양으로 표현할까? 제대로 캔버스에 옮기려면 뭐가 필요할까? 이런 생각만으로도 실력이 늘 것이다. 기본기가 받쳐주면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그림이든, 악기 연주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연주하고 그릴 수 있다는 말이다.


운동이나 악기도 그렇지만 그림도 일찍 배울수록 좋다. 어린 나이부터 반복해서 연습하면 학습 효과는 높아진다. 머리가 덜 복잡하고 세상과 덜 엮었을 때 더 잘 몰입하기 때문이다. 자기 분야에서 제대로 실력을 보이려면 '1만 시간' 혹은 최소 10년 동안은 노력해야 한다. 처음에는 표가 나지 않아 조바심 나지만, 노력을 시작하고 1만 시간과 10년이 가까워지면 실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만한 시간을 못 채우더라도 그런 각오로 노력해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 아마추어가 일주일에 몇 시간 그린 실력으로 뭔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두드러진 재능이 없는 내 그림 실력은 수박을 겉을 핥는 정도에 불과하다. 무리한 욕심은 내려놓고 즐기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힐링의 시간을 갖고, 취미 생활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세상 모든 일은 기본기를 다지는 데서 출발하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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