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독일의 사회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는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능이나 본성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생산도구를 장악한 소수에게 잉여생산물이 집중되고, 별난 침팬지 사이에 불평등과 계급이 등장했다. 사유 재산이 출현과 계급사회의 등장이 일부일처제를 만들었다고 엥겔스는 주장했다.
농업혁명의 성공으로 별난 침팬지는 농사를 짓는 정착 생활을 시작됐다. 기술이 발달해 철제 농기구가 만들어진 초기에만 해도 농사 도구는 호미나 괭이처럼 가벼운 것이다. 이때 여성들도 농사에 참여했고, 크게 이바지함으로써 남녀의 지위가 동등했다. 꾸준히 이어진 농기구의 혁신으로 철제 쟁기와 같은 무거운 농기구가 속속 개발됐다. 덕분에 수확물이 크게 증대했고, 잉여생산물이 빠르게 축적되었다.
쟁기 같은 무거운 농기를 사용하고 소와 말을 기르는 농업법이 여성에게 체력적으로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진화한 농경사회에서 여성은 아이를 키우면서 농사에 참여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농기구가 무거워졌고, 그것을 다루기 위험해진 것도 여성이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도록 만들었다. 농업 생산물의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게 된 여성의 지위는 점차 하락했다. 시간이 갈수록 가족이 소유하는 재산이 커졌고, 농경과 목축 등 생산을 담당하는 남성의 지위가 상승했다.
부를 축적한 남성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식'이 누군지 알아야 했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의 엄마를 독점하는 것이다. 드디어 일부일처제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고, 여성은 남편에게 종속된 지위로 바뀌었다. 농업혁명과 농기구 기술혁신이 가져온 생산성 향상, 계급사회의 등장과 남성 중심의 농경 문화의 정착으로 여성의 지위가 하락하는 과정을 엥겔스는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말했다.
별난 침팬지의 결혼은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는 고대 인류는 생존을 위해 다른 공동체와 교환하고 관계를 맺었다고 말한다. 다른 공동체와 교환을 매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생존이 위험했다. 교환 중에 가장 훌륭한 것은 여성의 교환이다. 딸이나 누이가 다른 공동체의 남자와 결혼하면 서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레비스트로스의 설명을 보면, 결혼제도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교환 경제이자 비즈니스 모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완성인 결혼도 사실은 별난 침팬지의 치열한 먹고사는 문제의 성과물이라 볼 수 있다. 생산도구의 발달과 생산성의 향상이 네 것과 내 것을 구분하게 했다. 내 것을 내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마음은 결혼과 상속 등 동물과 다른 인간의 문화를 꽃피우게 했다. 적어도 중세를 거치고 현대에 와서도 가문과 가문이 결합하는 결혼이 많다.
엥겔스는 일부일처제가 인간 본연의 성적 감수성과는 아무 상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이 충격적이긴 하지만, 역사의 과정 속의 결혼제도를 살펴보면 일리가 있다. 다. 또 결혼이 인간 본성에 따른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기초한 훌륭한 교환이라는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이 쓰지만 생각해 볼 만하다. 현대에 와서 사랑의 결합으로 보는 결혼을 이들은 단지 경제적 조건만으로 바라본다는 비판도 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기술이 놀랍게 발달해도 인간은 외롭고 고독하다.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길 원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인간이 덜 외롭고, 덜 고독하던 아득한 원시 시절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종일 식량을 구하느라 애쓰다 보면 고독하고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때는 결혼이 서로의 고독한 영혼을 달래주는 우아한 의식이 아니다. 그저 본능과 종족을 보존하려는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했다.
인류가 진화하고 인지 혁명에 성공하면서 경제적 이유의 결혼이 등장했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친자를 확정하기 위해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를 탄생시켰다. 경제적 교환과 부의 안정적 보존 수단으로도 결혼을 활용했다. 하긴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결혼은 여전히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렇다고 사랑 없는 결혼이라면
그렇다고 현대인의 결혼에 낭만적인 사랑이 빠졌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변하기 마련인 것이 인간 본성이고 보면, 결혼을 오래 지탱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결혼이 서로의 고독한 영혼을 위안해 준다면, 그것이 꼭 남녀의 결합이 전부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꼭 남성과 여성이 결합해 아이를 낳는 것만이 정상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가족이 서로를 위안하고 보듬어주는 존재라면, 그것이 꼭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이 최근 변화하고 있는 결혼과 가족에 관한 담론이다.
인간 본성이라 여겼던 사랑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 두뇌의 화학작용이라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경제 체제의 변화가 결혼제도를 만들었다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결혼제도로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혼이 절대 불변하는 진리가 아니라면 결혼하지 않는 문화가 확산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숭고한 신화가 무너진 현대 사회에서 결혼과 가족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더 건강한 결혼 문화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영원할 것은 사랑을 어떻게 잘 이어갈 것인가? 사랑에 빠진 모든 연인의 고민일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사랑만이 필요하다는 노래의 가사도 틀린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