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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by Henry

명절 단상(斷想)

음력 새해 첫날 첫새벽 깼다. 우연히, 그것도 아무 까닭 없이 눈을 떴다. 시간을 보니 1시 30분이다. 잠은 저만치 달아나고 정신은 맑고 투명하다. 한겨울의 깊은 밤에 불을 켠다. 아파트 맞은편 동의 서넛 창문에 불이 켜져 있다. 그들도 나처럼 설렘 때문에 깬 건지 아니면 여태 잠들지 않은 건지 알 수 없다. 양력 새해는 떠들썩하지만, 음력 새해는 조용하다 못해 경건하다.


동이 트기 전 서둘러 서울역을 향해 집을 나설 것이다.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간다. 몇 년 전부터 제사를 집에서 지내지 않고, 고향 인근의 사찰에서 지낸다. 그 자리에 참석해 조상께 정성을 올려야 한다. 그건 제사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내가 해야 할 책무이자 마무리해야 할 숙제이다. 싫고 좋고 할 것도 없이 그렇게 해왔고, 또 그렇게 해서 내 세대에서 끝을 맺을 것이다.


복을 빌거나 행운을 비는 일은 양력 새해보다 음력 새해가 제격이다. 한해의 운세를 따지는 풍습도 음력에서 시작된 것이니 올해 운세를 제대로 짚어보는 것은 음력에 빠지지 않는 행사 중 하나다. 덕담 나누는 일이야 양력 새해나 음력 새해나 어느 때든 이야기해도 나쁠 일은 없다. 그러니 음력 첫날에는 활짝 웃으면서 “복 많이 받으라”하고 인사를 건네자.


어릴 때는 명절을 기다렸다. 단조로운 일상생활에서 그나마 설이나 추석에야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친척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도 귀에 솔깃했다. 친척 어른들이 손에 지어주는 용돈이 아니면 돈 구경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새해 선물이라도 받으면 기분이 하늘을 날 듯했다. 그런 즐거움에 어린 시절에는 명절을 사뭇 기다렸지만, 이제는 너무도 아득한 옛이야기가 됐다.


"제사를 잘 모셔라! 조상께 정성을 다해라!"


명절 때면 늘 듣는 말이지만 어느샌가 그 말이 무거운 짐이 되었다. 조상을 잘 모셔서 나쁜 거야 없지만 꼭 이렇게 해야 잘 모시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제사 음식들을 장만하느라 명절 전날은 늘 부산스럽다. 아이들도 잘 먹지 않아 제사 음식을 처리하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어른이 돼서는 명절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냥 받기만 하고 아무 책임이 없던 어린 시절도 아니다. 조상을 섬기는 풍습에서 시작된 명절은 큰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코로나 사태가 명절 풍경을 바꾸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옛날처럼 여러 친척이 모이는 일도 없어졌다. 아예 제사를 모시지 않는 집도 늘었고, 단출하게 자기 식구들끼리만 모신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더 오래 버텼을 제사 풍경이 이렇게라도 변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옛 풍습 중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하나 아무리 전통이라고 해도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히 바꿔야 한다. 제사 풍습도 이제는 마땅히 변해야 할 것이다. 제사 음식만 해도 그렇다. 조선 시대부터 내려오는 음식이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 시절에야 그걸 먹기 힘드니까 제삿날에나 먹기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지금은 식단이 그때와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왜 아직도 제사 음식은 변하지 않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피자와 스테이크를 제사상에 올리면

얼마 전까지 피자와 치킨을 즐겨 먹던 어른이 돌아가셨다고 하자. 그분의 제사상에는 평소 즐기던 음식을 올려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조상님들도 한우 생갈비나 스테이크를 더 좋아하실 것이다. 지금은 집마다 형편이 나아져서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 그런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면 왜 안 되는 걸까. 왜 지금도 배곯던 시절의 음식을 제사상에 올려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조상을 공경하고 집안 어른을 잘 모시는 풍습이 아름답다는 건 누구나 인정한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면 그에 따라 전통도 변하기 마련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조상을 모시는 풍습이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화 사회가 되어도 변하지 않았다면 이건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생활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는데도 제사 풍습은 한결같다면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올해는 조금만 차려야지!”


조금이라는 게 양을 말한다면 의미가 없다. 가짓수를 줄이지 않는다면 해야 할 일은 마찬가지다. 준비하는 데 양이 많고 적음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준비해야 할 음식 종류를 줄이지 않으면 매한가지다. 어른들은 그렇게 살아오셨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조상을 잘 모시는 길이고 그래야 자손들에게 복이 간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명절과 조상 잘 모시기를 숙명으로 여겨온 어른들에게 새로운 질서를 요청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말없이 어깨들 다독이는 만남이라면 좋다.

사회는 복잡해지고 사람들은 무척 바빠졌다. 하루 중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그 시간을 쪼개서 잠을 자고 자신을 추슬러야 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생활은 언제나 바쁘고 특별히 한 일도 없는데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해야 할 일은 끝이 없고 고단한 몸의 수고로움에 비해 삶은 항상 피곤하고 곤궁하다.


매년 돌아오는 명절이라 설렘이 없지 않지만, 지치고 피곤한 이에게는 명절의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야 덕담을 주고받으며 만남의 여유를 즐길 것이다. 형편이 더 좋은 사람은 멀리 여행을 떠나든가 경치 좋은 곳에 가서 힐링의 시간을 가진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의무감으로 명절을 지내야 한다.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부족함이 도드라져 갈등으로 번진다. 멀리 있기에 가졌던 미안함이 만남이 주는 피곤함으로 묻혀버린다.


다들 넉넉지 못한 형편이라 풀어놓는 이야기 자락이 그리 녹록지 않다. 직장을 잡지 못한 조카에게 건네는 덕담이 오히려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찌르기 십상이다. 결혼 적령기를 넘겨서까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는 조카에게 안부를 묻는 것도 서로 못할 일이다. 오지랖 넓은 어른이 던지는 덕담이 듣는 이에게는 악몽으로 남는다. 그저 아무 말 않고 모르는 척 그렇게 넘어가면 좋겠다. 굳이 덕담을 건네고 싶으면 건강하라는 인사말이면 충분하다. 말없이 어깨들 다독이는 그런 만남이면 굳이 마다할 것은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우리 의식은 더디게 변한다. 명절에 가족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건 좋은 일이다. 그간의 회포를 풀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은 작은 행복이다. 식구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그것을 조상님께 올리면 명절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얼굴을 맞대고 정을 나누는 일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명절은 모름지기 그런 행복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른 아침 나는 고향으로 간다.

달라진 외가 마을


이제 나는 아침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간다. 그곳이 진짜 고향이 맞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태어나고 일정 기간을 보낸 곳을 고향이라 한다면 그 도시는 고향이 아니다. 꽤 오래 그 도시에 살았지만,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거기서도 2시간 가까이 더 가야 하는 시골 마을이다. 하긴 그 시절의 몇 년을 산골 외가 마을에서 보냈으니 고향이 어딘지 나도 헷갈린다. 어느 곳이든 지금은 내가 아는 사람이 없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다 떠났다. 그 시간과 그 사람들은 떠나도 시린 기억은 한동안 내 의식을 물어뜯어 아프게 했다.


세월이 한참 더 지난 지금은 가끔 그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미 그곳은 내가 알던 고향이 아닐 것이다. 세월의 붓은 햇빛과 달빛을 곱게 갈아 만든 물감으로 아픈 기억마저도 추억으로 채색했다. 그러니 그곳에 가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름답게 채색된 추억 속의 그곳은 현실에는 없다. 고향을 떠난 온 이에게 그곳은 기억 속의 고향이 아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 돌아가 보면 고향은 오래전에 변했다. 운이 좋아 풍경은 남았다 해도 사람이 변했고, 고향을 보는 내 마음도 변했다.


잠시 감상에 빠지고 보니, 미국 소설가 토마스 울프와 소설가 이문열이 쓴 『그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가 문득 생각난다. 제목만 봐도 고향 떠난 이의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약 40년 먼저 발표된 토마스 울프(Thomas Wolfe)의 소설에 이문열이 화답 형식으로 쓴 소설로 기억한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돌아갈 그 옛날 그 모습, 그대로의 고향은 없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책들이라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 시절의 고향은 사라지고 없기에 영원히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은 또렷이 떠오른다.


음력 첫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설레나 보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이런저런 감상을 적어봤다. 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1862)』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가 말한 고향의 의미를 새기며 음력 첫날 첫새벽의 글을 마무리한다.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연약한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연약한 사람은 세상 단 한 곳에 자신의 사랑을 고정시켰고, 강한 사람은 그의 사랑을 모든 곳에 펼쳤으며, 완전한 사람은 그의 사랑 자체를 없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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