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침팬지, 제국을 통치하다.

by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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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 생산물과 계급의 탄생

별난 침팬지는 도구를 개량하고 발전시켰다. 청동기와 철기로 만든 사냥 도구와 농기구가 개발되면서 생산능력이 크게 늘었다. 자기 혼자 사냥하고 가족과 함께 농작물을 경작해도 부족함이 없다. 재주 있는 별난 침팬지는 생존에 필요한 생산물보다 많은 잉여 생산물(剩餘生産物)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잉여 생산물을 확보한 별난 침팬지는 자기 수확물을 나눠주는 것을 꺼렸다. 그는 더 이상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할 이유가 없어졌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별난 침팬지는 공동체 사회를 벗어났다. 이제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는 공산 사회의 매력이 사라졌다.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나뉘었다. 별난 침팬지 사이에 경제적 능력 차이가 발생했다. 먹고사는 데 필요한 식량을 구하지 못한 별난 침팬지는 난감해졌다. 가족을 먹여 살릴 방도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유능한 별난 침팬지한테 찾아가 식량을 부탁했다.


이제 공짜 점심은 사려졌다. 가난한 별난 침팬지는 식량을 얻는 대신 힘센 별난 침팬지 집에서 일을 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분적으로 예속된 것이다. 목구멍에 풀질해야 하는 경제적 이유로 계급이 발생했다. 사회는 일을 하지 않고 지배하는 별난 침팬지, 땅을 빌려 소작하는 별난 침팬지, 아예 노예로 일하는 별난 침팬지로 구분된 것이다. 땅을 빌려 소작하는 별난 침팬지도 힘 있는 침팬지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됐다..


곡물과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별난 침팬지들은 강가에 마을을 이루었다. 약 1만 2천 연쯤 농업혁명이 성공하자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했다. 농사를 지어 살만하다는 소문이 돌자 마을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일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잉여생산물도 증가했다. 그 덕분에 일하지 않는 전문가 계층이 등장했다. 물론 일하는 별난 침팬지는 열심히 죽으라고 일만 했다.


별난 침팬지들은 사냥과 채집 활동 대신에 농사짓는 일을 선택했다. 농업 기술의 혁신은 소득을 증가시켰고, 그 바람에 인구가 늘었다. 안타깝게도 소작인이나 노예는 사냥해서 같이 나눠 먹던 공동체 시절보다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수확량이 증가했지만, 정작 자기에게 돌아오는 몫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산 사회와 달리 계급 사회에서 농민은 소작을 대가로 수확물 대부분을 귀족에게 바쳤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하는 사람 따로,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당시는 시장이 없어서 땅에서 나는 소출 말고는 부를 축적할 수 없었다. 자연히 땅을 지배하는 귀족들이 부를 지배했다. 권력자는 축적한 부를 이용해 군대를 양성하면서 권력을 확대했다. 힘센 별난 침팬지는 부족을 평정해서 부족장이 되고, 다시 힘을 길러 다른 부족을 정복했다. 더 많이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한 정복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제국을 건설하다.



지배 계층은 정복 전쟁을 통해 다른 종족의 잉여생산물을 약탈했다. 나아가 전쟁에 패한 종족을 노예로 삼았다. 고대 국가는 정복 전쟁을 통해 국부를 증대했고, 노예의 노동력을 확보했다. 노예는 결혼이 금지되었고 오로지 말하는 생산도구로 취급받았다. 국가 내부에서도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거나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노예에 가까운 소작인 신분으로 전락하였다. 수많은 정복 전쟁을 거치면서 수메르 제국, 이집트, 고대 그리스와 로마 등은 제국을 건설했다.


수메르(Sumer)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수많은 도시를 건설하였다. 기원전 약 4천 변경 중동 지역의 넓은 땅을 차지한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Sumer) 제국은 수많은 부족과 종족을 정복하여 제국을 건설하였다. 기원전 약 3천 년에서 3천5백 년 전 사이에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 수메르에서 최초의 도시 국가인 아카드 왕국(Akkadian Empire)이 탄생했다. 잉여생산물을 확보하기 위한 힘센 별난 침팬지의 탐욕은 끊임없이 정복 전쟁을 부추겼다.


수메르 왕국에서는 사람들과 상인의 왕래가 잦은 곳에 왕국 시장이 열리면서 상행위가 일어났다. 거래 내역을 기록할 필요를 느낀 사람들이 문자와 숫자를 만들었다. 또 거래를 편리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화폐를 만들어 잉여생산물의 교환이 활발하게 되었다. 최초의 문자인 수메르어로 가장 오래된 글은 물품 목록과 영수증 등이었다. 결국 인간이 도시를 확장하고 왕국을 만든 까닭은 영여생산물의 착취라는 경제적 동인이 작용하였다.


별난 침팬지의 먹고살기 위한 투쟁은 경제체제를 변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경제 이유로 문자와 화폐를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먹고살기 위한 별난 침팬지의 투쟁이 제국을 건설하고, 노예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를 만들었다. 수메르 왕국은 최초로 화폐와 문자를 발명했다. 화폐와 문자가 통용되면서 단순한 물물 교환경제가 교환과 무역을 중심으로 한 상업으로 발전했다.


일하는 별난 침팬지, 즐기는 별난 침팬지

제국의 농민은 수확물 대부분을 귀족에게 바쳤다. 그들은 뼈 빠지게 일하고도 늘 배가 고팠다. 생산물 대부분을 가져간 귀족들은 도시에는 거대한 부의 성을 쌓았다. 이때 세운 이집트 파라오의 피라미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로마의 콜로세움 등 웅장한 건축물은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당시에는 백성의 배를 굶겨 만든 건축물이 후손들의 볼거리가 되었으니 기분이 묘하다.


잉여생산물은 황제, 귀족, 성직자, 상업 교역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실제 생산을 담당하는 농민들의 몫은 늘 쥐꼬리만 했다. 신분적으로 귀족에게 예속된 노예나 농민들은 오로지 황제와 귀족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야 했다. 그들은 착취당하고 가혹한 노동에 종사할 뿐이었다. 고대 국가에서 부는 생산에 참여한 경제활동의 대가가 아니라 권력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에 불과했다.


공산 사회는 노예를 기반으로 하는 신분 사회로 바뀌었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별난 침팬지는 제국을 세웠다. 풍부한 잉여생산물은 제국의 기반이다. 귀족들은 전쟁만 없으면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운 삶을 즐길 수 있었다. 고대 국가의 귀족들만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사람들도 흔치 않다. 그 순간에 농민과 노예들은 그들의 먹거리를 위해 논밭에서 일했다.


고대 국가의 왕과 귀족들의 삶을 백성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어느 시대이건 일하는 별난 침팬지는 일에만 파묻혀 살고, 귀족은 소일거리 찾는 데만 골몰했다. 힘없는 별난 침팬지에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는 여전히 풀기 힘든 숙제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백성이 배곯지 않게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니, 별난 침팬지가 가야 할 길은 멀고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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