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을 보는 삶, 그 어떤 장소에도 얽매이지 않고 몸이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퇴사를 했다.
우리 동네 노을
그 당시는 온라인 판매가 유행하던 때였다. 나도 그 흐름에 탑승했고, 운이 좋게 내가 선정한 상품이 희소가치가 있어 처음부터 약간의 당근도 맛보았다. 마침 남편이 직장 생활을 힘들어하길래 나와 같이 물건을 팔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물건 파는 일이 참 재밌었는데 어느 순간 그 마저도 재미가 없어졌다. 남편과 서로 사업 방향이 달라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늘 불안해했다. 이런 내 마음을 반영하듯 판매실적은 들쭉날쭉했다.
"아, 자영업이 이렇게 힘든 거였구나"
간절히 바라던 저녁노을을 언제든 볼 수 있는 프리랜서의 삶을 살았지만 나는 시간이 있어도 마음 놓고 노을을 즐기지 못했다. 매일 걱정거리를 만들어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동안 모아둔 돈 마저 다 까먹을 것 같다는 불안을 만들어 새로운 일도 시작했다.
몇 년 동안 이런 생활을 했다. 나를 믿지 못하니 남편도 믿지 못했다. 항상 불안 속에 나를 밀어 넣었다.이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렸다. 운동도 전혀 하지 않고 책상에 하루종일 앉아서 일만 하니 허리 디스크가 생겼다. 허리가 너무 아픈데도 일을 계속했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만 살았다. 돈이 많아야만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돈이 적든 크든 돈을 벌어도 불행한 나를 나는 더 이상 통제하기 힘들었다. 내가 나한테 져버렸다.
스스로 만든 불행한 삶을 살던 내게 얼핏 '갈비구이'를 희망이라 우기던 때가 생각났다. 불안을 없애고 싶어 가족과 행복하게 먹은 '가리비 구이' 사진을 한 장을 뽑아 코팅지까지 붙여 벽에 붙여놓았다.일하다 힘들 때면 그 사진을 보며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을 소환하려고 노력했다.매일 불안한 내 삶의 한 줄기 빛은 "가리비 구이"를 먹던 그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 한 장이었다.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준 가리비 구이 사진_왼쪽 아래
이 사진을 보면 아무 걱정 없이 마음 놓고 가리비구이를 먹던 행복한 날이 떠올랐다. 그때만큼은 불안하지 않고 힘이 났다. 이를 깨닫고 어쩌다 남편과 맛있는 걸 먹거나 좋은 곳에 가면 사진을 한 장씩 뽑아두고 그때의 행복한 시간을 붙잡아 보는 습관이 생겼다.
행복한 추억을 담은 사진을 볼 때마다 사진 속의 행복한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무한 공짜 행복이었다. 내가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이때 깨달았다. 이 경험은 훗날 차동엽 신부님의 책 '바보 Zone'에서 읽은 '작은 것을 크게 보는 연습'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작은 것을 크게 보라.
바보는 단순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사소한 일을 아주 크게 본다. 이는 사물을 현미경의 눈으로 확대, 관찰할 줄 아는 천재성이다. 이러한 발상은 일에 있어서는 높은 충실성 내지 완성도로 연결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뭉클뭉클한 감동으로 이어진다.
추리작가 코난 도일은 이렇게 말했다.
'가장 좋은 것은 조금씩 찾아온다. 작은 구멍으로도 햇빛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커다란 바위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건 오히려 작은 조약돌 같은 것이다. 오랫동안 내 좌우명이 되어온 말은 '작은 일일수록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라는 것이다."
_바보 Zone, 차동엽 지음
가리비 구이 사진을 보면 언젠가 또 이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덕분에 마음에 안정이 조금씩 찾아왔다. 하지만 내 몸은 너무 망가져 있었다. 허리디스크가 있어도 계속 일을 했던 터라 몸 상태가 심각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그런다.
'허리나이가 60대예요'
'예?'
나는 아파서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남편은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혼자 물건을 팔던 남편은 자신의 그릇을 알았다며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이후 남편은 그 이후로 한 번도 한눈팔지 않고 미친 듯이 직장 생활에 전념했다. 이후 나는 건강과 이런저런 여러 이유들이 몰아닥쳐 반강제로 일을 쉬게 되었다.
갑자기 일을 쉬게 되니 처음엔 쉬는 법을 몰라 세 달 정도는 밤만 되면 폭식을 했다. 어떤 날은 속이 좀 쓰려서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그때 내가 위염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됐다. 불안해서 다른 곳도 검사를 했는데 자궁과 간에는 물혹이 있었다. 몸을 갈아 열심히 산 대가로 나는 건강을 잃었다. 그동안번 돈은 내 건강을 회복하는 데 많이 들어갔다.
'좋은 날은 개뿔'
당시에는 허리나이가 60대라는 말과 자궁과 간에 물혹이 있다는 말에 절망 속에 살았다. 어디에 하소연하기도 그랬다. 가족 모두 나를 걱정하니까 힘든 점을 말하면 나만 더 스트레스받을 게 뻔했다. 그때 누워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허리가 좀 괜찮으면 블로그에 글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서 귀인을 만났고 그를 따라 나도 꾸준히 글을 썼다. 처음으로 큰 목표 없이 무언가를 해봤다. 1년 정도 꾸준히 글을 쓰고 나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됐다.
'나는 늘 좋은 날을 미루며 살았다. 매일 행복을 미루며 살다 보니 바라던 좋은 날이 와도 내가 좋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늘 큰 성공만 바라고 작은 성공이나 작은 행복은 늘 무시하며 살았다. 그런데 나는 '가리비구이' 사진 한 장에 금방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꿈꾸고 바라는 좋은 날이 빨리 오면 좋겠지만 지금 당장 바라는 날이 당장 오지 않더나도 나는 지금 행복할 수 있는 배짱을 연습해야 한다. 더 이상 행복을 미루지 말고 지금 이 고통 속에서도 감사한 점 한 가지는 꼭 찾자. 없으면 차 신부님 말씀대로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기자!!'
이건 내가 온몸이 아파가며 깨달은 지혜라서 지금도 마음속 깊이 문신처럼 배어있다.
'부자가 되면 행복할 거야
월 천만 원을 벌면 행복할 거야
10억을 모으면 행복할 거야
디지털 노마드가 되면 행복할 거야
대장 아파트로 이사 가면 행복할 거야'
가장 불행했을 때 내가 하던 생각이다. 늘 커다란 성공만을 바라며 살았다. 뭐든 벼락치기 시험을 치르듯 한 번에 성공의 길로 가고 싶었다. 성공하기 전에는 부자가 되기 전에는 절대 지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존심이 세서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동정하고 싶지 않았다. 성공을 위해 나에게 늘 냉정하고 가혹했다.
매번 좋은 날을 미루니 행복은 절대 내게 오지 않았다. 행복은 지금 누릴 수 있어야 행복이었다.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 우기라는 차동엽 신부님의 정신은 힘든 상황에서도 작은 빛을 크게 보라는 말씀이었다.
남편과 사업하던 시기는 한때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 남편과 매일 함께할 수 있었고, 우린 싸구려 떡볶이 하나에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곤 했다. 크리스마스엔 남편이 나를 위해 값싼 전구를 집에 걸어주었다. 이를 보며 우린 자주 행복해했다. 지금 남편은 회사일로 너무 바빠졌다. 내 옆에 없는 날도 많아 외로울 때도 많지만 이 외로움 덕분에 글에 더 집중할 수 있어 감사하기도 하다.
오늘도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날이다! 언제든 저녁노을을 볼 수 있고,언제든 가리비 구이를 먹을 수 있도록 내 냉장고에는 손질된 국내산 냉동 가리비와 모차렐라 치즈가 나를 상시 대기하고 있다. 이거면 나는 내가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