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치매 2】
처음에는 별일 아니었다.
대부분의 병이 그렇듯, 시작은 늘 대수롭지 않다. 증상도 없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다. 증상이 밖으로 드러날 때는 너무 늦어 손 쓸 수 없다. 평소 잔병치레하는 사람은 자주 병원에 다닌다. 건강을 자신해 병원에 가지 않은 사람보다 병약해 비실비실하는 사람이 큰 병 없이 장수한다.
알츠하이머가 원인이 된 치매는 그것이 표면화되기까지는 잘 알아채지 못한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우리 뇌의 신경세포와 신경세포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synapse)의 구조와 기능에 이상을 유발한다. 특히 전두엽의 의 이상은 단기 기억에 문제를 일으키다가 점차 인지기능을 상실하게 만든다. 그때쯤 되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전선이 끊어져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집안의 가전제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세탁기나 냉장고도 고철 덩어리로 변한다. 한마디로 먹통이자 바보가 된다. 그렇듯이 치매에 걸리면 뇌신경회로가 끊어지고, 시냅스의 변형이 일어난다. 머릿속의 정보가 제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듣고 보고 하는 정보가 전두엽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제대로 판단할 수 없고, 인지할 수 없고, 기억도 사라지는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수진(손예진)을 지켜보는 철수(정우성)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린 영화다. 영화 속 수진은 점점 심해지는 건망증의 원인을 찾으려고 병원을 찾는다. 병원에서 그녀가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렸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얘기 들었어?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데..."라고 말하는 수진의 슬픈 표정에 관객의 눈물샘이 폭발했다. 보는 내내 사람들의 손수건을 눈물로 적시게 만든 영화다. 젊은 치매는 악화하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어느새 수진은 철수를 못 알아본다. 기억할 수 없는 슬픈 이별을 맞이한다.
후배의 일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진짜 가벼운 건망증이었다. 가끔 자동차 키를 집에 두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키를 가지고 오는 일이 어쩌다가 한 번씩 있었다. 처음에는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냐는 가벼운 핀잔을 듣는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회사 일이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하는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본인도 그렇고 주위에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은 흘렀다. 그 사이에 후배의 뇌 전두엽에서는 신경회로가 서서히 소멸하고 있었다. 차 키를 두고 오는 횟수가 조금씩 늘었다. 이번에는 키를 어디 뒀는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출근하다 말고 온 방을 헤집기 일쑤다. 정작 차 키는 엉뚱하게 현관 신발장에서 찾는다. 신발을 넣으면서 무심결에 키를 신발 안에 두었다.
"부장님이 요즘 이상해졌어요"
"우리 부장님. 요즘 좀 이상하신 거 아냐?"
"그러게, 가끔 엉뚱한 말씀을 하셔!!"
"그것도 그렇지만 했던 말을 반복하는데 질리겠어"
"사람이 어딘지 모르게 좀 멍청하신 거 같아"
직원들 사이에 이런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정작 본인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 본인은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먼저 알아차린다. 병도 그렇다. 옆 사람이 혈색이 안 좋다거나 뭔가 이상이 있다는 것을 짐작한다. 후배의 몸에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을 회사에서 알아차렸다.
"김 부장, 자네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닌가?"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을..."
"아니, 요즘 부서에서 자네가 좀 이상하다고 말들이 많아!!"
"네?.... 앞으로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상사가 후배를 불렀다. 몸에 이상이 없는지 물어본다. 후배는 상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기분이 살짝 언짢았지만, 앞으로 더 신경 쓰고 정신 차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내게 진짜 문제가 있는 걸까? 요즘 일이 많아 힘들어서 그럴 거라고 애써 위안했다.
이게 신경을 더 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상황은 더 나빠지고, 조금 전에 자신이 내린 지시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때야 사람들은 분명히 느꼈다. 후배의 기억력과 인지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후배 본인만 모르고 부서 내의 모든 직원이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회사는 이익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자선단체가 아닌 다음에야 직원의 업무 능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회사에서도 더 이상 후배의 상태를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후배에게 빨리 병원 가서 건강에 이상 없다는 진단서를 받아오라는 최후통첩이 날아왔다. 불과 3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