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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침팬지, 요리의 오감 미학에 빠졌다

by Henry

요리하는 철학자

엘 불리 레스토랑.JPG


스페인의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 (Ferran Adria)는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방의 코스타브라바(Cost Brava)는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남짓 가면 만날 수 있는 작은 해안 마을이다. 깊고 푸른 지중해를 끼고 있어 스페인 부자들의 별장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페란 아드리아는 <엘 불리(El Bulli)>라는 이름의 세계적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하얀 달걀을 지붕에 올린 초현실주의 미술가 살바도르 달 리의 집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해변 마을이다.


페란 아드리아가 운영한 <엘 불리>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날렸다. 잘 나갈 때는 1년 전에 예약을 신청해도 자리를 잡을까 밀까 할 정도로 할 정도로 식사하기 어렵기로 소문났다. 요리의 철학자이자 예술가로 불리는 아드리아의 요리를 먹는 것은 모든 미식가의 로망이었다. 하루 50명만 받고 따로 메뉴판은 없다. 모든 손님에게 같은 요리를 제공했다. 그날그날 영감에 따라 요리한 예술품을 제공한다는 것이 아드리아의 요리 철학이다.


아드리아는 분자 요리라는 새로운 요리 세계를 창조했다. 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요리를 선보였다. 사람들은 예상을 뛰어넘은 맛과 질감을 통해 감동과 경이를 느끼게 되었다. 그는 단순히 입을 즐겁게 하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눈과 귀까지 즐겁게 하는 요리의 혁신을 추구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주아리는 저서 『엘 불리의 철학자』(함께 읽는 책, 2014)에서, 아드리아의 요리는 조화, 창조, 행복, 아름다움, 시, 혼돈, 마술, 유머, 도발, 문화 등을 매개하는 언어라고 극찬했다.


페란 아드리아.JPG 사진 출처 http://mdesign.designhouse.co.kr/article/article_view/106/71847?per_page=16&sch_txt=


이렇게 만든 엘불리의 요리는 유명 레스토랑보다 음식 가격이 오히려 싼 편이다. 독보적인 요리의 예술성을 감하면, 저렴한 가격 때문에 그의 요리는 수익을 남기기 힘들었다. 게다가 한창 손님이 많았던 2001년도부터 창조적인 요리를 만드는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점심 장사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수익의 20%를 음식 개발에 투자함으로써 요리의 예술성과 창조성을 유지했다. 요리를 단순히 먹는 것에서 오감의 종합 예술로 승화시킨 아드리아의 예술혼이 작동한 것이다.


아드리아의 과감한 투자는 <엘 불리>를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만들었다. 아드리아는 요리의 예술가이자 철학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렇다고 해도 엘불리의 경영 압박은 피하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였다. 결국 2011년 7월 30일 저녁을 끝으로 아드리아는 새로운 요리연구를 위해 엘불리 레스토랑의 문을 닫았다. 예술의 세계는 멀고 험난하다는 것을 아드리아는 요리로 보여주었다.


향과 색채의 미학에 빠진 별난 침팬지

호모 쿡피엔스의 요리는 맛만 좋은 것이 아니라 색깔도 아름답다. 게다가 매혹적인 향은 사람의 혼을 빼고, 아삭하는 맑은 소리는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이제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색과 향으로 먹는다. 입과 눈 그리고 코까지 요리를 씹고, 뜯고, 즐기고, 보고, 맛보며 향에 취한다. 바야흐로 요리는 우리 감각기관의 종합 예술이자 오감의 미학으로 발전했다.


과거 훌륭한 조리사는 좋은 식재료를 구해 양념에 잘 버무린다. 적절하게 굽고 데친 음식에 맛깔난 소스를 뿌리면 음식의 풍미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렇게 완성한 요리를 식탁에 올리면 사람들은 환호한다. 처음에는 호모 쿡피엔스도 요리의 맛을 으뜸으로 쳤고, 나머지는 그리 중히 여기지 않았다. 색과 향보다 맛에 치중했던 요리가 한동안 대세였지만, 지금은 그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요리가 최고로 평가받는다. 시각적 아름다움과 향이 곁들여진 요리는 최상의 맛을 제공한다.


호모 쿡피엔스는 제철에 제 색깔 나는 식재료로 화려하게 식단을 장식한다. 요리는 다채로운 색채의 미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봄에는 향긋한 초록색의 음식이 어울리고, 여름에는 시원한 색의 식재료가 제격이다. 가을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식재료들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좋다. 추운 겨울을 나기에는 따뜻한 색 요리가 필요하다. 자연에는 철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식재료가 자라고, 그것들이 아름다운 작품이 되어 매일 식단에 오른다.


훌륭한 요리가 내뿜는 아름다운 향기는 후각을 통해 뇌를 흔들어 놓는다. 잘 익은 사과 향기가 십 리를 가듯 맛 좋은 음식의 향기는 멀리 퍼진다. 그 향긋한 냄새를 이끌려 사람들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봄 미나리의 향긋한 향은 식탁을 넘어 집안 가득 퍼진다. 그런 날이면 밥 한 공기를 뚝딱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파도에 멍든 해초가 전해주는 푸른 바다 향기는 혀끝을 사정없이 들쑤셔 어느새 동해로 데려간다.


시상


향기는 코를 통해 대뇌피질로 곧장 전달된다. 시각이나 미각 등 다른 감각들은 변연계의 시상을 통해 정보를 대뇌피질로 전달한다. 말하자면 후각은 정보를 직통으로 대뇌로 보내지만, 다른 감각 기관은 각자의 정보를 시상이라는 중개소를 거쳐 대뇌로 전달한다. 냄새 정보가 그만큼 빨리, 또 강하게 우리 뇌리에 새겨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덕분에 향기는 요리의 미학을 완성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소리의 미학에 빠진 호모 쿡피엔스

음식을 먹을 때 씹히는 소리도 훌륭한 요리가 갖춰야 할 조건이다. 음식을 먹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아삭거린 소리까지 아름답다. 산나물은 깊은 산골의 개울물 찰랑거리는 소리를 낸다. 좋은 음식에는 자연이 주는 온갖 고요한 소리를 뿜어낸다. 요리가 내는 미세한 음악에 취해 음식을 음미하노라면 무릉도원에 사는 신선이 부럽지 않다. 귀는 잘 만들어진 음식이 내는 작은 소리도 놓칠 수 없다.


봄날의 식탁에는 봄밤 벚꽃 피는 소리가 내려앉고, 소나기에 몸을 뜨는 수숫대의 가냘픈 떨림이 여름 밥상에 오른다. 가을 밥상에는 들릴 듯 말 듯 깊은 산골짜기 낙엽 지는 소리가 난다. 한겨울 눈길 밟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겨울 식단 가득하다. 철마다 식단에는 서로 다른 제철 소리로 풍성하다.


훌륭한 음식을 직접 손으로 만질 수는 없다. 대신 혀끝으로 느끼는 질감이 부드럽고 감미로워야 한다. 가볍게 깨물어도 순순히 씹히는 섬세함이 좋다. 억세고 딱딱해서 깨물기 힘들다면 좋은 요리가 아니다. 지나치게 익혀 허물 거리지 않고 설익어 딱딱하지 않아야 한다.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불길 위에서 적절히 굽고 익혀 나온 느낌 좋은 요리가 필요하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질감이야 다르다고 해도 한입 베어 물 때 톡 하고 터지는 요리의 감미로움과 입안에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소리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손에 넣게 되자 원초적 식욕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별난 침팬지는 식탐을 즐기는 인간이 되었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에는 항상 요리가 동반된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먹어야 사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다른 모든 욕망이 사라져도 색과 향기와 소리가 있는 요리는 아름다움으로 평생 우리와 함께한다. 이제 별난 침팬지의 요리를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니라 인체가 즐기는 오감의 예술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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