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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들로 Jun 09. 2018

지칠 때면 들르는 진심 맛집
<카모메 식당>

혼영일년 6月 : 혼자서 숲에서 힐링하기 2

케이블 영화채널도 시청률을 의식 않을 수 없다. 

수시로 재핑하는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으려 항상 고심한다. 영화를 틀자마자 사이다 액션, 화려한 영상미, 미남미녀 스타들이 등장해야 시청률이 잘 나온다. 히어로물, 블록버스터 액션물들이 그렇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 장르가 있다. 바로 일본 슬로우 라이프 무비다. 

 

일본 슬로우 라이프 무비는 시청률이 늘 저조하다. 

액션은커녕 MSG를 모조리 제거한 밋밋한 줄거리뿐이고 비주얼은 담담하다. 영화 내내 개성파 배우들만 등장한다. 그런데 슬로우 라이프 무비를 찾는 시청자 요청은 꾸준하다. 블록버스터 소음 속에서 한줄기 힐링 음악을 감상하고픈 소망일까. 사실 나부터 그렇긴 하지만.     


슬로우 라이프 무비의 대표작은 <카모메 식당>(2007)이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후속작 <안경>, <토일렛>도 있고, <하와이안 레시피>, <해피 해피 브레드>같은 영화도 등장했지만 슬로우 라이프 무비 열풍을 몰고 온 작품은 단연 <카모메 식당>이다. <카모메 식당>을 촬영한 핀란드 식당을 성지 순례하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고 한다.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 헬싱키에 오니기리 식당을 연 일본인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와 손님들의 이야기다. 핀란드에서 일본 주먹밥을 팔려고 하니 장사가 될 리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핀란드인 토미가 첫 손님으로 온다. 핀란드로 여행 온 미도리도 식당에 합류한다. 이어서 여행 수화물을 잃어버린 마사코도 등장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좋겠어요” 

“그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에요.”  

- <카모메 식당> 마사코가 사치에에게 건넨 질문과 대답 -  


<카모메 식당>에는 모두가 진심이다.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하는 가식적인 사람이 없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 속고 속이는 갈등이 없다.  

대신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고 배려할 뿐이다.

   

사치에가 만든 오니기리

주인공 사치에는 손님을 진심으로 대한다. 

단가, 회전율, 매출 등 수치로 손님을 대하지 않고, 따뜻한 진심으로 손님을 맞는다. 그래서 사치에를 만난 손님들은 그녀를 다시 찾는다. 오랫동안 병든 부모님을 보살피고 핀란드로 떠나온 손님 마사코가 편히 쉬는 곳도 카모메 식당이다. 사치에의 진심이 담긴 요리는 마치 엄마의 집밥 같이 정갈하다.  


카모메 식당 주메뉴인 오니기리는 사치에 아버지의 진심이다.  

사치에는 어린 시절 일 년에 두 번 운동회 날에만 아버지가 만들어준 오니기리 맛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가 딸을 위해 요리한 음식은 사치에에게 그야말로 아빠의 집밥이자 소울푸드다. 

이제 핀란드로 온 그녀는 아빠의 진심이었던 오니기리를 대접한다.  


토미의 대답을 듣고 핀란드 숲을 찾아간 마사코


“핀란드 사람들은 왜 편안하게 보일까요?” 

“우리에겐 울창한 숲이 있거든요” 

- <카모메 식당> 마사코의 질문과 핀란드인 토미의 대답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카모메 식당> 배경을 핀란드로 정한 이유로, 다른 나라와 달리 핀란드에서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전혀 뛰어다니지 않아 인상적이었다고 답한다. 핀란드 사람들의 선천적인 여유에는 바로 숲이 있다. 핀란드 국토의 70%가 숲이라고 한다. 도시에서도 10분 정도만 걸으면 숲이나 공원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자연 친화적이다.  


숲은 정직하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속고 속일 필요 없는 정직한 숲에서 모두는 진심이 된다.    

마음을 감추거나 위장할 필요 없는 숲에서 우리는 비로소 가식을 벗어던지고 무장해제한다. 

<카모메 식당>의 핀란드인들이 편안해 보이는 이유다.  


편성을 하다 보면 힐링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사이다 액션, 화려한 영상미, 미남 미녀 스타들도 계속 보면 지친다. <트랜스포머>, <인디펜던스 데이>를 보면 눈이 피곤하고, <신세계>처럼 속고 속이는 영화를 보면 마음이 피곤한다. 인간끼리 서로 배신하고 심지어 로봇끼리 다투고 외계인들은 왜 그렇게 지구를 침략하는지... 지구에 맛집이라도 있는 걸까. 

등장인물들은 늘 가식적이며 항상 무언가를 파괴하는 거대 사건이 벌어지는 블록버스터들을 보면서 내 마음도 덩달아 어두워지는 걸 느낀다.  


내겐 <카모메 식당>에 모인 사람들의 진심이 힐링이다.  

사치에의 진심을 담은 음식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과 가장 여유로운 핀란드 손님들이 있는 곳, 카모메 식당.    

손님이 없던 식당은 마침내 만원을 이룬다. 아마 손님들 중 하나가 나일 테다.  

지칠 때마다 들르는 <카모메 식당>이 내겐 진짜 맛집이다. 



#. 가식과 갈등으로 뒤덮인 일상은 진심으로 힐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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