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잘 보려면 손가락을 제대로 펴야 한다.

by Henry

달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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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망월(見指忘月)’은 손가락을 보느라 정작 달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불가(佛家)에서 천 년 넘게 전해온 가르침이다. 중국 선종(禪宗)에 속한 혜능(慧能·638~713) 선사한 일화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혜능 스님은 글을 모르는 까막눈이다. 그런데도 도를 깨친 훌륭한 분이다.


“스님! 스님은 글도 모르시면서 어찌 진리를 안다는 말씀인지요?”

“진리는 저 하늘의 달과 같고, 글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글도 모르는 분이 어찌 진리를 아시느냐'는 비구니의 질문을 받고 혜능 스님이 하신 말씀이다. 진리를 깨치는 데 글자를 알고 모르는 것이 뭐 중요한가. 진리는 마치 달과 같은데, 손가락 끝에만 집중한다면 어찌 달을 볼 수 있겠는가. 혜능 스님은 정작 봐야 할 진리보다 글자를 알고 모르는 사실에만 집착하는 비구니를 일깨웠다.

새로 오신 높은 분을 모시고 간담회가 열렸다. 할 말을 편안하게 다 하라고 우아하게 말씀하신다. 세상없는 인자한 표정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격의 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새로 오신 분이라 아직 때가 덜 먹었다. 나름 소통을 하고, 토론을 마다치 않는 모습도 좋다. 소통은 마음을 열게 하고, 토론은 잠자는 이성을 깨운다.


새로 오신 분도 달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이 얼마나 근사하고 예쁜지 잘 설명하셨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름답고 황홀한 생각에 젖었다. 보고 싶고, 가고 싶은 열망이 끓어올랐다. 이번에는 꿈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이제 달이 있고, 그걸 봐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아름답고 이상적인 말씀을 주신다. 모두가 바라는 달을 그리신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아시니 기대해도 좋을 법하다. 꼭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 모두 열심히 노력할 자세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늘 희망으로 이끌 메시아를 기다렸다. 이분이 그분일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바라본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이어 갔다. 회의가 길어질수록 왠지 공허한 느낌이 든다. 아직 내부를 제대로 파악하시지 못한 것 같다. 누군가 이분의 손가락이 되어 잘 보좌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설익은 말의 성찬이 될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걱정의 대부분은 쓸데없고,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믿어보자.


'그런데 달은 어디 있지?'

'어느 쪽을 보면 달을 볼 수 있을까?'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꿈이 저절로 이루어질 리 없고, 목표가 쉽게 달성되는 것도 아니다. 아직 그분께서 달이 어디 있는지 손가락을 들지 않으신다. 달은 있고, 아름답다는 말씀을 충분히 하신다. 지금은 내부 상황을 점검하시느라 바쁘신 모양이다. 조만간 말할 것인데 조급하게 굴 필요가 없다. 이제 시작이니 인내하고 기다려야지, 성급하게 지레짐작해 힘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몇 가지 질문하고 시급한 상황을 건의했다. 나중에야 어찌 되었든 담대하게 들어준다. 결과는 두고 봐야 하지만, 경청은 좋은 자세다. 앞날이 희망적이지만, 문제는 실천에 달렸다. 달이 어떤 모양인지 친절하게 말씀하셨으니, 어떻게 하면 그걸 볼 수 있는지 조만간 말씀하시라 기대한다. 한 번의 간담회를 하고 실행 여부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손가락을 잘 펴야 한다.

높은 분들은 경청은 하지만 의미를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기능적 듣기와 인지적 듣기의 차이다. 그분의 머릿속 신경망이 얼마나 활성화되었는지에 달렸다. 본인이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자기식대로 해석한다면 머릿속 신경회로는 이미 화석화했다는 뜻이다. 새로 오신 분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기대한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후 내내 마음이 들떴다. 어떤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력을 보여줄지 기다려야 한다. 경륜과 식견이 월등한 분이니 기대할 만하다. 보통 사람은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희망을 품는다. 사람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꾼다. 다시 희망의 시간이 돌아왔다. 달은 이상이고, 손가락은 현실이다. 손가락을 어떻게 펴서 우리의 시선을 달로 인도할지 설렌다.


손가락을 펴서 제대로 달을 가리킨다 해도 달이 너무 멀리 있으면 어떻게 하나? 수십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달을 보라시면 낭패일 수도 있다. 그런 우리가 아둔하고 눈이 어두운 탓이다. 우리 능력이 모자라 달을 보지 못한다면, 빨리 실력을 갖추고 멀리 보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게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당장 눈앞에 댐이 무너져 수십만 톤의 물이 강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배는 강 한복판에 있다. 자칫하면 배가 뒤집힐 판이다. 노련한 선장의 진두지휘가 필요하다. 강을 건너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을이 있는지 잘 안다. 이제 어떻게 하면 급류를 헤치고 그곳으로 갈 건지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달을 보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바로 펴야 하고, 혼탁한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선장의 지혜가 필요하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남은 것은 인내하고 기다리는 일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감이 떨어지기만 기대할 수는 없다. 할 수 있으면 감나무를 흔들고, 안 되면 발로 차기라도 해야 한다. 아무리 높은 분이라도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희망의 시간이 돌아왔으니 꿈을 이루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고, 중력 가속도만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 중력 가속도 편이라 마음이 바쁜 것도 사실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 보통 사람의 습관이다. 소통도 잘하고, 충분히 대화했는데 나중에 서로 딴말하는 경우가 있다. 기능적 듣기는 잘했지만, 인지적 듣기에는 실패한 것이다. 우리는 늘 자신이 인지적 난청에 빠진 것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질타한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느낀다. 각자 잘 듣고, 개혁하고, 준비해야 한다. 메시아가 온다 해도, 그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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