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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kyjodi Mar 10. 2024

운전과 이별할 때

시니어 안전 운전


지난해 늦가을이었다. 보이스메일에 내게 꼭 알려야 할 일이 있다는 Mr P의 메시지가 있었다. 전화를 드리니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셔서 사무실로 오시라고 했다. 굳은 표정의 Mr P는 말문을 여셨다.


“지난밤에 큰일 날 뻔했어요. 옆집 사시는 Mrs L이 저녁 8시 넘어서 나한테 전화를 하신 거예요. 아니, 운전하고 나갔는데 길을 잃었대요. 어딘지 전혀 모르고. 그래서 내가 길에 주차하고 스토어라도 들어가서 직원을 바꿔달라고 했지.  위치도 겨우 확인해서 모셔왔다고. 프리웨이 타고 한 시간 넘게 운전해서 클레어몬트까지 갔어요. 이 일은 사무실에 꼭 알려줘야 될 것 같아서 연락을 했어요.” 

출처: freepik.com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몇 달 전에도 롱비치 근처에서 길을 잃으신 Mrs L은 집에 가는 길을 물으러 Mr. P에게 전화하신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북쪽 방향 프리웨이 110번만 타면 된다는 지시를 따라 용케 집을 찾아오셨다고 한다. Mr P에게 알려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나는 적절한 조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80대 후반의 Mrs L은 최근 여섯 달 동안 교통 위반, 주차 위반 티켓도 여러 번 받으시고 부주의로 교통사고도 두 번 내신 터였다. 기억력이 현저히 나빠지셔서 가족 모두 Mrs L의 운전에 관해 우려하고 있었다. 


<고령자를 위한 운전 안전, Lakelyn Eichenberger. PhD > 교육 자료 중  page 11.


그러나 Mrs L은 내가 죽으면 죽지, 운전은 못 그만둔다는 입장.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자차 운전을 못하게 될 때의 불편함을 아시는 데다 자녀들의 염려를 불필요한 참견 정도로 여긴다고 하셨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Mrs L의 가족에게 이 일을 알렸다. 


상황을 말씀드린 후 나는 해결방법에 관해 의논했다. 나는 Mrs L의 주치의에게 운전 재시험 요청서(Request for Driver Re-examination)에  소견서를 첨부해  차량관리국(DMV)에 보낼 것을 제안했다. 가족들은 대찬성이셨다.  Mrs L와 자녀들이 운전 문제로 갑론을박하며 감정을 상하느니 차량관리국(DMV)의 결정에 맡겨보자는 것이었다.  때맞춰 차도 수리소에 보내고 주치의의 협조에 힘입어 요청서를 접수했다.  이후 4개월 만에 운전면허 취소 통지서가 발부되었다. Mrs L는 고민 끝에 항소를 포기하시고 40년간 잡았던 운전대에 이별을 고하셨다.


대중교통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 미국에서 운전을 못한다는 것은 이동의 자유를 잃는 것과 같다. 잠깐의 외출도 어려우실 듯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Mrs L은  운전을 그만두신 이후, 활력을 잃으신 듯해  따님과 나는 여러모로 애를 썼다.


나는 먼저, 액세스 패러트랜짓(Access Paratransit)이라는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라이드 서비스와  시티 라이드 (CityRide)라는 택시이용 보조금 프로그램 신청을 해드렸다. 액세스 패러트랜짓은 합승제로 운영되어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환승의 불편 없이 목적지로 갈 수 있다. 시티 라이드는 가맹 택시 이용 시 1회당 $12달러씩 보조해 준다. 


이외에도  Mrs L 은 라이드를 해 줄 수 있는 간병인을 원하셔서 패스크 (PASC: Personal Assistance Services Counsel)라는 기관에 간병인 추천 요청서 접수를 도와드렸다. 가족들은 교우들 중에서 매주 일요일과 교회 행사 때 라이드 봉사해 주실 분을 섭외해서 Mrs L의 교회 출석을 도왔다. Mrs L은 병원 진료, 가벼운 외출 등에는 새로 오신 간병인의 도움을 받거나 일반 택시나 우버를 이용하시기도 하고 가족, 교우들도 라이드를 해주신다고 한다. 


자동차 충돌 사고 시 노년층은 젊은이들에 비해 큰 부상을 입게 될 가능성이 1.5배,  사망 가능성은 3.2배가 높다는 연구가 있다. 교통 법규 위반, 충돌  사고가 잦거나 교통 신호를 잘 감지하지 못하고 차를 멈추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안전 운전 지속 여부에 관해  면밀히 재고해 보는 것이 좋다. 


미국 내 고령 운전 연구자들은 이럴 경우 작업치료사 (Occupational therapist) 에게 운전 시 리스크에 관한 상담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주치의 추천으로 안전 운전에 대해 전문가의 실제적인 조언을 받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후 물리치료 등으로 신체 활동 범위를 늘려 안전 운전을 지속하게 되기도 하고, 리스크 평가 이후 운전을 접는 분들도 계시다고 한다. 전문가의 종합적 평가와 소견은 운전 지속 여부에 관한 결정에 객관적 지표를 제공하기에 도움이 되겠다.


미국에서는 운전가능 여부가 생활 반경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므로, 그만두게 되면 어려움이 많다. 노년학자(gerontologist)들은 바로 이 점 때문에 가능하다면 노년에는 대중교통이 편리한 도심으로 이사할 것을 권한다. 코비드 이후 식료품 및 음식 배달 문화가 정착된 데다 가정 방문 의료 서비스도 있으니 이 역시 도움이 될 터. 공공 라이드 서비스 및 택시 보조금 프로그램 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 건강보험사에서도 병원 진료, 검사 등에 라이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별 시니어센터 역시 교통서비스를 운용하기도 하니 적극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코러스(Clearinghouse for Older Road User Safety: roadsafeseniors.org) 웹사이트에 미국 각지의 시니어 운전 정보가 총망라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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