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베리아의 찬바람과 그 겨울의 찻집

by Henry
https://www.mindgil.com/news/articleView.html?idxno=69995


시베리아 들판의 겨울 바람

겨울바람은 차고, 매워야 제격이라고 하지만, 코끝이 날카로운 칼에 베인 듯 아프다. 가느다란 회초리로 맨살을 후려치듯 찬 겨울바람에 온몸을 할퀴며 지난다. 헹하며 부는 바람은 들판을 달리는 거친 들소 무리의 발소리처럼 요란스럽다. 외투 깃을 부여잡은 손끝이 떨어질 듯 고통스럽다.


올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오늘(25일)까지 이어진다. 서울의 아침 체감 기온이 영하 23도까지 내려간다. 강추위와 강한 바람이 맹렬한 기세로 몰려온다. 저 멀리 남녘에는 폭설이 내릴 것이라 한다. 시베리아 상공에서 머물든 영하 50도 아래의 찬 공기가 봇물 터지듯 몽골과 중국을 지나 우리나라로 밀려왔다.


시베리아의 겨울은 길고 혹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부 시베리아의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44℃까지 내려가는데, 심할 때는 영하 70℃까지 떨어진다. 사람이 살기에는 추워도 너무 추운 곳에서 온 바람이니 살을 에는 건 당연하다. 시베리아의 평원에는 시린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서있는 자작나무 숲이 있다. 이 숲을 뚫고 매서운 시베리아 들판의 바람은 장장 7,00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달려온다. 그 먼 길을 살아남은 바람은 독하고 맵기가 한량없고, 광폭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시베리아의 추위가 얼마나 매서운지 모스크바로 진격한 나폴레옹 60만 대군과 히틀러 나치 군대의 상당수가 추위로 얼어 죽었다. 당시 세계 최강인 이들 부대를 물리친 것은 러시아 군대가 아니라 시베리아 동장군이다. 이처럼 가혹한 추위는 시베리아 들판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곳의 바람은 죽음의 계곡에서 달려온 어둠의 사신과 같다.


12월이 되면 시베리아의 태양 고도가 낮아지고, 땅은 빠르게 차가워진다. 언 땅은 공기를 무겁게 만들고, 공기 밀도를 높여 고기압으로 만든다. 시베리아의 차가운 고기압은 밀도가 낮은 태평양 바다를 향해 이동한다. 몽골과 중국을 지나면서 바람은 몸집을 불린다. 그렇게 덩치를 키운 찬바람이 1월 말이면 불청객으로 우리나라를 찾아온다.


늦가을이 되면 시베리아 벌판에는 눈이 내린다. 폭설이 내리면 땅 위 온도는 더욱 차가워진다. 세상은 온통 흰 눈으로 덮이고 햇빛마저 반사해 땅은 더 차갑게 식는다. 시베리아 들판이 꽁꽁 얼어붙으면 찬 공기는 면적이 더 넓어지고, 더 강력한 힘으로 한반도 상공을 밀어붙인다. 찬 공기는 서해안 상공의 따뜻한 공기와 부딪혀 커다란 눈구름을 만든다. 이내 하늘에서는 눈 폭탄이 쏟아져 남쪽 지방과 섬은 눈으로 뒤덮인다.


그 겨울의 찻집으로

며칠째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다. 저 멀리 시베리아 벌판의 찬 공기가 우리를 꽁꽁 얼게 만든다. 세상은 우리 의지와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저 먼 나라의 찬 바람이 한반도를 겨울왕국으로 만든 것이다. 광폭한 추위가 며칠 계속된다고 한다. 하루를 열심히 사는 서민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모든 걸 얼리는 겨울왕국은 가뜩이나 고단한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지만, 이렇게 추우면 서민들 살기가 여름보다 못하다. 아직도 연탄을 피우며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연탄 가격은 배달료를 장당 900원 가까이 된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하루 여덟 장 이상의 연탄을 때야 하니, 연탄값으로 지출하는 돈만 해도 한 달에 20만 원이 훌쩍 넘는다. 한 달 몇십만 원 안 되는 돈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한파는 너무 힘들다. 더구나 높은 언덕에 사는 사람들은 연탄을 주문하는 일조차 버거워 차가운 겨울의 고통을 더 크게 겪는다.


겨울은 시린 고독을 켜켜이 쌓아 올린다. 무릎이 빠질 만큼 내린 눈은 사람 왕래를 끊어버린다. 가뜩이나 홀로 살아야 할 삶은 더 깊은 외로움에 빠져든다. 가끔 문을 열어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여름이 한결 낫다. 밤은 또 왜 그리 긴지 첫새벽에 잠이 깨 뒤척인다. 조심스레 문을 열어보려 해도 매서운 바람이 되레 억센 힘으로 가로막는다. 이런 밤은 오갈 데 없는 늘 이방인이 되어 도시의 한편에서 고독과 외로움에 젖게 한다.


어떤 이는 눈 내리는 날 스키 타는 즐거움에 빠지고, 다른 이는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 흰 눈이 덮인 겨울 풍경을 만끽한다. 겨울을 즐기는 것도 날씨가 어느 정도여야 가능하지만, 추워도 이렇게 추우면 누구라도 겨울나기가 쉽지 않다. 얄미운 시베리아 들판의 추위가 우리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이럴 때일수록 어깨를 펴고 몸을 자주 움직여야 한다. 추위는 곧 물러갈 것을 우리는 잘 알기에 아무리 엄혹한 날씨라도 견딜 수 있다. 참고 기다리면 시베리아의 찬 공기도 제풀에 꺾인다.


우리 삶에도 가끔 거센 한파가 몰아칠 때도 있다. 예기치 못한 찬 공기가 훅하고 분다. 그럴 때 우리는 고개를 들고, 어떤 시련도 곧 물러갈 거라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한파가 물러날 것을 확신한다면 충분히 견딜 수 있고,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삶의 찬 기운도 물리칠 수 있다. 강퍅한 바람이 문을 막아서도 끝내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 그래야 고독과 외로움도 뒷걸음치며 물러선다.


누군가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믿으면 할 수 없다. 믿는 대로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고 한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믿고 안 믿고는 자유고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는 선택한 대로 된다. 시린 날이라 몸이 저절로 쪼그라들지만, 마음마저 웅크려서는 안 된다. 몸도 마음도 쫙 펴고 겨울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가자.


오늘은 독한 시베리아의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언덕배기의 '그 겨울의 찻집'에 들러야겠다. 벽난로가 있는 그곳에서 따듯한 차 한 잔을 시킬 것이다.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 속에 새파랗게 날 선 고독과 외로움을 함께 저어 마셔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별난 침팬지의 먹방 여행, 본능의 생산과 욕망의 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