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의 생산과 욕망의 소비
별난 침팬지 시절 음식을 먹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이다. 생존 에너지는 숨 쉬고, 짝짓고,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열량이다. 성인은 하루 1,500~2,000Kcal의 열량을 확보해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그렇게 생산된 에너지는 인간의 생존 본능을 일으키고 유지한다. 말하자면, 아주 아득한 시절 음식은 생존 본능인 식욕을 생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억만금을 가진 부자도, 생활이 궁핍한 사람도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원은 음식이다. 인간은 음식을 통해 열량을 섭취해야 생존할 수 있고, 짝짓기와 숨 쉬기를 할 수 있다. 먹는 일은 식욕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본능을 생산하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음식의 핵심 역할은 본능을 생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생존 본능을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식의 괘감보다 열량 충족이 먼저다. 절대 열량이 부족한 별난 침팬지에게는 오감을 자극하는 미식은 아직 아득한 이야기다. 신진대사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별난 침팬지 시절에는 많이 먹는 것이 미덕이고 지방을 축적하는 것이 남는 장사였다. 그때는 몸매나 다이어트를 신경 쓸 여유가 없고, 오히려 높은 체지방이 우수한 생존 능력을 의미했다.
삶이 윤택해지고 소득이 증가하면서 요리는 에너지 생산이라는 기능을 넘어섰다. 음식은 씹는 즐거움과 맛의 황홀함을 제공하는 욕망의 소비 행위로 진화했다. 경제적 능력을 갖춘 미식가들은 오감 만족을 극대화하려고 음식을 먹는다. 그들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빼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요리사의 만든 요리를 즐긴다. 이제 별난 침팬지는 요리를 통해 본능을 생산하는 것과 함께 미식이 주는 쾌락적 욕망을 소비하고 있다.
현대 요리 문화는 본능 생산에 치중하는 계층과 욕망을 소비하는 계층을 분리한다. 음식은 생산재와 소비재의 특성을 모두 갖는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음식은 욕망의 소비가 아니라 본능 생산에 불과하다. 소득이 많은 사람은 값비싼 식재료로 만든 고급 요리를 즐기며 먹는 즐거움과 건강까지 챙긴다. 반면에,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은 그런 고급 요리에 접근하기 힘들다.
셰프테이너가 주도한 요리 열풍
이제 요리는 원초적 본능에서 시각과 감각을 느끼게 하는 미학적 욕망으로 발전했다. 타인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화려한 색채와 퍼포먼스에 매료된다. 자신이 직접 요리하는 과정과 음식을 먹는 장면들을 올리는가 하면, 맛있는 음식점의 요리 사진과 느낌을 남긴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음식은 만드는 과정과 먹는 과정이 모두 재미를 선사한다. 만드는 과정은 눈으로 관찰하는 다양한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고, 먹는 장면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다양한 식재료와 그것이 갖는 색채감, 느껴지는 질감이 고해상도의 화면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화려한 식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한 편의 단편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러니 사람들이 형형색색의 요리 세계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시청률에 목매는 방송사로서는 이것을 그냥 두고 볼 리 없다.
처음 요리 열풍은 셰프들이 주도했다. 그들의 화려한 손동작과 퍼포먼스는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멋진 ‘남자 셰프’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재치 넘치는 입담과 요리하는 멋진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게 충분하다. 훈남 셰프들이 주도하는 요리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침샘을 자극한다. 그들을 보면서 ‘내 남자친구’의 환상에 빠지는 여성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된다. 현실의 허전함은 대리만족할 거리를 찾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방송은 욕망 소비의 상대적 빈곤을 자극함으로써 시청자를 확보한다. 갖지 못한 것을 방송으로 보여줌으로써 마치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방송을 통해서 욕망이 충족된 듯한 대리만족을 준다. 자기 처지가 부족할수록 신데렐라의 환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사람 심리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동화 속에서 이루어지고 드라마 속에서는 이루어진다. 마치 내가 요리하는 멋진 셰프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음식에 대한 우리들의 짝사랑도 기본적으로 욕망의 대리만족을 전제로 한다. 화려하고 세련된 차림의 요리사들과 깔끔하게 정리된 세트장의 주방, 얼굴값을 하는 연예인들의 화려한 입담, 이들과 웃고 즐기는 사이에 완성된 요리의 정갈함에 사람들은 빠진다. 맛을 보는 사람들의 놀라운 표정, 환상적인 맛에 대한 평가, 처음에는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어느새 그것이 사실처럼 느끼게 된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가들의 세밀한 말의 잔치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 어느새 방송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자신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인들도 요리 열풍에 동참했다. 스마트 폰의 보급은 여성들이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사진을 찍는 문화를 만들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블로거에 올리거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 올리는 일이 유행이 된 지 오래다. 이렇게 먹방 열풍은 개인들의 일상에도 퍼져나갔다.
먹방 유튜버의 폭풍 흡입
최근 일반인들의 먹방 열풍은 유튜브 1인 방송으로 진화했다. 개인들도 요리 사진을 올리다가 직접 요리를 먹는 콘텐츠를 개발했다. 그들은 음식을 폭풍처럼 흡입하는 장면을 유튜브에 방영한다. 이를 본 사람들은 열광하고 백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둔 유튜버도 생겼다. 181만 명의 구독자를 둔 '입짧은햇님'과 약 142만 명의 구독자를 자랑하는 '히밥'은 유튜브의 유명세를 이용해 TV먹방 프로그램에 진출해 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우리는 요리 열풍에 깊이 빠졌다. TV의 요리 프로그램은 방영되는 족족 크게 유행한다. 처음 셰프테이너가 주도한 요리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의 먹방 프로그램으로 진화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잠시 주춤했던 먹방 프로그램은 코로나가 진정되면서 다시 불붙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과 전직 유명 스포츠 스타에 '히밥' 같은 유튜버의 합류로 먹방 열풍이 다시 번지고 있다. 한때 세계 각국에다 한국 요리를 선보이는가 하면, 최근에는 각국을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시식하는 프로그램도 인기를 끈다.
사람들은 방송 화면을 통해 음식의 화려한 색감, 음식을 만드는 퍼포먼스, 신선한 음식 재료, 그리고 화려한 성찬에 빠진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해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은 방송을 통해 욕망을 충족한다. 화려한 음식을 보면서 욕망의 나래를 펼친다. 사람들이 요리와 먹방 열풍에 빠지는 까닭은 본능의 생산과 욕망의 소비라는 이중성 때문일 것이다. 섹스보다 더 강하고 질긴 요리 욕망은 원초적 본능을 넘어 소비적 욕망으로 진화했다. 별난 침팬지는 맛있는 음식이 들려주는 본능과 욕망의 이중주에 빠졌다.
모든 욕망의 소비가 그렇듯이 과하지만 않으면 좋다. 현대인은 소비를 통해 자기 존재감을 확인한다. 미학적 요리를 소비하여 행복을 느낀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다. 다이어트하는 사람은 먹방 프로그램을 보면서 직접 먹지 않더라도 포만감을 느낀다고 한다. 음식을 통해 본능을 생산하고 욕망을 소비하는 행위도 자기 삶의 방식을 따르면 된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마음 둘 데 없다면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또한 팍팍한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별난 침팬지의 현명한 지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