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들로 Jun 04. 2018

내일을 재촉 않는 포근한 오늘
<리틀 포레스트>

혼영일년 6月 : 혼자서 숲에서 힐링하기 1

새벽 수영반 갈 때면 보는 풍경이다.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인데 커피전문점 앞에는 항상 줄이 늘어서 있다.  

모두가 하나같이 피곤한 얼굴이다. 직장인과 대학생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1500원짜리 커피 한잔을 들고는 저마다의 목적지로 사라진다. 그리고 다음날 똑같은 얼굴로 나타난다.  

카페인 한 모금에 취해 깨어나야만 각자의 레이스로 달려갈 수 있는 반복된 일상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한 내일에 생존하려면, 오늘도 열심히 달려야 한다.  



<리틀 포레스트>는 카페인에 취하지 말고 그저 쉬라고 권하는 영화다.  

임용고시 실패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도시 생활에 지친 혜원(김태리)이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의 사계절 속에서 허기를 채운다. 대기업을 퇴사하고 농사꾼이 된 재하(류준열)와 평생 고향을 떠난 적 없는 은숙(진기주)이 혜원의 벗이다. 젊은 여성이 농촌에서 사계절 동안 휴식을 취하는 단순한 줄거리인데 보고 있으면 절로 힐링된다. <리틀 포레스트> 제목 그대로 숲의 마력 덕분이다. 임순례 감독은 사계절을 담기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3주씩 1년에 걸쳐 촬영했다고 한다.  


“도시의 삶은 1년 365일이 똑같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표정도 똑같죠. 하나같이 지쳐 있고 웃는 얼굴을 별로 보지 못 했어요. 시골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고, 계절에 따라서 삶의 변주가 있잖아요.” 

- 임순례 감독 인터뷰 中에서 -  


숲은 내일을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 포근하게 안아준다  

숲에서 우리는 사계절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여름이 오면 잡초를 뽑고 가을이 오면 수확을 하고 겨울이 오면 동면을 한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이 들면 된다.  


불안한 내일이 사라진 숲에서 혜원이 하는 건 요리다.  

혜원이 직접 숲에서 채취한 재료로 만든 요리들이다. 겨울에는 얼린 배추로 끓인 배춧국을, 봄에는 꽃 튀김과 꽃 파스타를, 여름에는 시원한 오이 콩국수, 가을에는 밤 조림까지 사계절 흐름에 맞는 16가지 음식이 등장한다. 시간도 많이 들고 번거로운 요리들이다. 빨리 먹고 후딱 해치우는 편의점 인스턴트의 효율성은 당연히 없다. 

하지만 포근한 오늘이 있는 숲에서 오직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 대접하는 정성이 담겨있다. 



‘케렌시아’(Querencia), 투우장에 들어선 소가 일전을 치르기 전 휴식을 취하는 안식처라고 한다.  

전쟁터 같은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케렌시아가 필요할지 모른다.   

혜원과 혜원 엄마에게는 아마 숲이 케렌시아였을 테다. 혜원이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도, 혜원 엄마가 남편의 죽음 이후 고향을 떠나지 않은 이유도 상처받은 마음을 숲에서 치유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혜원 엄마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힘을 얻자 숲을 떠난 것처럼, 사계절을 겪은 혜원 또한 숲에서 기운을 얻고는 다시 도시로 나간다.  


6월이면 나도 숲으로 간다. 

가까운 홍릉 수목원도 좋고 멀리 국립수목원도 좋다. 바쁘면 집 근처 공원도 괜찮다.  

잠시 스마트폰을 끄고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숲에서 광합성으로 피로를 풀어본다.  

가끔은 카페인 권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진짜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나만의 케렌시아, 숲으로 간다.  



#. 숲은 지친 나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안아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