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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kyjodi Feb 25. 2024

역할 전도의 갈등

노부모가 성인 자녀의 돌봄을 받을 때


지난주에는 내가 근무하는 시니어 하우징 주민의 따님과 장시간 통화를 했다. 이 분은 구순의 어머니를 간병 중이신데 어머니가 매사에 고집이 너무 세셔서 돌봐드리기 힘들다며 고충을 토로하셨다. 본인도 이제 60대 중반이라 몸이 안 좋은데 어머니가 지나치게 깔끔한 데다 당신의 방식대로 매사를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라 힘들다고 하신다. 


한편 그분의 어머님의 하소연도 들어보자. 딸이 와서 도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본인의 생활 패턴을 바꾸어 놓으려고 하는 게 성가시고 기분이 상한다고 털어놓으셨다. 내가 구십 되도록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잘 지내왔는데 딸이 잔소리하는 것이 듣기 싫다고 하신다. 부엌 가서 들으면 며느리 말이 맞고, 안방 가서 들으면 시어머니 말이 맞다고, 이런 경우는 참 딱히 해결이 없는 것만 같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매끄럽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십 년 정도 필드에서 노년층과 일하는 동안, 역할 전도 (Role Reversal) 로 인한 갈등은 자주 보아왔다. 늘 도움을 주는 입장이었던 부모가 노년기에 접어들며 자식에게 일상적 도움을 받게 되면서 역할이 바뀌는 변화를 겪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의 노부모들은 도움을 받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일상의 자유가 사라지는 것에 스트레스를 겪기도 한다.


특히 개인의 독립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미국 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미국인들의 경우에는 도움을 받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완강히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 예로, 식료품을 사다 주는 아들에게 접근 금지(restraing order)  법원에 요청하려던 주민도 있었다. 내가 중재에 나서면서 흐지부지 되긴 했지만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 그 정도로 저항감을 갖는 분들이 있다. 효 사상이 있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자녀의 도움을 받는 것에 저항이 덜한 편이지만, 반대로 기대치가 높아서 그로 인한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노부모가 돌봄을 받게 될 때 갈등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성인 자녀의 경우에는 경제 활동과 자녀 양육을 하는 중에 부모를 돕게 되므로 '돌봄'을 제공하기가 여의치가 않다. 여러 가지를 해내야 하는 소위 '샌드위치 세대(Sandwich generation)'으로서의 고충이 크다. 부모를 돌보는 자녀들은 직장의 휴가시간(Paid Time off)을 자신을 위해서는 쓰지 못하고 늘 아이들이나 부모를 위해 쓴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에 더해 부모와 의견의 불일치, 권위적인 태도 등은 또 다른 어려움이 된다. 


부모와의 관계성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어릴 때 부모에게로 받은 상처로 인해 돌봄을 거부하거나 간병 중에 학대가 발생하기도 한다. 노부모의 간병 자체가 많은 시간과 노동을 들여야 하는 일인 만큼 자식 입장에서도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쉽지가 않기에, 노부모들이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은 가족 모두에게 위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해와 존중 


내가 역할 전도로 인한 갈등으로 성인 자녀들이 상담을 청하시면 나는 기본적으로 부모님 세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 두 가지를 말씀드린다. 말은 쉽지만 일상적 실천이 쉽지는 않은 것은 안다. 하지만 구순이 다되신 분들은 그 시간만큼 흘러온 습관과 마음의 회로를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자녀를 포함한 외부인들이 억지로 바꾸려고 하면 때로는 큰 불편과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하여 가능한 한 안전에 위해가 되거나 치료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부모님께 맞춰드릴 것을 권한다. 낙상의 위험이 생길 정도가 아니라면 노부모님들의 방식대로 정리해 둔 우편물이나 책, 가구 등을 그대로 두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 그 물건들이 제삼자의 눈에는 심난함을 조장할지라도 그분들 나름의 질서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용품이나 화초, 옷가지 등의 소지품을 버릴 때에는 동의 하에 처분해야 갈등을 막을 수 있다. 일례로, 주민 한분은 딸이 와서  물건 정리를 돕는 과정에서 어머님의 소지품을 동의 없이 버리면서 모녀간에 큰 다툼이 난 적이 있었다. 


개인의 취향은 80,90이 되면 불변이 되기도 하므로 자식들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분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찻물을 끓이며 딸은 찻물을 순간온수기에 끓이시라고 하고, 어머니는 미리 끓여서 보온병에 넣어두겠다고 하시면서 싸움이 나신 걸 본 적이 있다. 나는 어머니 하시던 대로 하도록 권해 드렸다. 안전에 위해가 되지 않고, 크게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굳이 노부모의 취향을 바꿔놓으려고 에너지 소모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치료나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주민 한 분이 병원에 있기 싫다고, 의사의 권고를 따르지 않고 무단으로 집에 오신 경우가 있었다. 미국의 경우, 이는 AMA (Against Medical Advice)라고 하여 보험 회사에 의료비 지급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환자 개인의 의사 존중도 중요하지만, 보험 처리와 향후 치료 및 간병 계획 등이 함께 엮여있기 때문에 지혜롭게 절충해야 좋을듯하다. 



생로병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노인들과 대화를 해보면 노화로 인해 건강 이상이 생기고, 몸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에 삶의 의욕도 떨어지고 수치심 마저 느끼신다고 하신다. 한평생 살아오면서 늘 해오던 일상적 일들을 더 이상 스스로 해낼 수 없다는 것에 비참함을 느끼시는 듯하다. 중증도의 노환을 겪으시는 분들은 '이런 채로 살아서 무엇 하나' 하시는 분들도 있다. 

영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는 역할전도 갈등의 클래식을 보여준다

어쩌면 세상의 가치는 성공에만 초점을 맞춰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은 뭔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으면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게 만드는 듯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만물이 생로병사 하는 것인데, 우리의 신체 기능도 마찬가지 아닐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연약한 육신이 되는 것은 내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며, 그 자체가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주민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 나는 자녀들이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서 '사랑과 관심에서 오는 것이니 

좋게 받아들이시면 마음이 편하실 것'이라고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한다. "자제분들이 최선을 다하여 모시고 있으니 얼마나 믿음직하시겠어요"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신다. 대개의 노부모님들은 자식을 신뢰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으시기에 약간의 불만은 잊고 넘어가게 된다. 


한편 도와주러 오는 자녀들에게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도 작지만 중요한 일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격식을 잊기 쉽지만 그럴수록 에티켓이 필요하다. 가족들 간에도 표현을 잘하시는 분들이 대체로 관계성도 좋고 큰 문제없이 잘 지내신다. 



돌봄에 있어서 휴식의 중요성


성인자녀들의 경우 생업, 육아, 노부모 돌봄 등 세 가지를 겸하는 경우가 많아서 과로하기 쉬운 환경이다. 이럴 때는 가능한 한, 분담해서 처리하는 시스템 구축을 권한다. 형제자매가 있다면 일을 나누어 분담을 하고, 캘리포니아의 경우 MediCal 환자라면 간병 프로그램(In Home Supportive Services) 등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롱텀케어 보험이 있다면 간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중증 환자를 돌볼 경우, 거주 지역에 따라 간병인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휴식기 동안 대체할 간병인을 무료로 보내주는 프로그램 (Caregiver Respite program) 등이 있으니 이용하시면 좋겠다. 




노년이 되어 돌봄을 받게 되는 일은 많은 이들이 겪는 일이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노화와 더불어 우리는 몸의 기능 저하와 각종 장애를 겪게 된다. 만물이 생로병사 하듯 우리도 그 순리를 따라가게 된다. 늘 도움을 주던 입장이었던 부모가 노쇠로 인해 일상적인 도움을 자녀로부터 받게 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녀들과 좋은 팀워크를 이루어 

모두 노년기를 최대한 잘 보내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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