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아들을 포기하라고 하는데..

【우리 안의 치매 10】

by Henry
Pixabay


어머니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 상태가 더 나빠지면 어떻게 하나?"


점점 후배의 상태는 나빠졌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몸을 씻는 것도 싫어한다. 옳고 그름을 인식하기 힘들어진 후배는 일상생활에 혼란을 겪는다. 그러다 보니 후배 어머님의 고통도 날이 갈수록 심하다. 가끔 정신이 돌아올 때면 후배는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그런 그도 어머님께 샤워 도움을 받는 것이 끔찍이도 고통스러운가 보다.


"이제 할 만큼 했으니 포기하세요!!"

"어머님 혼자 감당하기 벅차니 병원에 입원시키세요!!"


주위 사람들은 간병에 지쳐가는 후배 어머니를 보고 말한다. 현대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것이 치매라는 말도 덧붙인다. 오지랖 넓기로야 세계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것이 우리다. 한 사람 두 사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어머님은 힘이 빠진다. 세상은 얼른 후배를 포기하라고 강요한다. 세상이 다 포기해도 엄마는 포기할 수 없다.


한때 영민한 후배를 그의 어머니는 절대 잊을 수 없다. 그의 머리를 붙들어 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후배의 어머니가 곁에서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지자체의 각종 치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후배의 노모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쳐도 후배의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곁에서 보기엔 후배의 상태가 빠른 속도로 나빠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후배 어머는 당신이 열심히 노력하면 상태가 좋아지지 않을까 돌봄에 헌신한다.


후배 어머님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설핏 스친다. 최근 들어 후배 어머님도 힘들다고 말씀하신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하고 흔들리는 표정이었다.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나로서도 불안하다. 그래도 워낙 강경한 어머님의 마음이라 끝까지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숭고하고 위대하다고 말하고 싶다.


해마와 전두엽의 손상이 치명적이다.

서울 아산병원 자료



기억의 생물학적 근원은 우리 뇌의 해마(海馬)다. 해마는 기억한 것을 짧게는 몇 초에서 길어야 이삼일 보관했다가 장기기억 저장소로 옮긴다. 우리가 겪는 중요한 일을 장기기억 장소로 옮기면 한시름 놓는다. 그것은 웬만한 일이 있어도 쉬 잊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중요한 일이나 경험을 장기기억 창고에 보관한다.


우리의 뇌에는 약 1천억 개의 뇌 신경세포(뉴런)가 존재한다. 하나의 뉴런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곳과 정보를 다음 뉴런으로 전달하는 곳에 많은 가지가 달렸다. 이 가지들이 양쪽에서 다른 뉴런과 만난다.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정보는 뉴런을 통과해 다음 뉴런으로 전달된다. 뉴런과 뉴런이 만나는 지점을 시냅스(synapse)라 하고, 우리 뇌에는 약 150조 개 이상의 시냅스가 있다. 뉴런의 건강 상태와 시냅스의 연결 상태가 두뇌 역량을 크게 좌우한다.


치매 환자의 뉴런은 빠르게 소멸한다. 하나의 뉴런이 소멸하면 그것과 연결된 수천 혹은 수만 개의 시냅스도 사라진다. 한마디로 치매 환자의 뇌는 신경세포의 연결 부위가 뭉텅뭉텅 잘려 나간다. 기억을 갈무리하는 해마와 이성과 분별력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뇌세포가 집중적으로 사라진다. 잘려 나간 뇌세포와 함께 풍성한 기억과 경험 그리고 지식도 함께 사라진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연적으로 뇌세포는 소멸한다. 해마의 뇌세포도 소실되고, 그래서 단기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치매 환자는 뇌세포가 소멸하는 정도가 극심하다. 기억도 없어지지만, 전두엽의 뇌세포 소실로 사리 분별할 능력도 없어진다. 전두엽과 해마의 뇌세포와 시냅스의 손상은 치매 환자가 가지는 치명적인 문제다.


희망을 현실로 바꾸려면

현대 뇌과학이 밝힌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는 바로 뇌의 후천적 발전 가능성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결정된 뇌 구조는 평생 변하지 않는다고 알았다. 그러나 '뇌 가소성(腦可塑性, neuroplasticity) 원리'에 따르면, 뇌세포 일부가 죽더라도 재활 치료나 뇌 훈련을 통해 다른 뇌세포가 그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 특정 뇌세포가 손상되더라도 인접한 뇌세포가 일을 대신 준다는 뜻이다.


우리 두뇌는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하고 발전한다. 뇌세포(뉴런)는 한 번 소멸하면 재생할 수 없지만, 다행히 뉴런의 연결점인 시냅스는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 더 희망적인 사실은 단기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의 뉴런은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곳의 뉴런은 한번 소멸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해마의 뉴런만 유일하게 그렇지 않다. 이거야말로 현대 뇌과학의 위대한 발견이다.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후배 아버지가 준 억압이 머리를 헝클어 놓았을 것이다. 과도한 간섭과 잔소리는 스트레스 축을 뒤흔들었다. 오랫동안 스트레스 물질이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스트레스 물질은 혈관을 따라 후배의 전전두엽과 해마를 공격했다. 끝내 버티지 못한 뇌세포와 시냅스가 사라지는 불운이 후배를 덮쳤다.


현대 뇌과학의 발달은 작은 희망을 보여준다. 이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보고 관리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의 전두엽과 해마가 망가지지 않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한없는 모성의 희생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두 아들을 포기하라고 말하지만, 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후배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희망을 선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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