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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의 여행자 Nov 13. 2024

05 빼앗긴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다

 날씨가 너무 좋다. 햇빛이 따스하게 집안을 비추고 창너머 강은 바람이 부는지 잔물결이 일면서 반짝반짝 거린다. 밖에 나와봐, 날씨가 정말 좋아, 나를 부르며 손짓하고 있다. 저 한강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축구하는 이들이 보인다. 그래, 나가볼까? 집을 나서면 이 낯선 곳에서의 우울함을 조금은 내던지고 올 수 있으리라.

 불현듯 1층에 세워둔 자전거가 생각났다. 아들 자전거다. 아이가 커 가면서 기존에 타던 자전거는 동생에게 물려주고 새로 큰맘 먹고 샀던 자전거 TREK. 무려 MTB자전거다. 그래, 한번 나가보자 하고는 선글라스만 달랑 챙기고 자전거 보관소로 갔다.

 잠겨져 있는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고 꺼내는데도 낑낑, 무거워. MTB자전거라 바퀴도 크고 무겁다(적어도 내게는). 타고 갈 수 있을까. 낯선 길이기도 하고. 걱정이 태산이지만 모처럼 나온 김에 포기하기에는 늦었다. 아까 거실에서 보던 윤슬이 아른아른 거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그래, 까짓것.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자전거의 기어. 무려 기어가 9단까지 있기 때문에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잘 조절하며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자전거는 마흔이 되어서야 타는 법을 배웠다. 어린 시절 운동에는 소질이 없다며 쉽게 포기했었다. 불안정적이며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것 같은 두 발 자전거는(네발 자전거라면 모를까) 내게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 아이들이 두 발 자전거를 이틀 만에 습득하고 타는 모습을 기특하게 여기던 때였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축구를 하겠다며 공을 차기 시작했고 나는 덩그러니 남겨진 자전거를 바라보며, 한번 타 볼까,라는 막연한 용기가 생겼다.

 "여보, 나 자전거 타 볼게. 뒤에서 한번 잡아줘."

 불쑥 내뱉은 말에 남편은 짐짓 놀란 눈치다. 그래도 늘 타봐, 가르쳐 줄게, 했던 남편이라 선뜻 나선다.

 "오, 그래. 좋은 생각이다. 한 번 타봐. 탈 수 있을걸."

 "잘 잡아줘."

 발이 땅에 떨어지는 게 무섭고, 넘어질까 봐 두려운 나머지 남편에게 두 눈을 부릅뜨고 신신당부한다.

 "걱정 마. 핸들을 가운데로만 잘 조정해. 발은 계속 굴리고."

 끼익. 끼익. 끼익. 넘어지고. 멈춰 서고. 기우뚱하고.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포기할 법도 한 고비가 왔는데도 왠지 탈 수 있을 것 같은 이 기분. 계속해서 발을 굴리자, 넘어져도 괜찮다.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어, 어, 어. 간다. 오호라. 이렇게 타는 거구나. 놀랍게도 타는 방법을 익혔다. 아하, 탈 수 있겠다. 1시간쯤 지났을까. 결국  50m쯤, 홀로 자전거를 탔다.


 홀로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란. 누군가 손힘의 묵직함이 사라지고 가볍게 자전거가 날기 시작한다. 마음도 훨훨. 심장도 두근두근. 여태까지 왜 이 기분을 가지지 못했나, 아쉬울 지경이다. 세상에. 자전거를 못 타는 유일한 엄마가 되어서 자극제가 되었을까. 생각보다 쉽사리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남편도 아이들도 엄마 최고라며, 박수를 쳐준다. 그럼 그럼, 엄마도 이제 자전거 탈 수 있어. 너희들이 자전거를 탈 때 이제 두 발로 쫓아가지 않고 두 바퀴로 함께 갈 거야. 

 그 이후로 종종 가족끼리 혹은 혼자서 자전거를 타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산책 겸 운동삼아. 물론, 많이 부딪치고 넘어지기도 하며 다리에 멍이 드는 건 일쑤. 좁은 길은 도저히 지나가기가 무서워서 결국 자전거를 질질 끌고 다니기도 했다.


▲ 아들의 TREK 자전거

 

 어디로 갈까, 그래 오늘은 망원한강공원으로 가보기로 한다. 망원한강공원을 걸어서는 가봤으니 그 길로 쭈욱- 자전거를 타면 되겠다. 자전거로는 처음이니 짧게 가 보자. 굳게 마음을 먹는다.

 대교를 건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등산 가방을 멘 아저씨 두 분이 오신다. 어디선가 출발하여 한강공원에 운동 오신 것처럼 보였다. 앞에 서 있던 자전거를 힐긋 보더니,

 "어디까지 가요?"

 라고 묻는다.

 "아, 저 망원한강공원이요."

 "하하, 거기까지는 가깝잖아요."

 "자전거가 무거워서요. 아직 초보라."

 "그거랑 무슨 상관인가. 인천 가봤어요?"

 "아니요."

 아저씨들은 자전거 초보이며 선글라스 낀 여자가 MTB 자전거를 끌고 있는 게 이상한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마자 쌩 걸어가신다. 그래요. 이 자전거는 아들 거예요. 내게는 너무 무겁고도 아직 미숙해서 가까운 길도 조심조심 겨우 간다고요. 인천은 커녕 이 동네 밖에 안 타봤다고요. 가는 아저씨들을 붙잡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자전거를 엘리베이터에서 겨우 꺼낸 후 아저씨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침을 꿀꺽 삼킬 뿐이다.


 긴장하지 마. 괜찮아. 천천히 가자. 괜히 선글라스를 고쳐 써본다. 두 손은 핸들을 꽉 쥐고 발은 페달을 힘차게 밟아본다. 자전거 도로에 들어서자마자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자전거, 옆에서 달리는 사람들. 하아, 모든 것이 혼잡해 보이고 눈앞은 빙글빙글 도는 듯하였으며 등에서는 벌써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넘어질 것 같은 정신줄을 붙잡으며 자꾸 되뇐다.


 "잠시만요. 띠링띠링"

 "쌔애애애애앵"

 깜짝이야. 사이클 타시는 분들이 쌩 하고 지나간다. 족히 열 명쯤 되었을까. 한 줄로 줄줄이. 빠르게. 번개처럼 달려간다. 화들짝 놀라 속도를 줄이며 오른쪽 길로 바싹 붙는다. 심장이 덜컹. 부딪칠까 봐 조마조마.

 저들은 익히 보기만 했던 자전거 고수분들. 공항에서 자전거를 끌고 헬멧을 쓴 채 무리를 지어 티켓팅하던 분들이다. 그들이구나. 이미 풍기는 향기가 다르다. 그저 청바지, 티셔츠, 남방 하나 걸치고 햇살에 생길 미간 주름 막고자 선글라스 낀 게 전부라면. 그들은 신발부터 슈트, 헬멧, 고글. 그 어느 것 하나 낡은 것 없이 반짝반짝 빛난다. 아주 바퀴 굴러가는 소리부터 고급스럽다. 이게 육지 라이딩의 모습인가. 자전거를 타려면 저렇게 타야 하나. 장비부터 갖춰야 잘 달릴 텐가. 선글라스를 끼고 청바지를 입은 초보자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는다. 자꾸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들이 맹렬하게 달려가는 모습에 에헤, 괜히 나왔나. 싶다.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고 가는데 어라, 자전거가 왜 이리 미끄러지지. 스케이트가 아닌데. 바퀴가 감을 못 찾는다. 보니 기어가 9단이다. 발이 헛돌기 시작한다. 어어, 넘어질 것 같다. 기어가 너무 높아서 그런가. 낮춰보자. 조심스레 기어를 8단. 다시 7단으로 바꿔주니 바퀴가 묵직해지면서 타볼 만하다. 뭐지. 기어 9단이 필요 없단 말인가.

 신기하다. 무릎에 힘이 없기도 한 나였지만, 제주에서는 기어를 몇 번씩 바꾸면서 탔었다. 9단으로 타다가 다시 6단으로 바꾸고 다시 9단으로 타고. 그런데 여기서는 바퀴가 헛돌다니.


 저 멀리서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녹슬고 낡아빠진 자전거를 삐걱삐걱, 타고 오신다. 할아버지께서 어떻게 자전거를 타시지, 저런 자전거로. 무릎이 아프시지 않으신가, 다리는 괜찮으신가. 엉덩이도 아프실 것 같은데, 힘드실 텐데. 이런 우려 와중에 내 앞을 할머니께서 덜컹거리며 지나가신다.

  신선하다. 새로운 광경이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께서 고물상에나 있을 법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라니. 아, 순간 깨달았다. 여기는 평지구나. 자전거 도로가 평지여서 쉽게 타는구나. 기어가 필요 없구나. 두꺼운 바퀴와 9단 기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


 이것이야말로 한강공원의 매력. 탑동(제주에서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넓은 광장)처럼 여의도광장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봤었는데 비단 거기뿐만이 아니구나. 세상에나.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다양한 자전거, 다양한 사람들이 보인다. 초록색의 따릉이(서울자전거 무인대여시스템), 비까 번쩍한 사이클, 녹이 핀 오래된 자전거, 누워서 타는 자전거까지. 비단 그뿐이랴. 핸들에 우산 꽂고 햇빛 가리며 달리는 아저씨, 장 보고 가는 듯한 짐을 잔뜩 싣고 가는 할머니, 트로트 노래를 틀어 왕왕 거리며 가는 할아버지, 학교 가는지 바구니에 가방을 넣고 긴치마를 펄럭이며 가는 아가씨. 이 모든 광경의 매력이 철철 넘친다. 그들의 여유, 느긋함, 한적함.


▲ (좌, 우) 난지한강공원의 가을

 

 자전거를 타는 것이 문화라면 문화랄까. 자전거는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역 앞에는 몇십대의 자전거가 주차된 걸 흔히 볼 수 있고 어느 골목을 가도 자전거도로는 따로 정비되어 있다. 또한 즐겨 찾는 한강공원은 일단 접근성이 좋다. 서울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한강. 한강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공원. 이런 한강공원에서 많은 이들이. 그저 벤치에 앉든, 돗자리에 앉든, 캠핑의자에 앉든지 간에. 라면을 먹든, 자전거를 타든, 러닝을 하든, 술을 마시든지 간에. 자유롭고 한적하고 편안하게 여유를 즐긴다. 아.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서울의 위아래로 길게 뻗은 한강공원으로 인천에서 강원도까지 쭉 갈 수 있을 것 같다.(실제 그런가.) 자전거로 이렇게 각 동네의 풍경과 여유를 누릴 수 있다니. 아니, 이미 이들이 누리고 있었다니. 육지 사람들이 괜히 부럽고 시샘이 난다. 우리가 중산간 5.16 도로를 파고 있었을 때 이들은 이미 여기에서 자전거를 타며 문화를 즐기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제주 사람이여, 육지를 부러워하는가. 그렇다. 바다보다는 작지만, 어느 위치에서는 물고기도 잡을 수 있고 어느 지점에서는 드러누워 쉴 수 있는. 쫙쫙 펴진 드넓은 공원의 평지 자전거도로라니. 이들은 이 행복을 알 까나.

 시어머니께서 서울에 올라오셔서 한강공원을 보실 때마다, 아이고 서울 사람들은 한강공원 없었으면 숨이 탁 막혀서 어찌 살아가겠냐, 탄식 섞인 말씀을 하셨는데 어쩌면 이 한강이 험난하고 복잡한 도시에서 육지 사람들이 버티기 위한 유일한 숨구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덧. 시어머님 얘기가 나와서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시부모님께서 서울로 올라오셨을 때 온 가족이 함께 여의도한강공원에 나들이 간 적이 있다. 나도 이제 자전거 탈 수 있다, 자신감 뿜뿜 하여 온 가족이 각자 한 대씩 자전거를 대여하고 국회의사당까지 한강공원을 달렸다. 온 가족이 함께 한강을 달리는 기분이란. 시어머님께서는 언제 자전거 배웠냐, 잘했다, 서울에서 자전거 같이 타니 정말 좋다, 전기자전거 아니면 못 타는데 여기서는 무릎도 안 아프고 자전거 타기 좋구나,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이들을 앞서 보내고 천천히 망원한강공원까지 도착했다. 장시간의(나만의 시간으로서) 라이딩으로 엉덩이는 얼얼하고 다리도 후들후들거린다. 겨우 도착했구나. 다시 집까지 어떻게 가지. 막막한 현실 앞에 아까 기우뚱하며 벽에 부딪혀 멍든 오른쪽 팔을 애 만지며 별다방에서 구매한 아이스 라떼를 벌컥벌컥 들이켤 뿐이었다.

 결국 다시 심기일전하여 집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버치다. 지치다. 빨리 씻고 아이들 하교시간까지 누워있어야겠다.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따스한 햇살아래 푸르름을 간직한 자전거도로를 달린 건 과한 행복이었다. 자전거를 언제든지 쉽게 탈 수 있다,라는 자그마한 자신감이랄까. 더 이상 더 더워지거나 더 추워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 비록 돌길에서 타는 MTB를 가졌지만(이것 또한 아들 자전거), 그것을 기어코 끌고 다리미로 잘 핀듯한 자전거도로를 달리며 그들처럼 여유를 만끽하리라.

 지금, 거실 창 너머로 햇빛은 반짝거리고 구름은 꼈으며 강은 그저 잠잠히 흐른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 있다. 그들이 맡고 있는 강 내음이 나는 듯. 또 타러 가볼까.







유일한 숨구멍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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