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시작한 별난 침팬지
"오늘 큰 들소를 잡았다. 이걸 어떻게 자랑할까?"
"그림으로 그리면 되잖아 “
별난 침팬지가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를 완료하고, 드디어 인류의 직접 조상이 되었다. 약 20만 년 전의 일이다. 7만 년 전에서 3만 년 전 사이에 인제 혁명이 일어났다. 머리가 획기적으로 좋아지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인지적 언어도 발명했다. 인간의 머릿속 소프트웨어는 최상위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인류의 문명은 거침없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인지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아직 문자가 발명되기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멀었다. 기원전 1만 년 안쪽으로 들어와야 제대로 된 글자가 만들어진다. 말은 있지만 글자는 없어 지식을 축적하기 힘들었다. 별난 침팬지는 무엇으로 기록을 남기고 지식을 전달할까 고민했다. 그들은 얼마나 큰 동물을 사냥했는지, 그날 사냥이 얼마나 멋진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인류 최초의 화가는 축제의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려는 별난 침팬지의 생각은 현명했다. 동굴 속 벽화를 살펴보면, 힘센 들소와 많은 동물이 등장한다. 사냥에 성공해서 의기양양한 별난 침팬지의 모습도 보인다. 동굴 속 그림을 보면, 그들이 벌인 축제의 향연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 동굴의 변화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시간의 통로였다. 동시에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훌륭한 정보전달 수단이자 인류 최초의 예술 작품이었다.
동굴 밖의 세상은 거센 비바람에 마모되고 깎여 사라졌지만, 동굴 벽화는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오랜 세월을 견뎠다. 때로는 거센 폭풍우로 동굴 입구가 무너지는 불상사도 생겼다. 그 덕분에 동굴벽화를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밀폐된 동굴은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었고, 그 덕분에 동굴벽화의 색이 바래지 않아 당시의 모습을 관람할 수 있다.
섬세한 선의 라스코 동굴 벽화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라스코 동굴에는 기원전 1만 5천 년 전에서 1만 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 있다. 라스코 동굴 벽화는 선사시대의 사냥터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동굴 암벽에 묘사된 그림들은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말, 소, 사슴, 돼지, 곰, 새 등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동굴 벽화에는 커다란 검은 소, 작은 말, 사슴, 코뿔소와 매머드 등 많은 큰 동물들도 보인다. 동물들에게 활을 겨누는 사냥꾼들과 등에 여러 개의 창이 꼽혀 붉은 피를 흘리는 들소를 볼 수 있다.
라스코 동굴의 그림은 섬세한 선과 화려한 색조를 자랑한다. 색감이 다양하고 구도와 형태가 정교하다. 단순히 사냥터의 모습을 그린 습작이 아니라 정교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동굴의 벽화는 기록물에서 회화의 세계로 발전하였다. 드디어 별난 침팬지는 예술가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라스코 동굴벽화는 처음에는 거친 선으로 동물의 외곽선을 그렸다. 그리다가 동물의 갈기를 묘사하는 두꺼운 선과 복부의 부드러운 선을 구분하여 그리기 시작했다. 들소의 모양이 초기에 비해 입체감과 사실감이 살아났다. 들소의 날카로운 뿔, 사실적인 눈과 입, 두 개로 가라진 발굽 등 마치 살아 있는 들소를 보는 듯하다. 벽화석에는 별난 침팬지들이 순록 떼에게 화살을 겨누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라스코 동굴의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은 동물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했다. 그들은 울퉁불퉁한 동굴 벽에 덩치 큰 들소를 입체감 넘치게 그렸다. 그들은 3차원의 이미지를 2차원의 동굴 벽에 구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원근감과 구도가 살아 있는 그들의 작품은 예술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기원전 1만 3000년 전에 일어난 산사태가 동굴 입구를 막았다. 그 덕분에 동굴의 벽화는 완벽한 상태를 유지했다.
강한 터치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
대략 18,500~14,000년에 만들어진 알타미라 동굴벽화에는 커다란 암사슴의 발밑으로 뛰어드는 들소가 보인다. 라스코 벽화가 투박한 선으로 그려진 데 비해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짐승들은 더 섬세하고 정교한 모습이다. 흰색과 검은색을 주로 사용한 라스코 동굴벽화와 달리 알타미라 동굴벽화에는 붉은 색조가 많이 사용되었다. 알타미라 동굴의 예술가들은 다양한 색을 사용하고 정밀하게 묘사하는 수준 높은 그림 실력을 보여준다.
들소의 윤곽선과 갈기는 검은색으로 채색하였고, 몸은 붉은색과 갈색으로 그렸다. 들소의 앞다리와 뒷다리 모양도 뚜렷하고, 갈기도 섬세하게 표현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는 여러 색을 사용하였고 동굴 천장의 굴곡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이는 그들의 뛰어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덕분에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가 내쉬는 거친 콧바람 소리가 귀에 생생히 들린 듯하다.
들소는 순록에 비해 덩치가 크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얻을 수 있다. 별난 침팬지의 후손인 사피엔스 무리가 들소 한 마리를 잡으면 며칠 동안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았다. 도 될 정도이다. 들소는 야성에서 무리 지어 살면서 굉장한 힘도 공격성을 지니기 때문에 순록 사냥에 비해 훨씬 위험하다. 날카로운 들소 뿔에 받혀 쓰러진 사핀엔스의 모습에서 들소 사냥이 얼마나 위험한지 추측할 수 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다양한 색깔을 사용하고, 동물들을 매우 정밀하게 묘사했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높은 수준의 예술 감각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원시시대의 예술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경제 활동 그 자체를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먹고사는 문제가 절실한 경제 문제이자 삶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사냥터의 그림은 별난 침팬지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자 위대한 작품이다.
별난 침팬지는 수만 년에 걸쳐 동굴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 실력도 좋아지고 구도와 각도도 세련되었다. 색감과 작품성이 나날이 발전해 동굴벽화는 인류 최초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별난 침팬지는 사냥터에서 겪은 내용을 동굴 천장에 그림으로 남겼다. 벽화는 문자가 발명되기 전 훌륭한 정보 전달 수단이었고, 동시에 훌륭한 미술 작품이 되었다. 별난 침팬지가 본격적으로 글자를 사용하게 되자, 동굴 벽화의 정보 전달 기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은 사람만이 가진 재능이다. 그 덕분에 지구상 어떤 생명체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사람은 해낸다. 그러니 열심히 그리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매일 써는 게 좋을 듯하다. 동시에 종이에 여백만 있다면 뭐라도 그리면 더 좋다. 그것은 별난 침팬지가 물려준 훌륭한 유산이자 삶의 여백을 알차게 채우는 좋은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